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간 장애인과 일상을 나누는 경험을 많이 했다. 유년기 시절을 보냈던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나의 모교에는 장애인이 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사지가 마비되어 있어 얼굴만 움직일 수 있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수업마다 다른 교실로 옮겨야 했기 때문에 학생의 엄마가 매일 함께 등교해서 수업 사이에 이동을 함께 했으며,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먹여줬던 기억이 난다.
그 학생의 졸업식 날, 휠체어를 타고 무대를 그의 엄마와 함께 가로질러 졸업장을 건네받았을 때 전교생들이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쳤다. 심한 장애를 가졌는데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해서 손뼉을 친 게 아니었다. 당연히 졸업할 줄은 알았다.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만큼 성실했던 모자의 끈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는 같은 반에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공부를 잘 따라가거나 다른 학생들과 사교성 있게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는 없었다. 따로 챙겨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예로, 남들보다는 체육을 심각하게 못했지만 그 친구에게 공을 패스해야 할 때는 생각 없이 그 친구가 받도록 공을 찼다. 그 친구가 공을 제대로 못 받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 친구를 장애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초등학생이었던 내 동생 반에 소아마비인 학생이 있었다. 당시에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놀라울 만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 그녀는 미국에서 유명한 장애 인식개선 운동가가 되었다고 들었다.
역시 장애는 그 사람의 미래를 절대 규명 짓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학생들의 장애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해본 적이 없었지만, 하루는 엄마와 티비를 보다가 모두의 인식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뉴스에서 사고 현장을 보도하고 있었다.
“쯧쯧… 사망자가 저렇게 많으니… 차라리 죽으면 다행이야. 장애가 생기면 더 골치 아프지….”
엄마는 늘 장애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죽는 것이 장애가 생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장애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아마 이때는 엄마의 첫째 딸인 내가 후천적으로 세법상 장애인이 되고, 둘째 딸도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20대 중반 나이에 희귀난치성 질환을 진단받아 세법상 장애인이 되었다. 그리고 내 동생은 20대 중반 나이에 급성 간부전으로 간 이식을 하게 되어 5급 장애인이 되었다. 사실 장애 판정으로 인한 우리의 삶에 큰 변화는 없다.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인식은 피해 갈 수가 없다.
간 이식을 한 동생은 사지가 멀쩡해 보이는데 무슨 장애를 가졌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눈으로 보이는 장애를 가지지 않았으니 충분히 궁금할 수 있겠지만, 질문의 무례함을 견디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마을버스에 복지 카드를 제시하고 무료승차를 해도 되는 동생은, 모든 버스 기사와 불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버스 기사는 이제 얼굴 익혔으니까 매번 제시하지 말고 그냥 타라고 말했다고 한다.
매번 장애인 복지 카드라면서 카드를 제시하면 그녀가 늘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할까 봐 배려해 주신 셈이다.
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을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 참 고마웠다.
그런데 어떤 버스 기사는 도대체 장애 몇 급이냐면서 공격적인 태도로 물었다고 한다. 동생이 장애 5급이라고 대답하자, ‘아무나 5급 장애 받는데' 그 사람들이 이 버스를 다 무료승차해도 된다는 말이냐며 계속해서 따지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동생은 버스 민원 게시판에 민원 글을 올렸고 버스 회사에서 이에 대응하고자 전화를 걸어왔다. 정중히 사과하는 말 끝에 게시판에 올렸던 민원 글을 지워줄 수 있냐고 했다고 한다. 보기 안 좋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도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주변에는 장애인이 많다. 그리고 우려하는 사람들의 오지랖과는 달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나름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우여곡절은 물론 있겠지만, 인생에 우여곡절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힘든 일을 더 겪을 수는 있고, 살아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더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비장애인이라면 모르고 지나갔을 아주 작은 성장이나 성취를 빛나게 하기도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대하지도, 하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다. 비정상인 것도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