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안사면 100프로 세일

by 나나스크


지난번 글에도 한 번 썼듯이 브랜드 '자*'의 세일을 기다리고 있던 나. 그리고 드디어 세일의 시작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게 된 나.


터질듯한 장바구니의 정리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 그대로 결제를 하게 되면 금액은 300만 원이 넘는다. 하하하. 그대로 사버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잔고가 없다.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너무 유행을 타는 건 아닐지 실제로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인지 고심한다.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출근해서도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한다.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30만 원 밑으로 떨어질 생각이 없다.


미안하다! 아들아! 일단 내 옷을 챙기고 싶은 욕심에 아이 옷들을 관심상품 쪽으로 옮긴다. 총합계 금액에 변동이 생겼다. 다행이구나. 위아래 한벌인 트레이닝 세트에서 티셔츠를 관심상품으로 이동시켰다. 바지가 더 활용도가 높을 것 같아서다. 반바지 여러 개 중에서 딱 한 개만. 그리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꽃무늬 바지는 끝까지 사수한다. 포기할 때는 어려웠는데 정돈된 장바구니를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오늘은 수요일. 아이의 학원 스케줄이 끝나면 급하게 저녁을 먹고 평일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는 날이다. 원래는 금요일 저녁 미사를 드렸는데 언젠가 한번 수요일 미사를 드리고 나서 수요일로 옮겼다.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집중해 듣다가 문득 뭔가 빠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뭘까?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그러다 우연히 확인한 핸드폰의 시계가 7시 47분이라고 알려준다.



이제 강론 말씀이 시작됐는데 이대로 가면 오늘 미사는 절대 8시 전에 끝날 수가 없으리라. 고심하고 고심해서 고른 내 소중한 아이템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순간 머릿속이 어지럽지만 이 작은 소성당에서 미사중간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신성한 강론 시간에 장바구니 물건을 생각한 것 자체가 죄를 짓는 느낌이 팍팍 든다. 죄송합니다. 예수님. 제가 또 생각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드디어 들어가 본 장바구니.


' The item is out of stock!'


내가 담은 모든 장바구니 물건들이 품절 사인을 둘러메고 있었다. 내 안목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내 꽃무늬 바지를 허락하지 않겠다던 친구에게 그 바지의 품절 소식을 전한다. 친구에겐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 바지는 정말 예뻤다. 내일 오전에 당장 달려가 바지 하나를 꼭 구해오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품절 상태 표시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장바구니를 비워버린다. 아까 낮에 열심히 고심한 보람이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아무리 세일을 한다고 해도 안사면 백 퍼센트 세일인데. 그래! 오히려 좋아! 돈 굳었다! 야호! 지구에게도 잘된 일이겠지. 이렇게 올해 여름도 지금까지 함께 해온 옷들과 함께 잘 버텨봐야지. 장바구니를 득템 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축하의 인사를. 나처럼 장렬히 실패하신 분들에게는 오히려 잘된 거라는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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