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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Feb 24. 2024

때론 이곳이 오래된 친구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느낀다

설거지, 세탁, 청소를 마치고 경쾌하게 열쇠를 집어 든다. 읽고 있는 책 중 한 권을 골라 가방과 함께 챙기고서. 오늘은 치타를 산책시키는 날. 목표물을 노리듯 반쯤 치켜뜬 눈, 몸을 웅크리고 언제든지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두근댄다. 잘생긴 녀석. 내가 타자 치타가 눈을 번쩍인다. 그리고 저수지가 있는 공원으로 향한다. 

늘 그렇듯 추위에 맞서며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 몇 번 시도했다가 발바닥에 모래가 알알이 박히는 듯한 경험을 했던 나는 그저  지인과 함께 느긋하게 산책을 하기도 하고 홀로 걸으며 생각이든 감정이든 정리를 한다. 오늘은 혼자 걷기로 한다. 발을 뗄 때마다 모래가 사각거린다.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산들산들 조심스레 지나가는 모습을 보니 봄이구나 싶다.

차에 타서 의자를 조금 젖히고 잠시 공원을 내려다본다. 들려오는 가지각색의 이야기. 커피숍이었으면 원색적이었을 그것이 옅은 수채화로 그려진다. 적당한 구석에 묻혀 있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고요하게 살아 움직이는 미술관이 최고다. 때론 이곳이 오래된 친구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느낀다. 

그러다 챙겨 간 책을 눈으로 또는 입으로 읽는다. 햇빛이 모여 푸근해진 공기 탓에 살짝 졸음이 몰려들면 나른함을 덮고 졸기도 한다. 좁은 공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따듯해서일까. (기억은 나지 않아 상상해보건대) 흡사 엄마 자궁안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이 되려고 애쓰던 때를 그리워하는 인간. 다시 새로운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인가. 이런 답도 없는 질문을 끝도 없이 하다 고된 몸을 뉘는 해를 보고서야 서둘러 배웅한 뒤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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