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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산책 May 12. 2020

거북이와 토끼 그리고 광주

20년도 더 지난 어린 시절 고속버스 그리고 광주에 대한 기억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 베스트셀러 책을 구경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노란색 표지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제목은 [요즘 광주 생각]이었다. 이거 광수생각이라는 책이 생각나면서 묘하게 끌리는 제목이었다. 책의 파란색 띠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에게 광주는 어떤 도시입니까?"  이렇게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책의 프롤로그를 펼쳐 들었다. "책은 광주에 연고는 1도 없습니다만"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나는 10년 전까지는 광주광역시 시민이 아니었다. 10년 정도 광주에 살고 있지만 광주라는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솔직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있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광주 이전에 내가 거쳐간 도시에 대해서 그 도시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나는 그 도시들에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연고"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묘했다. 그래서 여행도 "살아보는 여행", "한 달 살기"라는 것이 유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책의 프롤로그 끝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이 책에는 개성 있는 열 명의 젊은이와 함께 나눈 광주에 대한 대화가 담겼다. 각 인터뷰는 광주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과 경험 등에 관련된 이야기로 먼저 시작된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꺼내놓는 인터뷰 속으로 들어간다. 이 대화들을 듣고 당신은 어떤 말을 덧붙이고 싶은지 궁금하다. 결코 승패가 있는 토론이 아니니, 부디 마음 편히 읽어주기를.(P7)"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 인터뷰 내용을 읽고 나서 나는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내가 생각하는 광주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들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전에 하나하나 단어로 문장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벽돌을 쌓고 창을 만들어서 작은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졌다. 나만을 위한 공간, 내 기억 속의 공간이며 때로는 그 공간에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불러서 화로에 장작을 놓고 군밤을 까먹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싶다.


아이랑 같이 만든 버스


내 기억 속에 광주는 삼촌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용한 고속버스에서 처음으로 "광주"라는 단어를 만났다. "광주고속" 지금은 "금호고속"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거북이가 그려진 광주고속이 생각난다. 나는 초등학교 조각 시간에 나무를 조각칼로 다듬어서 "고속버스"를 만들었다. "고속버스"는 나에게 시내버스와는 다른 기억을 가져다주었다. 우선 멀리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광주고속"을 타고 부모님과 함께 갔던 결혼식부터 시작해서 완행열차를 타고 갔던 전라도의 이곳저곳도 생각난다. 그리고 결혼식 이후로도 몇 번 "광주고속"버스를 이용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광주의 유스퀘어 터미널에 금호고속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게시판에서 "광주고속"이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다. 그때 내 기억 속에 지금처럼 빨간색의 버스였던 것으로 기억이 남았다. 그리고 거북이가 그려진 멀미 봉지가 그물망 사이에 들어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길도 직선이지 않아서 멀미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서 귀 옆에 멀미약을 몇 시간 전에 미리 부착을 해야 했다. 그렇게 처음 만난 "광주고속"이라는 버스는 차 뒤쪽에 거북이가 그려져 있던 기억이 난다. 왜 고속버스에 거북이가 그려져 있었을까? 나는 왜 토끼가 그려져 있던지 독수리가 그려져 있지 않고 거북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해 봤다. 토끼처럼 빨리빨리 달리면 좋지 않을까?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달리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지 못하는데 왜 거북이를 그려놓은 거야? 사실 초등학교 때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좋았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사 먹는 군것질이 좋았다. 그러다가 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도록 좀 더 빨리 달리지 못하는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넓은 도로에서 버스를 앞질러 가는 차들을 보면서 좀 더 빨리 달리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거북이였던 이유를 어느 정도 알 듯하다. 버스는 운전하는 사람 혼자만의 생명이 아닌 승객들의 생명도 버스의 운명과 함께 한다. 그렇다면 토끼처럼 약삭빠른 것보다 거북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안전을 지키면서 달리는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광주라는 도시는 "토끼와 거북이"와 비유를 하자면 "거북이"와 비슷한 이미지의 도시로 다가온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빠르고 약살 빠르지는 못하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리고 꾸준히 그 걸음을 내딛고 멈추지 않는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는 그려진다. 

터미널 앞의 새벽 시간 



터미널에 버스를 타러 갈 일이 있을 때 "금호고속"이라고 적혀 있는 부분에  "광주고속"이라는 이름을 한번 놓아봐야겠다. 그리고 내가 처음 엄마와 함께 광주고속을 타고 광주를 처음 왔을 때 그 기억을 떠 올려봐야겠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는 광주에 처음 도착했던 기억이지만 이제는 아마 터미널에 가면 광주에서 출발하는 여행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겠지. 과거 속에 이 도시에 처음 도착했던 기억이 지금 이 현재 광주에서 내가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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