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은 늘어가는데 자존감과 자신감은 줄어든다.
그럭저럭 2월, 자존심은 늘어가는데 자존감과 자신감은 줄어든다.
북경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한국에 와서 한 달 내내 그 친구와 친한 형, 이렇게 셋이 모여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중간중간 과거 이야기부터 시작해 현실 이야기, 미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을 거하게 마신 듯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셋이 모여 참 행복한 추억을 쌓았다. 설이 오기 전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딱 이맘때쯤 춘천을 다녀온 이후로 1년 만에 떠나는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지는 충북이었다. 중간에 충남 보령에 있는 대천해수욕장을 들러 바다를 구경하고 왔다. 역시 겨울 바다는 최고다.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보니 참 행복했다.
보령을 들렀다가 충북으로 왔다. 우리가 머물 곳은 바로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와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의 모든 역사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집이었다. 그 집을 이번에 내부를 싹 다 리모델링했다. 아버지를 포함한 5남매의 인생 이야기가 가득한 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시 오니 마음이 좀 싱숭생숭했다. 친구들과 이곳에 놀러 오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행복하면서도 이상했다.
들어가니 완전히 다른 곳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오래된 장롱과 식탁, 옷장은 온데간데없고 딱 요즘 시대 집 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방도 텅 비어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소파도 있고 가족 사진도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을 텐데, 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물건들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텅 비어 있으니 마음이 좀 아려왔다. 이제는 정말 다 비어졌구나, 안 계시는구나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들면서 친구들과 웃으며 만족하고 있으니 더더욱 싱숭생숭했던 것 같다.
그래도 집도 사람이 있어야 관리가 되고 온기가 느껴진다고 하지 않나. 물론 아버지가 가끔씩 와서 관리는 하고 계시지만, 이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이 집도 간만에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싱숭생숭한 기분을 집어넣고 친구들과 행복한 1박 2일을 보냈다. 고기도 구워 먹고 위스키도 한잔하고, 차린 건 얼마 없지만 남자들끼리의 여행은 그다지 많은 게 필요 없다. 술과 고기면 끝이다. 안주는 과거 이야기면 충분하다. 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마무리한 여행 이후 2026년 설이 시작됐다.
설 계획 – 필름 카메라 만들러 가기.
이번 설이 가장 기대되었던 이유는 바로 필름 카메라를 만들러 가는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카메라와 사진에 환장하는데, 전에 어느 유명 유튜버께서 업로드한 필름 카메라를 만들러 가는 영상을 보고 바로 예약했다. 장소는 엘리 카메라. 서울 가좌역 쪽에 위치해 있다.
사장님께서 수집한 다양한 카메라들을 볼 수 있었고, 만들면서 필름 카메라의 구조와 기초 작동법을 상세히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선생님께서 어찌나 친절하시던지 설명이 귀에 쏙쏙 박혔다.
카메라는 웨이스트 카메라, 카메라를 허리에 두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는 구조였다. 완전 옛날 카메라 느낌, 아시는 분들은 뭔지 아실 듯하다.
완성을 하고 어찌나 만족스럽던지. 내가 만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니 얼마나 낭만이 넘치는가. 그래서 바로 출사를 갔다. 그런데 구도 잡기가 힘들어서 몇 장 찍다가 나의 동반자인 미러리스(디지털 카메라)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설이 지나고 2026년 2월 21일, 오늘.
오늘같이 날씨가 풀린 주말이면 화장실 창문 너머 옆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들을 때마다 아이들아, 행복해라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다지 소음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요즘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도 소음이라 생각하고 민원을 넣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참 불편할 게 따로 있지 같은 생각이 든다.
샤워를 하고 잠시 휴대폰을 보다가 바깥 외출을 한다. 간만에 단골 카페에 가서 글 좀 쓰고 싶었다. 사장님이 머리 많이 기르셨네요라고 하시며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이런 잔잔한 토요일의 느낌, 참으로 좋다.
글을 참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한 달 만에 쓰는지라 좀 어색하긴 하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고, 관두고, 다시 이력서를 준비하고. 한 달이 참 급박하게 지나간 것 같다.
20대 후반, 여러모로 30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불안과 걱정만이 가득하다. 주변 형들의 “괜찮아, 별 다를 거 없어”라는 조언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나이인 것 같다. 아마 형들의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겠지 싶다.
하고 싶은 거 해. 아니야, 우선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이 길로 가야지. 근데 아무나 안 뽑아 주잖아. 여태 뭐 한 거야. 열심히는 한 것 같은데 아닌가. 돈이 우선이야, 돈이. 생각 많이 하지 마, 괜찮아. 차근차근 생각해. 무슨 차근차근 생각해, 지금 급하다고. 친구들도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뭐 할 말은 있나. 그래도 친구들 다 똑같이 생각 많고 힘들어 보이는데 거기서 나만 우중충하면 안 되지.
머릿속이 복잡한 건 매한가지다. 조급하지 말라 해도, 그만 생각하라 해도 이놈의 20대 후반의 머리는 멈출 줄 모른다. 스스로와 남을 비교하는 듯 마는 듯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나의 친한 친구들은 그 어떤 허세나 자존심을 부리지 않아서 사람 복은 받은 것 같다. 똑같이 힘드니까 위안을 삼는다가 아니라 자극을 받는 것 같다. 그래도 힘은 내 보자 싶은 생각.
어떻게 살아야 할까나. 우선 앞만 보고 가야지. 그래야 더 앞길이 보일 테니.
이 글을 봐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도 오늘 날씨처럼 잔잔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