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산책 May 12. 2020

광주는 모두 처음입니다.

입사동기들은 모두 광주에 연고가 없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고 마치 군대에서 전국 이곳저곳으로 훈련병들을 보내는 것과 나는 감히 비교하고 싶다. 딱 그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광주라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인사팀의 작은 회의실에 모인 입사동기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광주에 연고가 없었다. 초,중,고등학교,대학교 모두 광주의 어느곳도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에서 머물 수 있는 곳은 모두 기숙사였다. 그래도 다행이였다. 기숙사라는 곳에서 시작을 할수 있다는 것은 급하게 집을 구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입사한 동기들은 서울에서 부산에서 청주에서 대전에서 광주에서의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거나 다른 곳에서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이곳으로 이직을 한 사람들이었다. 광주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한 일은 기숙사 주변에 밥 먹기 좋은곳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아니 밥이라기 보다는 삼겹살에 소주한잔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작정 길을 걸었다. 그때는 아직 싸이월드를 이용하던 시절로 네이버 지도, 구글 지도, 네이버 맛집 검색에 모두 익숙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사람은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그냥 아파트들이 많이 보이는 곳 근처로 걸어 찾아들어갔다.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곳 주변에는 상가가 있고, 상가에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집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날은 성공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고기를 구워먹고 나서 메뉴를 보던 중 몇명은 고민에 빠졌다. "생비"라는 메뉴를 본 것이다. 도대체 "생비"가 뭘까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궁금하면 시켜서 먹어보면 될 것을 시골사람 티를 낸 것이다. "생고기 비빔밥" 을 줄여서 "생비"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사실 "생고기"라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나도 "생고기"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광주에서 첫날 "생비"를 만났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동기들은 환영회식을 했다. 회식장소에 갔다 온 동기들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소주는 "잎*주"만 주문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맥주는 "오*"브랜드만 주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런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두 브랜드의 소주와 맥주는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사랑이 나라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팀장님에게 들었다고 한다.


"너 아직도 몰라 잎*주,  오*맥주 이 조합이 최고야"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술맛이 다 비슷비슷 한듯 해서요"

"니는 아직 멀었다. 그래가지고 회사 생활 하겠나? 다 취향을 맞춰주기도 하고 술도 같이 많이 마시고 해야지"

"지역 사랑이 나라 사랑 아니가? 그럼 어디 니가 시키고 싶은 술 한병하고 잎*주하고 두병 시켜봐라"

"내가 어느 술이 잎*주이고 어느 것이 진*인지 한번에 맞춰볼께"

"니가 만든 제품을 이 지역 사람들이 사줘야 되는거야. 그러면 너도 이 지역에서 만든 제품을 이용해야 하는거고"

 (이 이야기는 10년도 이전 이야기이며 지금은 이런 분위기와 다를수도 있고 여전할 수도 있으며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가 아닌듯 하다.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바로 그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역에서 만든 제품을 지역사람들이 사야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이다. 내수 시장이 성장해야 경제가 탄탄해지는 것도 같은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렇게 이 두 브랜드의 술만 고집하는 것이 싫었다. 각자의 취향이 있는 것이고 다양성이 있는 것인데 너무 팀장의 권위를 이용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술값을 내는 사람이 고르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이 뭔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도 되고 동의도 하지만 그 생각을 실천을 하면서 살지는 못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골라야 한다는 의무감 보다는 처음에는 다양한 것을 다 살펴보고 그 중에서 좀더 내 취향이라는 것을 고르게 된다. 


입사 동기들은 10년이 지난 지금은 광주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일부는 퇴사를 했고 일부는 고향근처로 옮겨서 이직을 하거나 부서이동을 성공적으로 했다. 입사동기들이 광주를 떠난 이유는 다양했다. 비교적 광주에 잘 정착을 한 경우는 일찍 광주가 고향인 여자친구를 만나서 결혼을 한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은 이곳에서 생활에 만족을 했고 잘 정착을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서울, 부산에 있는 경우는 광주에서 계속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광주에서 살아야 하는 큰 문제가 있었다. 내가 계속 살아왔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문제이다. 광주나 전남,전북이 고향이고 이 근처에서 초,중,고,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에게는 고민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큰 고민이 되는 것이다. 


아직 광주에 남아 있는 몇명은 지금은 그때 처음 광주에서의 첫날을 기억할까? 그리고 기숙사에 모여서 저녁마다 야식을 먹으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할까? 지금은 오랜 과거가 되어 버린 이야기들이다. 그 때 같이 살았던 기숙사는 지금은 그 건물의 흔적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 같이 처음갔던 고기집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핸드폰 가게가 들어왔다가 지금은 상가임대라는 종이가 덩그러니 붙어 있다. 그때 걸었던 거리 거리의 모습도 시간과 함께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함께 한 사진도 없고 이야기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떠난 사람은 떠나버린 채로 남은 사람은 남은 채로 그렇게 남은 동기들은 광주의 오늘을 살고 있다. 남은 동기들끼리 한번 같이 모여서 골목 구석에 있는 작은 고기집에서 삼겹살이라고 구워먹으려고 하면 지금은 다들 가정이 있어서 시간을 함께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언제 한번 같이 모이면 남은 사람들끼리 사진이라고 같이 남겨야 겠다. 


브런치의 배경으로 올려놓은 사진은 5년 넘게 같이 살았던 기숙사 옥상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날 

바로 5년째 이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바뀐 거리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본다. 그 변화들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일까? 이제는 변화를 따라잡기에 벅차다. 오히려 그 변화들을 박제해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과 글로 하나하나 붙잡아서 차곡차곡 접어서 서랍속에 넣어놓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거북이와 토끼 그리고 광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