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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Nov 06. 2017

때론, 사진에 없는 순간이 좋다

기억을 더듬어 하나씩 순간의 요소들을 꺼내 맞추어 보는 일은 간절하다

 때론, 사진에 없는 순간이 좋다.

 

기억에만 있는 순간들. 희미해져 가물거릴 기억들. 서서히 나도 몰래 잊힐지 모를 추억들. 오직 그때 그 공기였기 때문에 의미 있는 순간들이 있다. 사진은 선명하게 순간을 기록하지만 앵글을 맞추느라, 초점을 잡느라, 셔터를 누르느라 신경을 쏟는 동안 다시 오지 않을 중요한 감정들이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들은 삶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름으로.

 

찰나를 잡아두는 것만큼 찰나를 놓치는 것도 중하다. 순간을 함께 하는 상대와 순간에 있던 풍경과 순간을 지나는 감정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느라 이런 것들을 놓친다면 기록이 과연 내 기억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 장면을 잡아 두는 것과 그 장면을 살아가는 건 조금 다른 일이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 주로 개인이나 단체의 행사 기록 같은 걸, 어느 정도는 업으로서. 타인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예쁘게 보정해서 데이터로 넘겨준다. 그리고 돈을 받는다. 돈의 대가로 내가 제공하는 건 비단 기술만이 아니다. 거기엔 나를 지우는 몫이 포함된다. 동 시간, 같은 공간에서 촬영하고 있지만 대상의 순간에는 내가 없어야 한다. 철저히 관찰자로서 대상의 삶 한편을 기록할 뿐. 대상이 촬영자를 의식하지 않을수록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 사진이 나온다. - 화보나 작품 사진은 경우에 따라 예외가 적용된다. 촬영자  자체가 대상과 교감하여 환상적인 순간을 창출해내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건 오로지 촬영을 위해 이루어지는 일이다. -  


사진 저변이 넓어졌다. DSLR을 들쳐 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보는 것이 익숙하다. 취미로 갖춘 카메라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종보다 더 상위의 것인 경우도 제법 흔하다. 앱스토어 전체 매출 상위권에는 사진 보정 툴들이 즐비하고, 휴대폰 카메라는 웬만한 미러리스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거의 전 국민이 사진인구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특별한 인생의 찰나를 담기 위해 일상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들고 있다. 누구나 주머니나 가방 속에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 하나쯤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은 그렇게 무수한 기록으로 안전하게 남게 되면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었을는지 모른다. 맛있는 음식 사진을 찍고, 멋진 장소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두는 건 물론 의미 있는 일이다. 다시 보며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행복할 거다.

 

반면, 사진 한 장 남겨 둔 게 없어 기억을 더듬어 하나씩 순간의 요소들을 꺼내 맞추어 보는 일은 간절하다. 소중함보다 더 소중한 파편이다. 기록이 없기에 필사적으로 잊지 않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으며 하나씩 짚어가는 데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추억은 어느 정도 포장된다. 때론 추억 보정이 삶에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때의 순간들은 실제보다 찬란했노라고, 그런 왜곡은 응당 아름답다. 기록되었다면 평범했을 나날에 기억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지나온 한편, 기억에만 살아있는 순간들이 삶을 실제보다 뜻 깊은 것으로 만들어줄지 모른다.

 

가끔은 카메라를 넣어두고 그저 순간에 충실해 보는 건 어떨까? 산 정상에 올라 떠오는 해를 끝까지 보고, 잔디밭에 누워 손 잡은 연인의 얼굴만 빤히 보고, 부모님 손을 꼭 잡은 채 나지막이 옛 노래를 부르며 공원을 걷고, 무릎 굽혀 아이와 눈 마주쳐 옹알대는 말을 다 들어주고, 공연장이나 전시회에 가서 감상 그 자체에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천천히 씹으며 혀에 전해지는 음식 맛에 집중해 보는, 그런 시도는 반복되는 일상을 한 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특별한 순간의 연속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사진 한 장 찍지 않는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막상 아쉬웠으나 그래서 더 좋았다. 기록할 수 없으니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가슴에 새기려고 민감하게 주변을 보았다. 다녀온 후 여행기를 쓰는 동안 더 집요하게 묘사하게 되었다. 사진 없이 되감는 기억에는 또 다른 생명력이 있더라.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좋아해서, 가끔 카메라를 두고 나온다.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집어넣는다. 눈으로 세상을 보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고 만다. 이 모습 그대로 사진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린 이미 가장 좋은 렌즈를 얼굴에 달고 있다. 심장에는 커다란 센서가 있다. 그러니 때로, 소중한 순간이 지나가도록 두는 것도 좋겠다. 지나가는 걸 온 힘 다해 목도하는 거다. 시간 지나 더듬더듬 기억하는 과정은 가히 풍요로울지니! 어떤 순간들은 삶에 다시 찾아오지 않음으로, 순간의 장면보다, 순간을 살았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도록.




본 글은 칸투칸에 최초 기고 되어 페이스북 콘텐츠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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