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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스크 Jan 05. 2023

화요일은 안 잡아먹지

재방문은 선택이 아닌 필수 DMV

 미국에 오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여러 가지 있다. 은행 계좌를 여는 일은 쉬운 일에 속한다. 첫 시작을 기숙사에서 하다 보니 전기, 수도, 인터넷 설치 등등 귀찮은 일들은 없었다. 휴우 다행이다. 핸드폰 개통은 남편 연구실 중국인 친구를 통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해결했다. 마지막 남은 한 가지는 바로 운전면허.


 우리 동네는 버스와 'L'이라고 부르는 지하철이 잘 되어있는 편이었지만 장보기와 이런저런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차가 있어야 더 편리한 게 당연했다. 다른 유학생들처럼 우리도 만일을 대비해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왔지만 실제로 경찰관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여론이 많았다. 그래서 급히 운전면허증을 따기로 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살았던 일리노이 주는 나와 같은 dependent(부양가족) 들에게는 일반 응시자들과는 달리 하나의 절차를 더 추가한다. 임시 거주자들을 위한 절차로 거주지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DMV를 처음 방문해서 내가 사는 곳의 거주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내고 시험 응시자격을 주는 편지를 발송해달라 해야 한다. 편지는 짧으면 일주일, 길면 이주일 안에 도착하고 받은 편지를 (편지에 적힌 날짜로부터) 30일 내에 가지고 와서 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이주일 안에 편지가 오지 않으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편지를 발급받으러 와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오랜 기다림은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일주일 뒤 나는 시험에 응시해도 좋다는 확인 메일을 받았다. 다시 dmv를 찾았다. 2번째 방문이었다. 남편은 첫 번째 방문 때 시험 응시가 가능했지만 같은 날 시험을 보고 하루 만에 끝내자며 나를 기다려주었다. 시험을 보기 위해 접수창구에 서류를 제출하고 호명을 기다렸다.


 남편과 나의 번호가 불리고 우리는 각각 다른 창구로 갔다. 여기에서 우리의 운명이 갈렸다. 남편과 내가 준비한 서류는 모두 같았으나 남편은 시험 접수가 되었고 나는 반려되었다. 내가 거주증명을 위해 가져간 서류의 발급날짜가 오늘로부터 31일 전에 발급받은 게 이유였다. 서류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발급일로부터 30일 이전의 서류만 요구하는 사항을 놓친 것이다. 시카고 야구팀인 CUBS티를 입은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눈빛이 매섭다 했다. 그동안 만난 공무원들은 하루이틀 차이나는 서류들을 잡아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던 사실이었다. 또 같은 서류로 시험접수에 성공한 남편이 있었기에 괜히 줄을 잘 못 서서 여길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울컥 짜증이 났다.


 한 명이라도 운전면허가 있는 게 나은 상황이라 남편은 그날 필기와 실기 시험을 모두 치르고 통과했다. 남편은 임시 운전면허증을 받았고 나는 아무 성과도 없이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DMV에 3번째 방문해야 하는 일 때문에 한껏 시무룩해져 있었다. 오고 가고 기다리고 빠듯하게 잡아도 2시간은 기본으로 소요되는 곳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운전면허를 빨리 따고 싶은 건 시험에 대한 부담 때문이기도 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한 번 떨어진 경험이 있어 더 두려웠다. 이번이 3번째 방문. 필기시험에서 좌절되면 또다시 와야 한다. 운전면허증 준비를 한다고 하니 친구가 작은 교통법규 요약집을 건네주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다행히 높은 점수로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다음은 실기 시험이 있었다. 하지만 필기시험을 보는데 너무 진이 빠진 나는 실기시험은 다음에 보기로 했다.







 

 이놈의 운전면허! 끝이 있긴 한 건가! 한국에서 어떻게 땄더라 생각해보니 이곳의 일처리 시스템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또 실기시험에 대해 떠도는 도시괴담들은 어떠한가! 일부러 떨어뜨리기 위해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계속한다던지. 아무런 이유 없이 불합격처리를 해버린다던지. '인종차별 아니야?'를 느끼게 한다던지. 시험을 보러 가기 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같이 안 좋은 이야기를 듣고 갔던 터라 긴장이 되었다.


 남편의 스케줄에 맞춰 일정을 잡고 다시 dmv로 향했다. 4번째 방문이다. 곧바로 실기시험을 위한 접수를 마치고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련의 번호가 불리고 내 순서가 왔다. 두근두근! 이렇게 떨려본 게 얼마만인지. 멀리서 내 담당 감독관이 일어서는 게 보인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시다. 웃음기가 돌고 있는 저 얼굴을 믿어도 될까? 저번에 CUBS 티 입은 아저씨도 사람은 좋아 보였는데.


 '저 좀 잘 봐주세요~~'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지금이라도 당장 쏟아질 기세로 촉촉해져 있었다.


 'Hi darling~ I don't bite you. OH! I Do bite people on Mondays and Wednesdays! It's Tuesday. So don't worry. You are lucky!'


 아! 할머니의 joke 하나로 순간 얼어붙었던 마음이 한없이 녹아내렸다. 한껏 굳어있던 몸을 풀고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이런저런 질문과 말 끝마다 항상 darling을 붙여주신 감독관은 내가 긴장으로 인해 시험에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며 아주 잘했고 운전에 대한 조언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대장정의 막이 내려졌다.








 DMV 생각만으로도 용솟음치는 피로와 불신을 한 번에 털어내 주신 할머니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중에 남편과 다른 친구들에게 할머니 감독관과의 일화를 말해줬더니 다들 믿지 못했다. 악명 높은 DMV에서 그런 감독관을 만난 건 동화 같은 일이라며 다들 운이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운이 좋았던 건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불어넣어주신 따듯한 기운 덕분에 나는 겁먹지 않고 운전할 수 있었고 미국 생활 8년 동안 무사고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할머니께 돌립니다!




사진출처 pixabay /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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