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뵈러 요양병원에 다녀왔다.

늘 평소와 같이 웃는 얼굴로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by 낭말로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있는 아빠

2025년 8월 16일 토요일, 전 날 친한 형과 술 한잔하고 아침에 조금 골골대고 있었다. 해장 좀 하려고 커피 한잔하면서 아빠와 대화를 하다가 혹시 오늘 할머니 뵈러 갈 생각 없냐는 질문에 어 바로 갈래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이날은 카메라를 챙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여러 사진들이 남아있는 모습들을 보고 확실히 남는 건 사진이구나를 많이 느끼게 되어서 있는 힘껏 모든 걸 남기자는 생각에 거리낌 없이 카메라 가방을 들었다. 요양병원까지 대략 1시간 정도 되는 거리. 차 안에서 아빠가 직접 만든 ai 노래들을 들으면서 가는데 점점 노래들 퀄리티가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놀라기도 했다. 가는 길 휴게소에 있는 던킨 도너츠에 들러서 간호사분들께 드릴 도넛들과 할머니와 먹을 과일들을 몇 개 샀다.


휴게소를 들렀다가 생전에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아빠를 포함 집안 어른들이 다 같이 마련하셨던 아파트로 향했다. 큰아빠 큰엄마 댁이 있던 아파트 단지에 그 집이 있었다. 무려 20년 만에 보는 아파트 단지였다. 갑자기 머릿속 어딘가 있던 기억이 확 떠오르는 게 신기했다. 명절이면 사촌 형 누나들과 뛰어놀던 곳, 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머리를 감쌌다. 집으로 들어갔는데 왠지 모를 할아버지의 모습들과 향기가 그려지는 듯했다. 이곳에 잠시 지내시면서 할머니를 계속 생각하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와 아빠는 이곳에서 짐 몇 개를 챙기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요양병원은 인생 살면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코로나가 겹쳐서 가질 못했었는데 지금은 할머니라도 뵈러 온 게 어디냐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빠와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무려 4달 전까지만 해도 다리는 많이 불편하셨지만 살집도 있으시고 괜찮아 보이셨는데 지금은 살이 홀쭉해지신 상태로 휠체어에 앉으셔서 먼 산을 바라보시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니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늘 평소와 같이 웃는 얼굴로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작은 고모부가 뒤에서 휠체어를 잡으셨고 다 같이 중간에 있는 휴게실로 갔다.


그전에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몇 번 들어서 당연히 나를 못 알아보시겠지라는 생각으로 할머니 옆으로 갔다. 그리고 할머니께 나 누구냐고 여쭤봤다. 할머니는 오늘따라 약간 심통나신 듯한 표정으로 누구긴 누구야 00이지라며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 포함 고모, 고모부, 아빠 세 분도 약간 놀라신 듯했다. 먼저 와계셨던 작은 고모와 작은 고모부의 말씀으로는 전에는 오히려 손과 발도 잘 움직이지 못하셨는데 조금씩 움직이시기도 하고 치매 증상이 전보다 좋아져 이제는 다 알아보신다고 했다. 근데 나를 또 기억을 하시니 형들 이름이랑 헷갈리지도 않으시고…기분이 어찌나 좋았는지 모른다.


점심도 안 드셨다고 하는데 우리가 사 온 과일들은 조금씩이라도 드시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했다.

손에 힘이 없으셔서 그런지 아빠와 고모가 조금씩 잘라서 할머니 입에 가져다드렸다. 고모는 할머니 손을 잡고 손뼉을 계속 쳐주셨고, 손을 자주 움직이라는 애정 어린 말들을 많이 하셨다. 손뼉을 자주치고 손을 움켜지는 연습을 해야 몸이 조금이나마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전보다 말씀이 없으셨다. 표정과 눈빛에서조차 힘이 없어지신 듯했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 창밖을 많이 바라보셨다.


그래도 내가 고모부와 이야기하면서 엄청 웃을 때마다 할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찍기 위해 계속 카메라를 들었다 놨다 했다. 대화 도중에 할아버지를 찾으시는 할머니께 애써 잘 계신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좀 많이 아려왔다.


대화를 좀 하고 할머니와 산책을 하기 위해 다 같이 밖으로 나갔다. 고모부는 휠체어를 밀면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를 틀으셨다. 엄청 오래된 트로트가 고모부 폰에서 감미롭게 흘러나왔다. 나는 옆에서 카메라로 계속 할머니를 찍었다. 병원 주변을 잠깐 돌다가 언덕에 멈춰서 할머니와 함께 여럿 풍경들을 보았다. 고모부는 내 옆에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할머니라는 버팀목이 계셔서 가족이 다 같이 모여 함께하는 게 얼마나 좋아. ” 역시 언제나 성격 좋으시고 착하신 고모부다웠다.


잠깐 그 언덕에서 다 같이 브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는 손에 힘이 없으신데도 불구하고 남은 힘을 쥐어짜 내 카메라를 바라보고 브이를 하셨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기억에 남을 브이였다. 조금 땀을 흘리시고 얼굴이 환해지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다행이었다. 확실히 사람은 해를 맞고 바깥을 맞이해야 달라지는구나를 여기서도 느꼈다.


30분 정도 산책을 마치고 병실로 와서 할머니는 영양제를 맞으셨다. 그리고 고모부와 나는 휴게실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냥 뭐 사소한 여러 인생 이야기들을 말이다. 막바지에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가 오셨다. 우리는 할머니께 다시 인사를 드리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시간 지나니 벌써 저녁 7시, 점심을 거르고 와서 그런지 저녁을 참 배 터지게 먹었다.


저녁을 기분 좋게 먹고 어른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 아빠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많은 기억들을 안고 오게 된 하루였다. 전처럼 후회하지 않게 많이 찾아뵈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건강이 그나마 괜찮으셨던 2년 전, 손자 용돈 주겠다고 불편하신 다리 이끌고 댁에서 6분 되는 거리에 있던 우리 커피농장으로 걸어와서 직접 5만 원을 내 손에 쥐여주며 웃으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오늘도 떠올려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