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사파의 날씨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겠냐며 부심을 부렸다. 푸른 하늘 연극 무대의 커튼콜인양 빠르게 열렸다 닫혔다 하던 두툼한 구름들이 정신을 못 차리게 환상적 뷰를 선물했었다.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채로운 구름을 구경시켜 주던 사파의 하늘은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은 한 편의 뮤지컬 같았고…
하지만 늘 항상 맑을 수만은 없는 법.
겨울 사파는 이틀 내내 일명 곰탕뷰라 불리는 구름에 포옥 담겨 있었다. 인생에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진정 무슨 느낌인지를 온몸으로 가르쳐주기라도 하듯이. 낮에도 안개등이 필수인 버스의 차창 밖은 1미터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시선을 아무리 길게 쏘려 애써보아도 앞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시야를 덮었고… 뒷 좌석에 앉아서 기사님 따라 괜한 헛 브레이크 발길질을 하느라 발목만 시큰. 하지만 감사하게도 진한 여운이 남은 여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돌아온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틀 내내 그 웅장한 사파 뷰 한 컷이 보이질 않으니 아쉽고 답답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 덕에 우린 농밀한 구름 나라를 여행했다. 원래 이런 속에서 또 평소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더 깊고 진하게 시선의 밀도가 조정되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 축복의 여행이 된다.
구름 바로 아래
아니 어쩌면 구름 마을 속에 자리 잡은 우롱차 밭.
신비로운 우롱의 나라가 하얗게 떠는 듯 보였지만 벚꽃 나무들을 친구 삼아 외롭지는 않은 듯했다.
녹빛의 우롱 나무 위 보라꽃이 은은하고.
몽환적인 하얀 질감의 구름은 차 언덕을 살포시 감싸 안아 준다.
우롱 차밭을 나서는 길목에는 연기 폴폴 나는 티팟을 기울여 차 한 잔을 또로록 따라 건네준다. 쌉쌀 씁쓸하게 혀 끝을 적시는 따듯한 우롱차 한 모금에 추위가 모두 녹아버리고 스카프 위에 송글송글 맺힌 빗방울들은 구슬처럼 반짝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파의 우롱 차밭을 검색해 보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곳이 원래는 꽃주홍빛 벚꽃에 초록 우롱나무가 어우러져 알록달록 화려한 걸작을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니…
11월 초부터 2,3월 사이에 벚꽃이 만개를 한다는 데 12월 중순에 애석하게도 꽃잎은 진 것인지… 어쩌면 아직 피어나지 않은 것인지…
언젠가 이리 눈부신 우롱 언덕도 마주할 날도 있겠지. 아쉬움 머금어본다.
초록 주홍빛 그라데이션이 눈부시게도
구름빛 담은 희뿌연 언덕이 몽환적으로도
때를 따라 아름다운 곳
구름 속 고요한 나라
겨울 사파의
우롱 언덕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