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하여
타로 점이나 사주팔자 혹은 신점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도 몇몇 분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미래를 점쳤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저의 첫 신점 소식은 수능 대박날 거라는 어머니의 말씀이었는데요. 신점이 딱히 믿을 게 안 된다는 걸 그때부터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가끔씩은 용한 점집 얘기를 들으면 나와 가족의 운명을 알고 싶어 문턱을 넘곤 했습니다. 그리고 막상 애매하고 포괄적인 소리를 듣고 나면 정말 운명이란 것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태어난 순간 지하철 노선처럼 정해진 경로를 걸어야 하는 걸까요?
과학에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 같은 원리임을 뉴턴이 발견하고부터 서양에서는 결정론이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정론이란 뉴턴역학이 야구공을 던졌을 때의 힘과 질량을 알면 떨어질 위치를 알려주는 것처럼, 입자의 초기값을 알면 우주의 미래도 알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마치 태어난 날의 시점과 그 사람의 기질을 알면 미래를 점치는 사주팔자와 비슷하지요.
그러나 20세기 이후에 결정론을 전면으로 반박하는 이론이 등장하였는데요. 그것은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가 관찰되기 전에 확률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양자역학이 나와서 조금 당황하셨겠지만, 수학 기호가 나오는 일은 없으니 조금만 더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양자역학은 입자(원자)에 대한 물리법칙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물질의 질량과 크기가 원자만큼 아주 아주 작아지게 되면 질량이 큰 물체(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세균부터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까지)와는 다른 물리법칙을 가지기 때문에 물리학에서 분가했습니다. 양자역학은 사차원에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직관 부딪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도 일부만 이해하기 때문에 지금은 하나의 문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합니다.
‘입자는 관찰되기 전에 확률(가능성)로 존재한다.’
양자역학 분야에서 꽤 유명한 ‘이중슬릿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 과정은 글보다는 유튜브로 찾아보시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저는 위 문장인 이중슬릿 실험의 결론만 말하겠습니다. 결론을 조금 듣기 쉽게 정리하자면 '매순간의 관측이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판단과 행동이 수십 수만가지의 우주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이중슬릿 실험은 다중우주(멀티버스)의 근거과 되는 실험입니다.
그리고 2500년 전 입자가속기도 없던 시절에 양자역학의 실험과 같은 결론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띠(알아차림,깨어있음) 한 번에 우주가 뒤바뀐다.' 부처님이 했던 말씀입니다.
언젠가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서 혼자 이런 상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와 마주칠 수많은 사람중에 어쩌면 NPC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나도 이 세계에서 타인에게 퀘스트나 주는 NPC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고요. 조금은 엉뚱했던 그 생각이 돌이켜보면 노예의 삶과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노예와 자유인을 가르는 기준을 찾지 못했습니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쿤데라는 개의 인생곡선은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는 동그라미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설 '생쥐와 인간'에서는 '소작농 대부분은 머릿속에 땅 덩어리 하나는 가지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벌어들인 소작료로 위스키를 마시고 사창가로 향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매끈한 포물선을 그리며 종착지가 예견된 삶, 관성적이면서 운명적인 노예의 삶을 예로 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 대부분 내 몸 속에 유전자와 호르몬이 시키는 걸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관찰자적 시선의 빈도수를 늘리려고 했던 것이 제가 명상을 시작하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그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싶어 잠자기 전 팔굽혀펴기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글로 끄적거리고 나니까 내가 우주를 바꾸려고 했구나 싶은 기분이 드네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