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얼마나 버텨줄 지 모르겠다. 새 행성으로의 이주가 40년 후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아마 나는 지구에 뼈를 묻게 되겠지. 애초에 과학자들이 제안한 대로 했어야 했다. 한 사람당 소비할 수 있는 전력을 제한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흥청망청 써대던 인류의 버릇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치겠는가. 세계적인 반발이 있어났다. 국가는 한 발 양보해서 한 가구 당 사용하는 전기용품을 제한하는 데 그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고른 것이 전자레인지와 에어캡슐(체온조절이 되는 수면용 캡슐). 가구 당 세 가지 전기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데, 전등은 딸한테 보냈다. 우리 부부는 나이가 들어 눈도 건강하지 못하니 책을 볼 일도 없고 잘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전등을 써본 지 하도 오래 돼서 인공빛의 색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에는 밤에 불을 켜놓고 책도 보고 영화도 봤었는데. 지금은 태양빛에만 의존해서 생활을 하고 있고 이것도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물건이 줄어드니 이상하게 할 일이 없어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줄어서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전자레인지에서 따끈한 차를 꺼내 에어캡슐로 들어갈 때다. 마치 포근한 관 속에 눕는 것 같다. 지금 당장 삶을 끝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훗날 내 마지막 시간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따뜻한 국화차를 마시고, 이불을 덮고는 편안히 가는 것.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전자레인지에 호두스콘을 쪄서 손주들 간식으로 가져다줘야겠다. 어서 이주계획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자식들이 새 행성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 그나마 안심이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