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체계적으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계획들은 순간순간 끼어드는 일에 밀려 여기저기 흩어져 버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시간은 한 뭉텅이씩 지나가 있다.
그저 기계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들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조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그에 따른 후속 요청까지 챙기다 보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 올해는 특히 변화가 많았다. 뉴스레터를 자체 제작으로 전환하며 개인정보 보호부터 발송 시스템까지, 디테일을 고민할 여유도 없이 큰 결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든 판단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마음 한구석에 '버겁다'는 감정이 차올랐다.
팀원에게 자율성을 주고 싶었다. 가능하면 방향만 잡아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해보게 두고 싶었다. 내가 꿈꿨던 그림은 팀원이 90% 정도까지 만들어 오면, 나는 마지막 10%의 결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50%쯤 만들어진 결과물을 마주하면, 나머지 50%를 채우는 건 결국 나의 몫이었다. 기관의 방향에 맞게 수정하다 보면 결과물엔 어느새 나의 색깔만 진하게 남는다. '이게 과연 자율성을 준 걸까, 아니면 그저 일을 나눠 맡긴 걸까.' 그 경계가 자꾸 흐릿해졌다.
요즘은 문서를 만들다가도 가끔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구조를 잡고 문장을 만드는 일이 예전만큼 특별한 능력처럼 느껴지지 않아서다. AI가 기본적인 틀은 다 잡아주는 시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결과물은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생각을 정리해서 구조를 만들고 문장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 실력이라고 믿었는데 이제 그 정도는 기본값이 된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의 진짜 역할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더 잘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결국 리더에게 남은 진짜 노동은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라는 무형의 기준을 팀원의 머릿속에 이식하는 고단한 과정임을 깨닫는다. 50%의 간극을 메우는 건 기술이 아니라, 결국 끊임없는 대화와 철학의 공유였다.
회사 안에서는 성과 배분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누가 더 많이 가져가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파이를 나눠야 하는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런 계산에 정말 무심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현실에 어두운 걸까.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꾸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늘 일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었고, 의미 있다고 느끼는 쪽에 기꺼이 시간을 쓰고 싶어 했다. 당장의 결과를 계산하기보다 어떤 선택이 나를 더 성장시킬지 고민했고, 지금 얻는 것보다 앞으로 열릴 길을 더 궁금해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모두가 파이를 나누는 법을 논할 때, 나 혼자만 자꾸 '어떻게 판을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이유는. 내 능력을 어디까지 키울 수 있을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게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인지, 아니면 나만의 단단한 중심인지 정답은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여전히 나누는 계산보다 키우는 고민을 할 때 더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나의 '일노애락'은 아마도 그 지점에서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