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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Jul 04. 2024

러시아에서는 여행이 아름다워진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여행을 일상으로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몸은 '여기'에 묶이고 생각은 '지금'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할 것을 해서 To do 리스트에 좍좍 선을 긋는 재미. 이딴 건 잘 모르겠습니다. 리스트에 남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게를 머금고 제 마음을 누르고 삶의 다른 재미까지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곤 하거든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무료한 것이. 하..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 여행책을 힐끗거리게 되나 봅니다. 눈으로라도 잠시 호강하려고요. 이번에 절 러시아로 데려간 분은 이지영 작가님입니다. 책의 첫머리부터 독자에게 눈을 들이붓는 듯합니다. 좋아하는 인형 하나씩 품고 겨울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에 저도 행복해졌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저도 에어컨 설정온도를 2도 낮추고 여정을 따라가봤습니다.)

작가님 만큼이나 추위를 잘 타는 데다가 특히 러시아의 겨울은 상상조차 안 되는 것이어서 온전히 실감하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로운 러시아인들의 모습에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옛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세르기예프 포사드, 푸시킨이 여러 번 머물렀다는 토르조크, 청명한 호숫가 마을인 로자후또르 등 기약 없는 행선지를 고르며 '지금 거기'를 맛보았습니다. 또 군데군데 자리한 삶에 대한 단상에 절로 수긍이 가서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118쪽  러시아의 겨울은 상당히 춥다. 아찔할 만큼 춥다. 그런데도 누가 러시아에 놀러 오고 싶다 하면 '러시아 겨울의 낭만을 느껴봐야 하는데.'라는 사심이 가득하여 겨울을 제안하지만, 그 누가 선뜻 받아들일까. 러시아에  초대를 해도 한참을 망설이는데 한겨울에 오라니.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은 이 비밀을 꼭 알려주고 싶은데 당최 믿지 못하겠단 눈치들이다.

148쪽  때로는 '놓는다'라는 것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 인생에 자유의 단맛을 살짝 핥게 기회를 내주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조금 늦게까지 자도록 내버려두는 일도, 탄단지 잘 지켜가며 먹다가 맥주 한 잔 따라 놓고 짜파게티에 잘 구운 삼겹살을 얹어 먹는 것도. 오늘 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잠깐 나를 놓는다.'라고 생각하면 잘 쉬어가는 하루가 그리 후회스럽지만도 않다.

193쪽  책이 친구가 된다는 건 내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절절히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내 마음이 방황할 때 책 몇 권 안에서 답이 내려지는 것. 혼자 있는데 혼자가 아닌 것. 세상이 흔들려도 나는 금세 제자리를 찾는 것. 슬퍼도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는 것. 세상이 도전할 일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책이 친구가 된다는 것은.


특히 '책이 친구가 된다는 것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반가워서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제가 짝꿍에게 가끔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책이란 평생 친구를 만들어준 거 그거 하나는 엄마로서 정말 잘한 일 같다고요. 그래서 외동임에도 외로움을 모르고 자란 듯합니다.

훌쩍 떠나기에는 몸과 마음이 무거우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글자 사이사이로 청명한 하늘빛과 시원한 눈바람 혹은 칼바람이 불어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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