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후루룩 먹던 짜장면 속에서 해삼을 만났습니다. 강원도 바닷가 출신인 아빠의 입맛대로 주문한 짜장면엔 늘 해삼이 숨어 있었습니다. 다른 여러 재료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유독 쭈글쭈글한 해삼만이 보였습니다. 평소 가리는 것 없이 먹는 입이었음에도 해삼은 '그렇게 생겨먹은' 것 때문에 늘 그릇에 남게 되었습니다. 지렁이도 손바닥에 올려놓고 개구리알도 주물주물 하며 놀았기에 제가 해삼을 못생겼다고 거부하는 게 아빠는 의외였나 봅니다. 매번 '맛있는데..' 하며 제가 남긴 해삼을 가져가는 아빠의 알 수 없다는 표정이 기억납니다. 그 당시에 저는 거무튀튀하고 우락부락한 해삼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맛을 볼 배짱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젓가락에 둘둘 만 짜장면 가닥을 받아먹게 됩니다. 가족들과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 하고 젓가락을 입에 넣어 한 입 스윽 받았습니다. 단짠맛이 입안에 퍼졌습니다. 차진 면발을 꼭꼭 씹는데 갑자기 물컹 무언가 씹힙니다. 다시 한번 더 씹는데 이번엔 아주 쫄깃합니다. 저는 게임을 하다 말고 온 신경을 입안에 집중하며 이 맛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애썼습니다. 몇 번 더 씹고서 삼킨 후 물어보니 해삼이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맛있는 걸 여태 아빠한테 양보하고 있었단 말인가, 에다가 늘 소스 범벅인 모습으로 제게 외면받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해삼 한 조각을 들고 싱크대로 갔습니다. 해삼을 손에 쥐고 흐르는 물에 조물조물 씻어보았습니다. 고동색 물이 빠지자 검은 몸이 보였습니다. 역시 울퉁불퉁 못생겼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느낀 징그러움은 사라졌고 이후 저는 삼선짜장면 그릇을 남김없이 비우곤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뭣 모를 때' 해삼을 먹어봤기에 지금도 좋아하고 즐겨먹는지 모릅니다. 딸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저는 해삼, 홍어, 회 같은 음식을 먹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보고 만지고 먹어보는 경험에 따라 아이는 순순히 미각의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런데 해삼이 문제였습니다. 아이 눈에 해삼은 검고 미끌미끌한 '지지'였던 것입니다.
저는 해삼을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참 좋은 세상인지라 다음 날 갓 잡은 해삼이 산 채로 부엌 싱크대에 놓였습니다. 누가 손질해 준 것만 먹어봤지 통째로 올록볼록 돌기가 솟은 해삼을 만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순간 고무장갑으로 눈이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이런 것도 만질 수 있는 사람이야 라고 눈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손질하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벼락치기 한대로 해삼의 입과 항문을 가위로 잘랐습니다. 그냥 보면 다 똑같아 보이는데 자르는 과정에서 속살 쪽에 하얀 이빨 같은 것이 보이므로 한 곳은 입이란 걸 알게 됩니다. 그러고는 배를 일자로 가른 뒤 내장을 빼냅니다. 어른 한 입 크기, 아이 한 입 크기로 나눠 잘라서 얼음 물에 담가 쫀득쫀득한 식감을 유지하게 합니다. 처음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소심하게 가위질을 했지만 점차 능숙하게 변했습니다.
어느덧 아이가 조심스레 집게손가락을 가져와 해삼을 꾹 눌러봅니다. 10분쯤 뒤 아이는 제가 꺼낸 해삼 내장을 두 손으로 휙휙 밀어내며 놀았습니다. 초고추장을 살짝 찍어주자 아이는 망설임 없이 해삼을 만났습니다. 그 후 금어기인 7월을 제외하고는 종종 해삼 파티를 엽니다. 인터넷 주문으로 오는 해삼은 1/3만 크고 나머지는 작은 해삼인데, 부드러워서 오히려 좋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애증의 여름을 보내고 난 후 기진맥진한 몸과 마음은 '가을을 탄다'는 핑계로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짝꿍과 아이가 가을이라고 분위기를 잡을 때 저는 해삼을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