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오후
패셔너블한 닭 한 마리가 정처 없이 걷고 있다
이런 분위기 있는 닭은 처음
화실의 그림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모양이지
사색이 깊어 보이는 요 녀석의 발바닥에 물감을 찍어
발자국을 찍어내면 ‘닭의 사색’ 작품이 나오겠다는 생각
오리의 근육이 섹시해 보이긴 처음
집 앞 디푸드에 탄탄한 근육질의 오리들이 핫둘핫둘 라인업
불과 얼마 전까지 오리 피트니스 센터에서 빡센 트레이닝을 받아온 게 분명하다
어떻게 만든 식스팩인데
소개팅도 나가보기 전에 이리되었다니…
이보다 슬플 데가 있나
카페 앞 화단에서 이리 꼬리가 긴 도마뱀을 만나긴 처음
우리 아들에게 꼬리를 강탈당해 분해하는 미스터 도
내가 대신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마지막 잎새를 아쉬워하는 왕관머리 새를 만난건 처음
확대해 보았지만 카메라 화질이 아쉽군. 그래도 왕관이 보여서 다행이야
우리집 담장에서 두꺼비 부부를 발견하긴 처음
너희들~ 새벽녂에 딱 걸렸어~
우리 집에 십 년 넘게 함께 살며
무화과 나무의 애벌레부터 모든 동물들을 진두진휘하는 대장 청설모가
어느새 새끼 고양이 만해졌는데
당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카메라만 들이대면 빛의 속도보다 빨라져
언젠나 청설모 녀석을 렌즈에 담아보려나 하며 사는데
너희마저 그 녀석 아래 속해 있는지 미처 몰랐네.
우리 집은 정말 동물농장이었구나.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주황꼬리새와 여러 종류의 새들이 아카펠라로 나를 깨우고
어떤 날은 어디선가 닭소리도 울려오는
이곳은 도시 한복판 하노이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