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달 Sep 29. 2023

지금까지 이렇게 난해한 산행은 없었다.(우중산행)

외솔봉-작은동산-모래고개-무쏘바위-성봉표지목-남근석-무암사-무암교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얼마 전 이비인후과에 방문했을 때 비치되어 있는 셀프 혈액체크기에서 혈압수치가 140 넘었던 것이 생각났다.  걱정되어 약국에 다시 한번 체크했더니 120 정상 수치로 나와서 안도했었는데,

뇌졸증? 뇌경색?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 무렵, 어깨 쪽이 뭉쳐서 우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맞다! 분명 어제의 산행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여태껏 이렇게 난해 했던 산행은 없었다.

인대근육에 손상이 왔는지 며칠 동안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아서 산행기를 쓰는 지금도 타이핑에 매우 힘이 든다. 


집을 나설 때부터  가랑비가 내리는 데 심상치 않았다. 올 가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 가을장마인가 보다.  올여름에도  다른 해보다 장마가 길었던 것 같은데...

일기예보 앱에는 하루종일 비 올 확률 30% 내외로 오다 멈추다를 반복하겠다고 뜬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정기적으로 계약이 되어있는 산악회 전세버스는 예정대로  산행지 제천으로 달리고 있다. 가는 중에 비가 멈춰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무색하게도 제천으로 다가갈수록 내리는 비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버스를 돌려서 싸 온 점심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농담으로 회원들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심시키려는 노력도 불구하고  비는 그치지 않았고, 버스는 충주호 청풍호반 근처 교리에 도착했다. 낯익은 풍경이다. 출발지가 수년 전 옥순봉을 산행했을 때 하산 종착점이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서둘러 비옷을 챙겨 입어야 했다.


9시 55분!  곧바로 작은동산 등산로 입구에 올라섰다. 그리고 첫 번째 목적지인 외솔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외솔봉까지는 시작부터 통나무로 만든 가파른 오르막계단을 사정없이 밟으며 올라야 한다. 비에 젖은 나무계단은 매우 미끄러워서 나무를 피해서  흙을 밟고 올라야 조금이나마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조심조심 힘을 주어 약 20분쯤 숨 가쁘게 산을 오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인제 비옷을 벗어도 된다. 비가 잦아들기 시작한 것도 이유이지만 이제부터는 옷이 비에 젖는지 땀에 젖는지 모를 정도이기 때문이다.

비옷을 벗고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 밑으로 아름다운 청풍호반이 안개에서 벗어나면서 청풍면 쪽에서 우뚝 솟은 산아가씨가 진녹색 치마에  하얀 구름 저고리를 입고 서 있는 것이 보이고, 청풍리조트와 호반케이블카가 있는 호수가 풍경과 함께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 (구름저고리는 산할아버지의 구름모자 보다 훨씬 더 귀하고 예쁘다)


비가 그쳤다.

멀리 군데군데 파란 가을 하늘을 드러내는 청풍호반의 풍경이 4k급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면, 가까이에서는  푸른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보석처럼 빛나고, 봉숭아물을 들인 새끼손톱같이 예쁘고, 작은 이름 모를 꽃들과 젖은 땅을 기기묘묘한 자태를 다투 듯이 뚫고  올라온 각양각색의 버섯들이 발 밑 풍경을 다채롭게 보여 주고 있다.

땀을 흘리고 두 다리로 산에 올라선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안개가 밀려온다.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순식간에 하얀 막을 드리운다. 끝난 연극을 다시 보겠다는 미련을 버리고 오르기 시작했다.

젖은 낙엽이 융단처럼 폭신한 길을 조금 오르니 적어도 높이 3-4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넓고 커다란 암반이 긴 밧줄을 건네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위험하니 잡고 올라오란다. 친절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 번에 한 명씩!  각자 익숙한 암벽등반 스킬을 발휘하면서 조심스레 오른다. (나중에 이 밧줄이 내 손을 마비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원주택을 짓게 된다면 정원에 두고 싶은 작고 앙증맞은 물개바위도 있고, 올라서기 좋은 커다란 가오리상어바위도 있다.

크기를 알 수 없는 혹등고래 등 같은 암벽을 타고 각 양의 포즈로 추억에 보탤 시간을 캡처했다.

이런 것이 산행의 재미이다. 

외솔봉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지 유난히 멋진 소나무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기암들과 함께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르면 오를수록 먼 풍경들이 한 폭, 한 폭  소나무를 주제로 그린 진경산수화 같다. 멋진 풍경에 취해서 터져 나오는 감탄과 시원한 바람의 상쾌를 맛 보며 산을 오르니 힘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외솔봉에 도착했다.

가히 작은동산의 명품다운 자태이다. 신라시대 때의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소나무에 앉으려다 벽에 부딪혀 죽은 새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얀 안개 배경에  커다란 바위를 가로로 올린 다음, 굵기와 크기가 다른  바위 대 여섯을  세로로 변화를 준 듯, 주지 않은 듯 포개놓고 그 사이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은 것이 그림 잘 그리는 신령님이 그려 놓은 것 같다. 홀린 듯이  외솔봉을 바라보았다. 사진으로 캡처해 놓고 두고 보는 것도 좋겠지만 안구 속에 깊이깊이 박아 놓고 싶었다.


외솔봉을 지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커다란 바위 암벽 밑에 잘 다듬어진 자연석 하나가 촛대처럼 올려져 있다.

545m 작은동산이라고 쓰인 정상표지석이다. 내가 본 가장 인간적인 정상표지석 글씨이다. 표지석의 모양도 기계로 매끈하게 다듬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글씨처럼 조금은 투박스러웠고, 작은동산이라는 이름처럼 귀엽고 예쁘게 서 있는데 건드리면 넘어질 것 같아서 근처도 가지 않았다. 10시경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대략 2시간 남짓 걸린 모양이다.  


작은동산의 정상은 널찍하고 평평한 공간이라  식사하기 딱 좋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각자 준비해  온 정성스러운 오찬을 함께 즐겼다. 오늘도 잡곡밥에 엄나무순나물, 계란말이, 오징어젓갈, 마늘과 호두가 들어간 멸치볶음, 기억이 안 나서 다 나열을 못할 정도로 많은 반찬이 깔렸다. 그중에 오늘의 인기메뉴는 보온통에 넣어 온 따근따근한 닭발볶음과 재명형님의 형수님이 남편을 위해 새벽정성으로 싸 준 김밥이다. 두 가지 다 인기가 너무 좋아서 주인은 몇 개 맛보지도 못하고 동이 나버렸다. 아쉽게도 나는 장군형수의 닭발볶음을 못 먹었다. 형수가 몇 번이나 먹으라고 불렀는데 딴짓하다 놓쳤다. 역시 공부할 때나 먹을 때나 딴짓하면 안 된다.


점심을 먹은 후 코스를 결정해야 했다.

벌써 몇 사람은 A코스인 모래고개에서 성봉표지석을 거쳐 남근석- 무암사 쪽으로 출발했다. 비가 내린 후라 미끄러움이 있다손 치더라도 남은 사람들과 짧은 B코스(모래고개-계곡 따라 교리로 원점회귀)로 갈려니 조금 아쉬웠다.  몇 번을 망설이든 끝에 결정했다. 명배 형님네가 먼저 A코스로 마음을 정했다. 우리도 함께 하기로 했고, 성춘형님네, 그리고 찰리 형님 총 7명이 일진을 쫒아서 출발했다.


모래고개까지는 내리막이다. 대략 고도 300m까지는 내려가야 한다. 그다음은 예상되겠지만 오르막이다 그것도 급경사다.  성봉표지석까지는 고도 800m 가까이되는 코스라 당연했다. 급경사길이 다소 힘은 들지만 이편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도 많이 없는데 빠르게 치고 올라가서 느긋한 하산길을 택하는 편이 낫지 않는가?


굽은 남근석까지 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면마다  멋진 바위들이 많다. 우뚝 선 모습들이 한결같이 기품이 넘치고  수 천만년 자신의 자리를 버티면서  비와 바람에 새겨진 문양들이 제 각각이다. 특히, 눈을 끄는 것은 수 천년 달라붙어 문신이 된 이끼들의 형상들이다. 아마도 인근 충주호로 인해 안개가 많이 생기다 보니  바위에 습기가 많아서 이끼가 자라기 좋았을 터이다.  그래서 이 산은 유난히 이끼가 많다. 오늘은 비가 내려 유난히 나무며 바위에 낀 이끼들이 더 선명하고 푸르다.


굽은 남근바위에 도착했다. 남자의 상징인 그것과 신기하게도 닮았다. 하산길에 만나게 될 남근바위가 거사를 치르기 전의 힘찬 남자의 그것이라면 이 바위는 조금 전에 거사를 끝내고 바지 속에서 푹 쉬어야 할 형상으로 생겼다. 당연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손으로 만져도 보고, 받쳐도 보고, 기대어 서 보기도 했다. 웃겼다.


조금 쉬어갈 요량으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공기원근법에 의해 가장 흐릿한 월악산 영봉이 멀리 보이고 왼쪽부터 국망봉(1420m), 용바위봉(750m), 단백봉(900m), 금수산(1015m), 망덕봉(926m), 제비봉(718m)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써 놓고 나니 내가 산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엄청나게 풍부한 사람처럼 보이지?

세상 참 좋다. 안드로이드 체계를 쓰는 앱에서만 구동되는 산악 관련 프로그램인데 앱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찰리 형님이 가지고 계셔서 몇 장의 사진을 요청했었다.  찰리 님은 얼리어답터이며, 효율성의 대가다.


여기서부터 성봉표지석까지는 구간 전체가 암릉이다. 비가 와서 미끄럽기도 하지만 밧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오르기 힘든 구간이다. 하지만 밋밋하게 걷기만 하는 산행보다는 암릉을 타는 산행이 변화도 많고 훨씬 재밌다. 안전을 위하여 한 줄에 한 사람씩 대화할 새도 없이 오르다 보니 성봉표지판(805m)이다. 작은동산에서 동산을 가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약속된 시간이 두 시간 정도 남아서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남근석 방향으로 내려갔다.(착각이다. 비가 와서 미끄럽다는 것을 계산에서 뺀 결과이다.)


멀리 충주호가 다시 보인다 엷은 안개가 깔려서  선명한 아름다움 이라기보다는 조금 신비로운 풍경이다.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양은 많지 않지만 이 비가 우리의 하산길을 엄청나게 괴롭힐 줄은 정말 몰랐다.

굽은 남근바위에서 성봉까지 암릉구간을 역으로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될 줄 알았는데 훨씬 더 경사지고 가파른 길이다.

구간마다 큰바위와 작은바위가 첩첩이 쌓여있고, 바위사이로 굵은 밧줄이 대기하고 있다. 비까지 오고 있어 엄청 미끄럽다.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다치면 정말 큰일이다.

밧줄에 몸을 의지하면서,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용을 써야 했다. 그러다가 집중력이 조금만 떨어지거나 잘못 밟으면 사정없이 미끄러진다. 무릎이 벌써 두 번이나 바위에 부딪쳐서 까졌다. 쓰라리고 아프다.

나의 아내 선혁이 많이 걱정되었지만 나보다 더 침착하고 주의력이 좋아서 인지 잘 내려간다. 다행이다. 다른 일행들도 침착하게 잘 내려가고 있다. (내려와서 이구동성으로 누구라도 다칠 것 같은 위험한 하산길이었다고  입이 맞추어졌다. )


대략 1시간 정도를 밧줄에 의지하고 내려가다 보니 온몸은 땀과 비에 젖었고, 신경은 곤두섰다.

설악산 공룡능선도 이 보다 난해하지는 않았다. 수년 전 공룡능선을 산행할 때도 날씨가 딱 오늘 같았다. 지리산 종주와 함께 대한민국 2대 산행코스에 걸맞게 길고 험해서 힘이 들긴 했지만, 이처럼 위험하지는 않았었다. 정보의 부재 탓이다. 산행 전에는  산에 대한 정보와 코스를 검토하고 파악한 뒤에 산에 올라야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다. 최소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라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적어 놓은 산행기를 읽어 보는 것이 안산즐산에 도움이 된다. 내가 쓰는 이 산행기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꼭 도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남근바위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남근바위 중 남자의 실물과 가장 흡사하다는 바위답게 씩씩한 기상으로 우뚝 솟아있다.

특별히 감상할 것도 없다. 자주 보는 것이라...

위험했던 구간인 만큼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는 계단으로 된 비교적 안정된 코스다.


등산로를 20분 정도 내려오니 무암사계곡이다. 비가 내려서 인적이 없고 어두워 보이는 계곡의 깊숙한 공간에서  연신 맑고 시원한 물을 하얗게 부수어 정화시키고 있었다.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마중 나온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 그럴 수 없었다.

7명의 일행이 무사히 이곳까지 도착한 것에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다. 그만큼 위험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난해했던 산행은 없었다. 산 경력이 좀 붙었다 해서 자만해서는 안된다. 산에서든 인생에서든 늘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산행이었다.



외솔봉-작은동산-모래고개-무쏘바위-성봉표지목-남근석-무암사-무암교
청풍면 쪽에서 우뚝 솟은 산아가씨가 진녹색 치마에  하얀 구름 저고리를 입고 서 있고, 청풍리조트와 호반케이블카가 있는 호수가 풍경과 함께 한 장의 그림엽서 같다
푸른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보석처럼 빛나고, 봉숭아물을 들인 새끼손톱같이 예쁘고, 작은 이름 모를 꽃들과 젖은 땅을 기기묘묘한 자태를 다투 듯이 뚫고  올라온 각양각색의 버섯들
정원에 두고 싶은 물개바위도 있고, 올라서기 좋은 커다란 가오리상어바위도 있다.크기를 알 수 없는 혹등고래 등 같은 암벽을 타고 각 양의 포즈로 추억으로 남길 시간을 캡처했다.
외솔봉! 이름에서 주는 외롭고 고독한 느낌보다는 닭 떼 속에서 빛나는 두루미 같은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이다.
내가 본 가장 인간적인 정상표지석 글씨이다. 표지석의 모양도 기계로 매끈하게 다듬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글씨처럼 조금은 투박스러웠고, 표지석이 이름처럼 귀엽다
하산길에 만나게 될 남근바위가 거사를 치르기 전의 힘찬 남자의 그것이라면 굽은남근바위는 조금 전에 거사를 끝내고 바지 속에서 푹 쉬어야 할 형상으로 생겼다.


세상 참 좋다. 안드로이드 체계를 쓰는 앱에서만 구동되는 산악 관련 프로그램인데 앱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찰리 형님이 가지고 계셔서 몇 장의 사진을 요청했었다.  


 7명의 동지들...(굽은남근바위에서)


나의 아내 선혁이 많이 걱정되었지만 나보다 더 침착하고 주의력이 좋아서 인지 잘 내려간다. 다행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난해한 산행은 없었다.

종착지 무암사 계곡! 비가 내려서 인적이 없고 어두워 보이는 계곡의 깊숙한 공간에서  연신 맑고 시원한 물을 하얗게 부수어 내고 있었다.


7명의 일행이 무사히 이곳까지 도착한 것에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다. 그만큼 위험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의 끝자락!  마지막 물놀이 산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