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머위들깨탕

by 나나스크



지난 주말 부모님을 뵈러 전주에 다녀왔다. 엄마 아빠가 전주에 사시게 된 지도 벌써 여섯 해가 지나간다.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던 전주에 계시던 미국에 사는 동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에서 사시던 그저 두 분만 평안하시면 될 일이었는데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게 아니었다.

미국에 있느라 못 보고 지낸 시간만큼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귀국하고 1년 가까이는 한 달에 한번 부모님을 뵈러 전주에 갔다. 차도 없고 아이와 고속버스로 한 달에 한번 내려가는 스케쥴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 버스 심지어 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이동수단을 잘 견뎌준 아이 덕분에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엄마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다른 모녀사이만큼 엄마와 나는 친하지 않다. 친하지 않다는 의미는 엄마와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다던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던지 나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기억이 많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우리는 피를 나눈 가족인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됐다. 가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딸들의 분노나 화 같은 것들도 나는 알지 못한다. 오히려 엄마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잘해주지 않아 나는 엄마 속이 어떤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와 나 사이가 나쁜 건 전혀 아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 항상 엄마를 그리워하고 안쓰럽게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에 갔을 때, 엄마와 가깝게 살았다면 같이 갈 수 있을 텐데. 이런 식의 생각은 항상 하고 있으니까. 남에게 못할 이야기를 엄마에게 털어놓으면 좋겠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속상하거나 기분 좋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숨기는 것일 뿐이다. 내 속상함을 엄마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그러면 엄마가 더 속상할 테니까.


엄마에게 내려간다고 하면 엄마가 꼭 해주시는 음식들이 있다. 무나 감자를 넣은 갈치조림. 손주가 좋아하는 조기 아니면 다른 종류의 물고기 반찬. 장조림이나 나에게 싸주기 좋은 반찬들이 준비된다. 엄마에게 내려간다고 말을 안 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가면 엄마는 날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고 바쁠 테니까. 이번 방문에서는 어떤 반찬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감사한 마음 반과 미안한 마음 반으로 저녁 식사자리에 앉았다.


머위들깨탕이다. 잔잔한 새우를 넣은 고소하고 걸쭉한 머위들깨탕.

"너 이거 좋아하지?"

엄마는 모르고 있는 걸까? 나는 엄마가 만든 모든 반찬이 다 좋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온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맛이다. 가끔 엄마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를 하시지만 나에겐 항상 한결같은 엄마의 맛이다. 어쨌거나 머위들깨탕은 내가 좋아하는 엄마음식들 중에 손꼽히는 한 가지이다. 머위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예전에 남편이 이 머위들깨탕을 보고 처음 보는 음식이라며 적잖이 놀란적이 있다.

"이걸 처음 먹어본다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이제야 먹어본다니. 너는 참 우리 엄마를 만나 다행이구나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머위들깨탕이 식탁 위에 올라와있다.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고 고소한 들깨향이 입안에 퍼진다. 잘잘한 크기의 조그마한 새우들이 여러 마리 함께 입으로 들어오면 사실 별다른 맛이 없는 머위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머위탕은 시원하게 먹어도 맛있다. 차가운 들깨국물은 머위 건더기를 젓가락으로 크게 건져 후루룩 먹을 수 있어 좋다.


처음부터 이 음식이 좋았던 건 아니다. 이 음식을 먹으려면 조리를 하기 전까지 준비단계가 험난하다. 갈대 같은 머위들을 푹 삶아서 일일이 질긴 껍질을 까줘야 한다. 껍질을 까다보면 손톱밑은 어느새 시컴해지고 머위는 까도 까도 끝이 없다. 푹 삶아진 머위줄기를 까대면서 물줄기가 팔을 타고 흘러내린다. 여기저기 물이 튀는 건 당연하고 팔이 근질근질해진다. 그 많은 머위를 다 까고 아이고 허리야를 외치면 일은 다시 시작된다. 껍질이 까진 머위는 다시 잘리고 볶아지고 끓여진다. 나는 껍질만 까는 수고를 하면 되지만 엄마는 머위를 자르고 삶고 까고 다시 요리하는 수고를 아무 불평 없이 하신다.

이게 엄마와 나의 관계인 것 같다.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진 않아도 나에게 먹이기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런 관계. 사랑해라고 말하거나 엄마를 따스하게 안아주진 못해도 그동안 못 본 얼굴 보려고 한 달에 한 번은 꼬박 챙겨 오고 싶은 그런 마음.


머위들깨탕. 일부러 큰 새우 몇 개를 골라서 그 위에 예쁘게 얹어주는 엄마의 마음. 그릇을 들여다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친다. 엄마가 없으면 이 음식은 이제 못 먹는 걸까? 언제까지 머위국을 당연하다는 듯이 먹을 수 있는 걸까? 엄마에게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라고 해야 하나 같은 생각들 말이다.

"엄마가 안 해주면 이거 어디서 먹을 수 있지?" 말을 꺼냈다가 괜히 엄마에게도 슬픈 감정이 들까 미리 걱정이 되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많은 머위볶음이나 들깨탕 레시피를 괜히 검색해 본다. 어디에서 사 먹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있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음식과는 비교도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먹는데 갑자기 이런저런 해보지 않은 생각들이 든다는 게 우리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까? 마음 약한 소리말도 좀 더 바지런히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 여름에는 오랜만에 엄마의 우뭇가사리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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