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수면시간은 짧은 사람의 누워있고 싶은 마음
사람은 누구나 앉아있거나 서있거나 아니면 누워있다. 나는 눕는 게 제일 좋고 그다음은 서있는 게 마지막으로 앉아있는 게 좋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소파에 누워있는 걸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다리가 짧아 내가 누워도 누군가 앉을 공간이 있었다. 점점 크면서 내가 누워있는 통에 누군가는 바닥에 앉거나 다른 의자를 찾아야 했다.
누워있을 거면 침대에 가서 누우라고 하는데 침대에는 눕고 싶지 않다. 소파에서 누워서는 티브이도 볼 수 있고 간단한 과자도 먹을 수 있지만 침대에서는 불가능하다. 소파 양옆으로 난 팔걸이의 적당한 높이가 베개로도 안성맞춤이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를 보거나 조금 올라와 앉아 책 읽기에도 좋다. 침대에 눕는 건 뭔가 너무 본격적이다. 잠을 자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에 라는 마음으로 소파에 눕는걸 더 선호한다.
아이가 아주 어려서 잠을 재워줘야 할 시기였다. 그때 살던 집은 침실이 하나였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면 거실에 있는 소파에 몸을 던진다. 자러 들어가기 전까지 거실에서 남편과 나 둘이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주로 일을 하고 나는 낮동안 못한 밀린 인터넷이나 드라마 몰아보기 등을 했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를 재우고 나오면 남편이 소파에 누워있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 함께 눕기에 소파는 매우 작았고 대부분은 남편이 다시 일을 하러 책상의자로 돌아가면서 마무리됐다. 내 영역을 지켜줘서 고마운 마음이 컸다.
침실이 2개인 집으로 이사 가고 나서부터 아이는 아이방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다. 아이의 수면시간이 시작되면서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거실에 있는 소파는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아이와 남편과 분리된 공간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나에게 침대가 있었다. 나에게도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잘 앉지 않게 되고 침대 옆에 작은 테이블을 마련해서 책도 읽고 핸드폰도 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빠졌다. 본격적인 느낌이어서 거절했던 침대인데 어쨌든 침대인지라 편하고 좋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소파가 없다. 침실은 2개이지만 거실 공간이 작아졌다. 소파를 놓을까 했는데 거실이 잡아먹히는 느낌이 들어 남편이 싫다고 했다. 스툴이 딸린 암체어를 샀다. 하지만 나는 그 의자에 거의 앉지 않는다. 나에게는 아마도 서거나 눕거나 두 개의 옵션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적어도 집에서는. 눕는 듯이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가 없던 허리디스크가 도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고 난 후에는 앉지 않는다. 앉을 일이 있으면 식탁의자에 앉는다. 눕지 못하는 소파는 (암체어포함) 나에게 소파가 아님을 느꼈다. 비통하다.
지금도 침대에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벌써 오늘 하루가 기억도 안 나지만 바쁜 하루가 끝나고 저녁이 되면 까먹기 전에 뭐라도 써야지 하는 생각이 난다. 침대에 누워 빈둥대다가 이렇게 글을 적는 지금은 비록 누워있지만 쓸모 있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 누워있을 때는 웹툰을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뭔가를 계속 보긴 하지만 시간을 소비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글일지라도 뭔가를 생산하고 있다. 뿌듯하다. 글을 올리고 나면 마저 누워서 자기 전까지 여유를 부려야지.
그렇지만 내일 아침에는 눕지 말아야지. 눕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야지. 눕기 시작하면 핸드폰을 보기 시작하고 딴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1분이 10분이 되고, 또 1시간이 되니까. 뒷 일은 불 보듯 뻔하지. 남은 시간동안 해야 될 일을 대충 해버리거나 시간에 쫓기며 후다닥 하다가 후회를 할 테지. 그러니 내일은 눕고 싶어도 눕지 말아야지.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쓰고 있으니 눕지 말아야 하니까 눕지 말아야지. 잠에 취한 걸까 싶은 소리를 잔뜩 꺼냈으니 곧 자야겠다. 가장 기분 좋게 누울 수 있는 시간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