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물약

미열 감지기

by 나나스크



나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잔병치레가 잦지 않은 편이다. 대신 한 번 감기에 걸리면 하루는 꼬박 죽은 듯이 지낸다. 독한 놈에 제대로 걸리는 스타일이다. 언니는 감기에 자주 걸리는 타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골골대며 축 쳐져있던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나는 감기에 걸려 앓아누우면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나 죽네 소리를 내뱉었던 기억이 난다. 열이 너무 높아 오한이 오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그래도 열이 나가야 하니 춥게 있어야 한다고 조금만 참자고 말하던 엄마의 얼굴도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그때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 까 싶다. 작은 아이가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그저 누워 덜덜 떨면서 아이고 죽겠네만 연신 외고 있었으니. 그때는 그렇게라도 말해야 살 것 같아서 그랬는데 엄마의 마음 아픔까지는 챙길 성숙함은 없었나 싶다.


웬만하면 (코로나 제외) 유행하는 전염병도 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나름 내 건강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컨디션 체크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한 번 아프면 크게 아프기 때문에 애초에 싹을 잘라버리자는 게 내 관리법이다. 컨디션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으면 바로 느낌이 온다. 음.. 이거 미열각인데? 그리고 열을 재보면 아니나 다를까. 37.5도 정도 혹은 그 이상. 그럼 그날은 일찍 자는 날이다. 웬만한 저녁 스케줄은 모두 정리하고 밥도 일찍 먹고 힘들지만 정리까지 한 번에 끝낸다. 나와 남편이 신봉하는 물약을 한 컵 들이킨다. 30분 정도 기다리면 잠이 솔솔 온다. 용량을 잘못 재면 다음날까지 졸리거나 몽롱한 기운이 간다는 게 최대 단점이지만 이것은 나나 남편에게 일종의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의식이다.

이 신비의 물약을 먹고 일찍 잠에 들면 다음날 싸악 나아있다는 게 지금까지 내가 겪은 경험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지금 물약을 먹고 약효가 일기 전에 급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벌써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러다 왜 갑자기 열이 날까? 를 생각해 본다. 이유를 알아야 다음에 이런 실수(?)를 면할 수 있으니까. 이유는 많다. 지난 금요일 장거리 당일치기 여행. 계속되는 큰 일교차의 날씨. 수면 부족. 어제 다녀온 긴장되었던 만남 등등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번 주말은 중요한 일정이 있기 때문에 오늘부터 제대로 관리에 들어가 줘야겠다. 당분간 취침은 무조건 11시 이전으로. 따듯한 물을 계속 마시고 일교차에 맞게 얇은 겉옷은 항상 상비한다. 얼른 열이 떨어지고 신비의 물약과 내 세포들이 환상의 궁합으로 나쁜 세균들과 맞서 싸워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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