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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스크 Dec 22. 2022

시카고 찬양가

스쳐갔던 도시에 빠지다

 사람들은 ‘시카고’하면 뮤지컬 시카고를 떠올리거나 심심한 도시 또는 깨끗한 뉴욕이라고 표현한다. 나에게 시카고는 어떤 도시냐? 물어본다면 언제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도시라고 말할 것이다.      



 2008년 8월의 늦은 여름.

보스턴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여름이었다. 다니던 어학원의 수업이 잠시 종료되고 방학기간이었다. 주위 친구들은 그때를 틈타 여름휴가를 계획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원래 가려던 마이애미가 한창 그 지역을 강타 중인 폭풍우로 자연재해 지역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나는 예정에도 없던 시카고에 가게 되었다. 시카고는 이름만 들어본 매력 없는 도시였다. 가고 싶었던 곳도 아니고 어쩌다 그냥 간 곳. 같이 간 친구와 나는 어떤 계획도 기대도 없었다. 우리는 친구가 빌려준 시카고 여행책자를 대충 한번 읽어보고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시카고 야경 2008


 ‘시카고 피자 먹고 왔어?’

 ‘밀레니엄 파크 다녀왔어? 거기 빈 예쁘지?'

 

시카고에서 돌아와 친구들이 잘 다녀왔냐며 이것저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게 뭐야? 유명한 거야?'

     

돌아온 나의 대답에 친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럼 시카고 가서 뭘 하고 온 거야?'


 어이없게도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곳과 음식은 가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하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던 건 유명한 건축물보트 투어와  아쿠아리움은 다녀왔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 제대로 알아보고 가지 않았음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시간이 흘러 2015년. 나는 다시 시카고에 돌아왔다. 우리가 살게 된 에반스톤에서 시카고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차량을 이용할 경우 30분 내외면 갈 수 있었다.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도시의 인상도 중요했다. 관심 없이 스치는 도시였지만 막상 다녀오니 깨끗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가득했던 도시. 다시 갈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시카고 피자를 먹어볼 테다!     


시카고 가는 길

 에반스톤에서 시카고로 가기 위해 타는 도로가 있다. 구불구불 작은 도시의 일 차선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에는 미시간 호수가 정면에는 멀리서부터 시카고의 유명한 건축물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과 도시경관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입이 벌어지는 시티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그 구간. 그 뷰를 보기 위해 시카고를 가는 날도 종종 있었다.


 존행콕 건물을 필두로 나타나는 시카고의 초입. 시카고에 왔다는 걸 매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도시에 살고 있음에 감사함도 느끼고 해외생활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시카고 대화재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소멸되고 다시 계획적으로 지어진 만큼 도시의 경관이 정말 보기 좋게 지어졌다.         


처음 먹은 시카고 피자


 2월 26일.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날을 기념하며 매년 그날은 시카고 피자를 먹는 날로 정했다. 우리만의 축하의식 같은 거였다. 난 피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시카고 피자를 먹는 날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딥디쉬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이 한 조각에 버금갈 정도로 두꺼운 피자는 조리시간도 길다. 시카고 사람들은 가게에 가기 전 미리 주문을 해놓고 방문한다. 그렇지 않으면 족히 1시간은 피자를 기다려야 한다.   


 양이 많아 2조각 이상을 못 먹지만 식은 후에 차갑게 먹어도 또 색다른 맛이 있다. 매년 즐겨 먹던 피자를 생각하니 지금도 입에서 군침이 돈다.     



시카고의 명물 빈
코로나 이후 접근이 금지된 빈


 처음 시카고에 갔을 때 방문하지 못했던 밀레니엄 파크도 시카고 나들이의 단골 장소가 되었다.  cloud gate라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모양이 마치 콩 같다고 해서 사람들은 bean이라고 부른다. 시카고 명소인만큼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두근거림을 함께 느끼며 매번 행복해진다.


  시카고를 떠나기 전 마지막 빈에게 인사를 하러 들렀던 22020년의 가을. 사람은 하나도 없고 빈 주변에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쳐져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많은 인파로 시끌벅적했던 밀레니엄 파크가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아쉬웠다. 다음에 만날 때는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잔뜩 들뜬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만나길.        







 다시 돌아온 시카고는 이제 언제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내 고향 같은 곳이 되었다. 시카고 지역에서 5번의 겨울과 6번의 여름을 보낸 후 떠나게 됐을 때 나는 매우 슬펐다. 그곳에 남은 (이제는 가족 같은) 친구들과 이웃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뿐만 아니라 시카고와의 이별 때문이기도 했다.

 

 인터넷에 누군가 시카고 여행에 관한 질문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시카고 어때요?'


'거기 그냥 그래요. 별로 할 것 없어요.'


 나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왜 우리 시카고 기를 죽이고 그래요? 우리 시카고는요.'

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시카고의 좋은 점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줄줄이 말해 주고 싶어 입이 근지러워진다.      


바람의 도시

깨끗한 뉴욕      

보다 더 나은 수식어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미친바람에 혀를 내두르며 다른 곳에 살고 싶다가도 여름 시카고의 매력에 빠져 다시 도돌이표 되는 이상한 동네.     

당신에게 시카고의 보물 같은 모습을 찬찬히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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