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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스크 Dec 19. 2022

멀고 먼 품 안의 자식

서른아홉 아가

 주말 내내 부모님 집에서 지내다 왔다. 한국에 온 지 4개월. 달에 1번은 전주에 내려가고 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시간을 열심히 메꾸기 위함이며, 그리웠던 엄마 밥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풀기 위함이다. 아이에게 기억이라는 게 생길 무렵이라고 해야 하나. 핸드폰 영상에서만 만나던 조부모였음에도 신기하게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정말 좋아한다. 살가운 애정표현을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막내딸인지라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해요!'

애정표현이 흘러넘치는 아이가 마냥 고맙기만 하다.




버스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사랑의  ❤️






 스물다섯. 아직 철없고 어리기만 했던 나이. 다니던 직장이 나와는 너무 맞지 않아 일찌감치 그만두고 반은 회피성으로 반은 도전정신으로 미국에 나간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발전되긴 했지만 스마트 폰은 아직 생소하고 국제전화카드를 구매해 전화를 하던 시절.

 

 부모님 돈으로 호위 호식하며 좋은 말로는 어학연수 쓴 말로는 장기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처음 3개월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해서 이런저런 일상도 얘기하며 잘 지낸다고 알려주었다. 원래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하는 편이 아니라 나중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적게는 한 달에 한번 많게는 2주일에 한번 통화를 하는 게 보통이 되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성인이기는 하지만 그때의 내가 얼마나 야속했던가! 효녀였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불효녀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다시 미국을 나오게 되었을 때 엄마 아빠는 많이 슬퍼하셨다. 이전처럼 짧은 일정도 아니었고 이제야 결혼한 딸의 부재가 익숙해질 무렵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고 하니 속상하셨나 보다. 이전과는 세상도 달라졌고 마음만 먹으면 얼굴 보며 전화도 할 수 있다고 자주 연락하겠다며 부모님의 시린 가슴을 보듬어 드렸다. 실제로 미국에 있는 8년 동안 처음 얼마간만 스카이프를 사용했고 나중에는 카카오톡의 비디오 콜을 무척이나 잘 이용했다.




  

 

 에반스톤에 도착한 지 며칠 안된 어느 날. 새 폰을 살지, 가지고 있는 폰을 쓰고 요금제만 살지 고민하다가 귀찮은 일이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즈음이었다. 집에서는 와이파이로 쓸 수 있지만 밖에 나가면 무용지물인 핸드폰을 가지고 길을 나섰다.  그때 살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는 걸어서 편도 30분의  거리에 있었다. 가느라 30분. 이것저것 구경하고 장 보느라 30분. 무거운 물건을 끙끙 대며 들고 걸어오느라 30분. 대략 2시간이 안 되는 시간. 집에 도착하자마자 카톡에 불이 나는 것처럼 알림음이 울린다.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장 보고 온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들리는 보이스톡 소리. 엄마다.


'응. 엄마!'

'아가! 왜 연락이 없어?'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려는 찰나 옆에서 들리는 아빠의 웃음소리. 뭐지?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너랑 연락 안 된다고 네 엄마가 울고 난리 났다'

우는 엄마를 놀리는 듯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그제야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니 엄마가 2시간 전에 보낸 카톡 이후로 계속 와있는 메시지. 우리 엄마는 혼자서도 미국 땅에서 잘 살았던 내가 아직도 냇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되나 보다. 철없던 때의 나였다면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한다며 엄마를 타박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다행히 엄마가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나 남편이랑 같이 있고 우리 동네 안전해. 나중에 날씨 좋아지면 얼른 와봐! 동네가 얼마나 이쁜지 몰라. 보면 엄마도 좋아할 거야'


2시간.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 미국 간 딸이 연락이 안 되어 놀랐을 엄마를 생각하니 멀고 먼 품 안의 자식으로 미안한 마음이 커진 순간이었다. 엄마 생각에 내 눈가도 괜히 촉촉해졌다.






 바쁜 남편 덕에 아이와 둘이서 여기저기 다니는 나에게 여전히 엄마는 조심하라며 단속을 하신다. 미국 살 때는 몰랐던 어마어마한 사건 사고소식들을 한국에 와서 더 잘 알게 됐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엄마가 되어서야 조금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내일모레면 마흔인 딸을 아직도 가끔 아가라고 부르는 부모님 생각에 고속버스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아빠! 나 조심히 잘 도착했어요. 이제 쉬어요.'




(사진출처: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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