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해결 방식이 누군가에겐 퇴사의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 파도를 넘어서면 또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어떤 뒷모습을 남기는 선배가 될 것인가?'에 생각이 닿았다.
어떤 일이 터질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에 먼저 마음이 가 있다.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고, 할 일은 해야 했다. 일단 상황을 수습하고 그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려고 애쓰는 것이 내가 아는 책임감의 방식이었다.
오늘 팀원과 1:1 면담을 나누던 중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팀원은 나를 지켜보며 자신을 대입해 보았다고 했다. 내가 겪는 부침을 보면서 자신은 저만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고, 그저 화만 날 것 같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더니 "팀장님처럼 해낼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진짜 놀랐다. 팀원에게 비친 내 모습이 '따라가고 싶지 않은 고달픈 완성형'이라니. 이게 욕인가 칭찬인가 싶어 멍해졌다. 물론 팀원은 나의 능력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감정적 비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쏟아붓는 열정과 고군분투가 누군가에게는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부담으로, 나아가 퇴사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리더가 문제를 해결할 때 뿜어내는 전투력은 팀의 공기를 만든다. 너무 치열하게 타오르며 성과를 내면, 주변은 성취감을 느끼기보다는 '저 성공의 대가가 저렇게 괴로운 것이라면 나는 거부하겠다'는 자기 방어 기제를 작동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뒷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성과를 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나도 저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희망을 주었어야 했는데 좋은 예시가 되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성과라는 이름 아래 팀원에게 '독이 든 성배'를 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좌절 섞인 고백을 하는 팀원에게 우리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너라면 더 지혜롭게, 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을 테니 미리 겁먹지 말라고. 나를 복제하려고 하지 말고, 그 상황에서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해 보라고 했다. 그건 팀원을 향한 위로이자 나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얼마 전 팀 회의에서 나는 부정적인 말을 아끼겠다고 말했었다. 상황 자체는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그 상황을 해석하는 '언어'를 바꾸면 우리 팀의 풍경도 달라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이라는 우리 팀의 비전은, 함께 더 단단해지고 싶은 나의 진심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다만 나의 열정이 팀원의 좌절이 되지 않도록 내 안의 온도를 조금 더 세심하게 조절해야겠다. 유능함으로 압도하는 선배보다 "너는 너답게 더 잘할 수 있어"라고 슬쩍 곁을 내어주는 여유로운 뒷모습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