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로마마라톤 당시 나의 진짜 속마음

작년에 썼던 글을 브런치에 옮겨본다.

작년 3월, 나는 이전의 여행과는 다르게 팀의 형태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좋아하던 사람들과의 여행이었다. 패키지여행과는 다르고, 가족여행과는 다른 형태였다.

엄마 혼자 가족단위로 아이 둘을 데리고 온 팀은 내가 유일했다.

- 만취자의 뇌를 풀가동하며 하루하루를 힘껏 살아가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와

- 망아지 같은 초등학교 1학년의 여자아이와의 여행이 어떨지 감히 상상이 안되기에 신청했다.

왜??? 난? 괜찮을 것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역시 모르니 이렇게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풀 마라톤 후 몸 상태도 직접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세계이니 이렇게 무모한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번 여행이 내 인생의 큰 점을 찍고, 죽기 전에도 생각날 귀한 순간이지만

아직 스스로 내 삶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

내 삶의 해석을 할 내적 능력이 없는 상태라 마지막 날부터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힘들 때, 그럼에도 글을 쓰며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던 밤 들이었다.)

Feat. 시차 부적응자의 새벽시간은 기록하기 안성맞춤

운(運)

운은 사람이 가져다준다. 움직인다.

자연스러운 것과 애쓰는 것의 차이를 몰랐지만,

2025년 1월부터 로마 마라톤에 나가기까지 모든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내가 풀 마라톤을 도전하기까지 등장한 인물들과 훈련이 필요한 시기에 나타나주었던 사람들

모든 것에 나는 최선을 다했고 운이 좋았다.

짐 콜린스의 연구결과, 성공한 사람들은 다 운이 좋았다고 하는데

‘때에 맞게 필요한 사람과 문제’를 만났다.



내 삶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 (타인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의 내 해석 능력이 나를 해롭게 갉아먹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강박증이 있는 서원이의 행동>을 로마 언니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원이에게 단호했고, 그 단호함에 나는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났다.

현재도 (작년보다는 증세는 호전되었지만) 강박증이 있는 아이로 지난 1년이 무척 힘들었고, 그것을 감당하면서 내가 느꼈던 좌절감과 다시 힘내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 같았는데 (내가 달리기에 매달렸던 이유) 약 없이 아이를 잘 컨트롤 해왔고

아이가 좋아하는 (1)이안이 형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서 + (2)달리기라는 목표를 세워주기 위해서

로마 마라톤을 용기 냈는데, 왜 내 아이가 그리고 내가 저런 눈빛을 감당해야 하지?

왜 그토록 좋아하는 그 형은 서원이의 말을 못 들은 척하지?

솔직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어두운 상상을 하면서, 이 여행을 후회했다.

(풀 마라톤을 뛴 이후부터)

그래서 나는 나로 바로 서기 위해 새벽마다 글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생각 하나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을 밝은 쪽으로 바꾸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바티칸 여행때가 피크이긴 했는데, 지온이를 업고 그 투어를 다니면서

아이들의 컨디션은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팀에게 피해 안 가려고 아이에게 화를 내며

8살 9살에게 분명 힘들었을 상황이었음을 나중에 인지하였다.

아이들이 이만큼 따라와 준 것도 참 고마운 것인데… 어른이 따라다니기에도 힘든 투어였는데…

다른 사람들도 귀한 시간, 귀한 돈을 내고 바티칸에서 귀한 투어를 들었다.

누구보다 가이드의 설명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였던지라, 타인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했다.

풀 마라톤으로 온몸이 만신창이였지만, 그 엉망인 몸을 가지고 도움 없이 지온이를 내내 업고 다녔다.

정말 팀에게 피해가 가게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바티칸에서 지온이를 감당하고, 서원이를 혼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도와주겠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의 인성이 의심되기도 했고, 말을 섞고 싶지 않기도 했다.

(도와준다고 말했어도 그 귀한 시간을 알기에 받지 않았을 것이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서운함에 내 생각 하나 바꾸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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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리 나 자신을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볼까?

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내 생각이 나 혼자만의 착각임을 오해임을 알며

스스로 생각하고, 어두워졌던 빛을 다시 밝은 빛으로 바꾸려던 순간들이다.

나는 왜 그렇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했고,

나 자신을 그렇게 괴롭게 힘들게 했으며, 도와달라는 말을 선뜻하지 못했을까?

어쩜 내가 하고 있는 이 서운한 감정들은 내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 삶의 해석을

<애 둘을 혼자 데리고 온 불쌍한(사실은 불쌍하지 않은) 46살의 풀 마라톤을 완주한 여자>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용기 낸 여자>로 바꾸려고 한다.

내 삶에 다가오는 결정을 내 스스로가 하고 싶다.

자연스러운 것, 애쓰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에너지를 품으며 좋은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 세상에 불운도 행운도 아닌, 모든 것이 당연스럽게 겪어야 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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