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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와 침묵

by 마틸다 하나씨 Jan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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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와 침묵


깊은 바다로의

잠수가 시작되면

바다의 침묵은

나의 침묵이 된다


침묵의 대가는 희열

그러나

고독했다


말을 통해

억울함을 소리 내지 않는 법을 연습했다


다만

신을 통해

억울함의 침묵을 깨는 법을 터득했다


세상도 침묵하던 시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억울한 소문들은

한 밤의 하이에나 떼처럼

울어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방심의 틈을 비집고

내 목덜미를 관통했다


피가 났지만

살아남았다


쿵쿵쿵쿵

가슴 치던 밤의 시곗초침

천 번쯤 돌려 감았을까


소문의 우두머리는

뱀의 머리처럼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마치

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마리오네트처럼


덥석

내 손을 감싸 잡은 채

낯설고 뜨거운 물방울

그의 눈 아래로 굴러 내렸다

“그때…

내 생각이 잘못됐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미. 안. 해. 요“

네 음절의 희열이

먹먹한 귓바퀴 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갔다


육중한 잠수함의 무게가

바닷물 눌러 내릴 때의

거대한 중량

그것은

내가 지킨 침묵의 무게


무거움을 버틴 대가

과연

세상을 운행했다



무대 뒤엔

순번을 가늠할 수 없는 배역들이

아직 여럿 대기 중이다.

신의 손가락은

또 다른 마리오네트를

끼우고 계실 것이다



여전히 남은

소문 거품들이

물고기 꼬리짓에

보글거리는 물방울들처럼

여전히 바다를 귀찮게 했지만

금세 하나씩 핑핑

사라져 갔다


보글거리고

깨지고

보글거리고

깨지고


성가시지만

터지고 사라지는

하찮음이

증명될 뿐


녹아내린 바다가

마침내

고요를 얻는 시간은

응고된 촛농과 같다


침묵은 슬픔이 아니며

잠수는 숨는 것이 아니다


신뢰하고

숨을 참고


물 밖으로 입을 벌려

참았던 숨

뿜어낼

바로 그 순간 다다르면


돌고래의 경쾌한 포물선은

바다 위 희열의 능선을 그린다


육중하게

내 삶을 짓누르던 그 무게


알고 보니


이방인의 가벼운 슬픔 한 장이였을 뿐


한낱 종이 위에

덩그러니 놓였던

생각의 통증은

다만

시를 쓰게 했다




막스 피카르트가

자아와 침묵

사물과 침묵

역사와 침묵

형상과 침묵

시간과 침묵

시와 침묵등을 이야기했을 때


그 밑 한 줄 더하여

연필소리 내며 쓱쓱 써 내려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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