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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Nov 06. 2017

아부지가 산에 가는 이유

어느덧 세월 흘러 내가 아부지가 되고 아부지는 할아부지가 된 요즈음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른다는 아부지 말은 순전 거짓이다. 맑은 새벽 집을 나서 술에 전 낡은 몸으로 집에 들어오는 아부지를 볼 때면 산은 거대한 안주거리 다름 아니게 생각되었다. 그게 싫어 아부지 따라 산에 나선 적 없다. 나도 가끔 산에 가지만 근교 얕은 자락만 훑고 오는 게 전부기에 굳이 먼 지방까지 산 찾아 술 따르는 아부지 심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해장 라면을 끓여드리며 아부지께 여쭌 적 있다. 이럴 거면 왜 산에 가세요? 아부지는 나름 비장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던가? 거기, 산이 있으니까. 물론 그건 아부지 것이 아닌 어떤 시인의 시구라는 걸 익히 알고 있던 나는 조금도 감동하지 않았지만. 아무지는 본인 하신 말씀이 제법 맘에 들었는지 껄걸 웃으시며 면발을 빨아들였다. 기세 넘치는 호로혹에 라면 국물이 사방으로 튀는 것은 아랑곳없이.    


아부지는 늘 아랑곳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겨울 눈이 무척 내리고 난 뒤 주말. 기어이 산행에 나서는 아부지 귀에 걱정하는 가족들 우려는 들리지도 않았다. 날씨 상태는 물론이고 몸 컨디션이 어떻든 아랑곳없이, 아부지는 일요일이면 산에 올랐다. 장비도 별 아랑곳없으셨다. 등산화는 밑창이 떨어져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바꾸셨고, 한 번 구입한 용품들은 기어이 다 부수어질 때까지 사용하셨다.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부지 지론이었다. 물론, 그것도 어디서 주워들은 말씀.    


또 다른 언젠가, 산행 다음 날 숙취로 두통약을 찾는 아부지에게 여쭌 적 있다. 이럴 거면 왜 산에 가셔요? 아부지는 이번에도 비장한 얼굴로 답했다. 내려오기 위해 오른다. 그건 제법 그럴듯하게 들려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이 흡족했는지 아부지는 제식 훈련처럼 각을 딱딱 맞추어 팔을 움직여 약을 입에 넣고, 물을 삼켰다. 쓸데없이 절도 넘치는 동작이 어쩐지 남자다워 보여서, 이따금 나도 약을 먹을 때 그걸 따라 하게 되었다.    

아부지는 늘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기합소리 하나 허투루 하는 법 없었다. 무거운 걸 들 때에는 후리얏챠! 하고 걸걸한 호걸 소리를 냈다. 소주는 당연 글라스에 따라 마셨다. 무얼 고치는 데에는 특히 선수셨다. 망가진 물건을 두고 쩔쩔매는 엄마나 나를 보면 참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휘리릭 뿅, 대수롭지 않게 무엇이든 고쳐냈다. 그것이 전자제품이든 목공제품이든 종류에 큰 구애받지 않았다. 집안의 설비도 웬만한 건 전문가 부를 필요 없이 뚝딱이었다.    


그러던 아부지가 명란젓 통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며 나를 찾을 때의 당혹감이란!    


어느덧 세월 흘러 내가 아부지가 되고 아부지는 할아부지가 된 요즈음, 아부지는 당면한 일들이 솔찮이 버거운가보다. 아랑곳하는 일들이 늘어가고 힘이 달려 숨을 몰아 쉬는 순간이 잦아진다. 소주 서너 잔에 취기를 보이시는가 하면 물건 하나를 고치는데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망가진 손주의 소리책을 고치려다 결국 실패하신 순간 아부지 눈에 서린 허탈감에선 울지도 못할 서러움이 느껴졌다.    


얼마 전 아부지께 내가 먼저 산행을 제안했다. 일생 처음이었다. 부쩍 어깨가 처지신 아부지를 보자니 괜스레 그런 말이 나왔던 거다. 이번 일요일에 산 안 가실래요? 아부지는 퉁명스런 말투로, 맘대로 해, 라고 답하셨지만 엄마 수다에 따르면 담날부터 창고의 등산 장비들을 꺼내어 닦고 정비하시느라 분주하셨더란다.    


어차피 큰 맘먹고 제안한 것 이왕이면 표나는 곳으로 가자 해서 설악 대청봉을 목표 삼았다. 나이 먹으며 서먹해지는 여느 부자 사이처럼 우리도 특별한 대화 없이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오르는 내내 나는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로, 서울 북한산이나 가자 할 걸 싶었다. 운동부족의 둔한 몸을 쩔쩔매며 기어가는 나와 달리 아부지는 성큼성큼 잘도 올랐다. 걷는 모양새만 보면 내가 아부지고 아부지가 나인 듯 싶게.


참 대단한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만 중간에 포기할까 숱한 고민을 했지만, 아부지가 그처럼 신나는 기운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참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그만둘 수 없었다. 이따금, 물 마실래? 잠시 앉았다 갈래? 묻는 아부지 말소리와, 소리를 실은 숨에서 설렘마저 느껴졌다.    


다녀온 후 나는 이틀을 골골대고 한주를 파스와 함께 살았다. 내 입에서 아이고 소리가 끊이지 않는 동안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서도 카톡 소리가 부지런히 울렸다. 아부지가 자꾸만 이런저런 산행코스 정보를 보내오는 탓이었다. 언제 또 갈래? 그게 참 그리도 좋으셨을까 짠하면서도 ‘아이고, 아부지 제발.’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 카톡 온 김에 아부지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다는 걸 알아챘다. 확대해서 본 프로필에는 대청봉 석판 앞에서 두 팔 벌려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쓰여 있더라.    


- 나는 아직 살아있다.    


평생토록 궁금했던 아부지가 산에 가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스케쥴러를 펼쳐 일정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아부지에게 답장을 했다. 다음 달 둘째 주 일요일 어떠세요? 근데, 이번에는 그냥 북한산 가는 걸로 하죠?    


이어 칼 같이 날아온 아부지 답장이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 에이 원 참. 시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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