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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Feb 21. 2024

추억 일곱 장

아이가 복권을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엄마, 긁어 보자! 어서요!


1주일 전 부산 여행을 할 때 과자를 사러 들어간 가게에서 산 복권 7장. 천장부터 주르륵 매달린 끈끈이 같았다. 에에엥. 우리의 시선은 파리처럼 복권에 달라붙었다.

몇 장 살 거야?

난 3장.

나는 4장.


과자는 손에 잡히는 것을 아무거나 골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긁자고 했지만 남편은 며칠 더 행복하고 싶어 했다. 평소 알던 모습이 아니라서 놀랐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쪽은 나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안달했다.

복권은 내 눈길을 잡아 끌며 며칠 동안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서 저 얇은 막을 열어젖히고 싶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문득 최고 당첨금인 5억이 되면 그 돈으로 뭘 할까? 란 생각을 했다. 누구 복권인지에 따라 금액을 다르게 나눠 가져야 하나, 내가 고른 게 당첨된다면 그중 적어도 2억은 내게로 올 텐데, 난 뭘 갖고 싶지? 고성능 노트북으로 편집 작업을 하면 더 재미있을 텐데. 방 하나를 아예 낭독하는 녹음 부스로 만들까..

그때 남편의 말을 이해했다. 복권은 생각 속에 재미있는 희망을 곳곳에 뿌렸다.

드디어 아이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반짝거리는 동전을 손에 들고 왔다. 동전을 내게 보이는 것을 보니 고르고 골랐나 보다.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아이의 손이 사사삭 움직였다. 기대로 인한 들숨, 아쉬움의 한숨이 섞였다. 내가 고른 3장 중에는 1천 원, 남편과 아이가 고른 4장에는 6천 원이 숨어 있었다. 결국 복권을 사지 않은 게 되었다. 셋 다 크게 웃었다.

희망에 부풀어 꿈꿔대던 것을 떠올리니 조금 허탈했지만 이렇게 부산 여행에 추억 하나가 더 얹어졌다.

눈부신 바다, 케이블카, 생선구이, 귀여운 열쇠고리보다도 동전으로 비밀을 파헤치던 이 순간이 아이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을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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