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룩주룩 비는 내리고 택시문을 열고 우산을 펴는 동안
빗줄기에 옷을 적시며 내려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날이다
여기가 맞냐고 재차 묻는 나에게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아마 찾는 가게가 있을 거라며
그랩 운전자는 나를 낯선 길가에 떨구고 떠나버렸다.
내리고 보니 목적지와 15분은 떨어진 곳에 나는 서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를 내려준 그랩 택시는 이미 사거리를 지나 꽁무니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정확한 주소지로 차를 예약했건만 구글맵을 따라 움직이는 그랩 운전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실타래가 꼬이기를 세 번째 중이다.
쌀국숫집 처마를 따라 또르륵 흘러내린 빗물이 우산을 비껴간 오른팔 소매를 적셨다.
짜증이 나려고 하는 순간
쌀국숫집 냄비 뚜껑이 열리고
포근한 하얀 김이 비를 머금은 공기 속으로 모락모락 몽글몽글 사라져 간다.
마음도 따라 몽글해지며 목구멍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하필이면 비도 너무 많이 내리는 날이라 다시 그곳을 찾아 걸어가기에도 막연하다.
그냥 여기서 쌀국수나 한 그릇 먹고 집으로 돌아갈까?
비 오는 길거리에 축축이 앉아 쌀국수를 먹고 가는 일도 막연하여
쌀국수 냄새가 사라지기 전까지만 일단 걸어보자고 그의 말대로 오른쪽 코너를 무작정 돌아섰다.
아니 여기가 거기였어?
베트남 시내 골목에 조용히 숨어 있는
그러나 운치 있기 더할 나위 없는 레주언 길의 기찻길이 나타날 줄이야.
더군다나 나로서는 드물게 걸어볼 수 있는 곳
비 오늘 날의 레주언 기찻길이었다.
여러 번 이 기찻길을 지나칠 때마다
와~예쁜 길이네 하면서 고개를 돌려 쳐다보곤 했었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차를 갑자기 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한번 지인의 개업식에 들르러 레주언 길에 온 적이 있었지만
그 날도 기찻길을 걸어 볼 여유는 없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머피의 법칙으로 인도한 그랩 기사덕에 얻게 된
얼떨결 기찻길 밟기 선물이라니.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하노이의 기찻길은 디엔비엔푸 거리에 있다.
무섭게 달려오는 기차가 옷깃을 스치며 달려나간다.
그 좁은 기찻길가의 카페 의자에 앉아
어깨가 쪼그라드는 쫄깃한 커피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피티 벽화가 화려하고 각국의 사람들로 늘 활기차고 북적이기에
때로 그 곳의 여행자들과 섞여보는 일도 꽤 매력있는 나들이다.
오늘처럼 비마저 내려 더욱 평온한 레주언의 기찻길은
하얗고 분홍 빛이 짙게 물든 꽃들이 소리 없이 담장을 타고 내려앉아 있을 뿐이다.
예기치 않은 십 분의 행복과 고요를 누렸다.
이 길에는 매일 하루에 두 번 기차가 지나간다하는데
기찻길 옆 오두막 살이를 하는 이들은
기차가 내뿜는 연기 소리에 깨어지는 고요의 소리를 기억하며 살아가겠지.
머피가 샐리로 변신하는 날이
이렇게 가끔 나타나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