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인생에 한번뿐인 결혼식. 그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 조차도 선택의 기준이 없었고,
꿈에 그리던 결혼식장의 모습도 없었습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선택하는 것들을 나의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내 책상 위에는 좋아하는 장르 음악보다는
대중가요, 인기탑텐같은 카세트 테이프만 가득했었습니다.
44살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죽음에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놀랐던 포인트는 거장의 죽음에 슬픔이 몰려오지 않았던 내가 아니라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사람을 처음 들어봤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아가 낮았던 나는 화가 나는 일이 있을때마다 술로 풀었고
사람을 만날때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나를 채워나갔습니다.
감정육아외엔 다른 육아 방법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방법은 몰랐지만, 변하고 싶었던 저는 3km 달리기를 100일동안 도전해보았습니다.
다르게 살수 있다는 말 한마디를 믿고 싶었을 정도로 간절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44살의 여름은 저에게 강렬했습니다.
달리기는 저를 변하게 만들었지만, 또 변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의 뿌리를 갖고 싶어, 추사김정희 책을 읽었고
안목,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책들을 차례로 읽으며
저 스스로 안목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희 큰 아이는 저의 예민하고 강박의 DNA를 그대로 유전받아
환경이 바뀔때마다 수많은 증상을 나타내며, 강박이 다양한 모양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참으로 애달펐습니다.
그러다... 나를 변하게 한 달리기를 아이에게 또다른 후천적인 DNA로 이식시켜주고 싶어
2024년부터 꾸준히 함께 달리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1킬로도 못달리던 아이는 이제 저와 함께 10킬로 마라톤을 나가며 저보다 더 빠르게 달립니다.
달리기 안에서 아이와 저의 삶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불안합니다.
노동이 사라지는 머지않은 미래에 스스로 생각할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저의 역할이 무엇인지..
저는 그것이 안목이고,
수많은 안목이 자리잡아 스스로 생각할수 있는 우리가 가져야할 것이
글로 쓰거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경험과 체득을 통해 내면화된 지식, 암묵지라는 것을
형식지: "달리기는 심박수를 높이고 근육을 강화한다." (누구나 아는 사실)
암묵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 심장을 뚫고 나오는 그 '한계를 넘어서는 감각'. 이것은 책으로 배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달려보며 몸에 새긴 ‘고통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강력한 암묵지가 됩니다.
형식지: "경복궁 조선시대 궁궐이다." (검색하면 나옴)
암묵지: 수많은 건축물과 예술품을 본 뒤에 생기는 '좋은 것을 알아보는 직관'. 유홍준 교수가 말하는 '안목'이야말로 최고의 암묵지입니다. 이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수만 번의 시각적 경험이 쌓여 만들어지는 '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AI 시대에는 검색하면 나오는 지식(형식지)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2026년의 부모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형식지'만 집어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 아이에게 정답(형식지)만을 가르치지 않으러합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몸의 기억과 눈의 높이(안목), 즉 암묵지를 물려주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이신 같은 처지의 엄마들을 부모님들을 위해 저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