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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임 Nov 19. 2024

파도 앞 모래성 쌓기

내가 자리 잡은 곳이 파도 앞인 줄 몰랐지. 

 직장 생활을 치열하게 하고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어떤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서 회사를 옮기게 되면 그동안 쌓았던 경험과 시간은 한순간에 스러져 내린다. 마치 모래사장에 쌓은 멋진 모래성에 파도가 쳐서 흔적도 없이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허무하고 또 허무했다. 일 년이든 이년이든 내가 치열하게 있었던 시간이 그냥 없는 시간이 되어 버린다.


 거진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사무직으로 근무를 하면서 이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30대 중반의 결혼한 여자가 새로운 직장을 구한 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일을 해야 하는 간절한 상황임에도 상황은 내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20대의 마지막까지는 그래도 한 회사에서 좀 진득하게 다녔다. 좋은 사원이었냐 물어본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다소 감정적이었고 뭘 몰랐고 철이 없었다. 이제는 '가르치며 일 시키는 회사'는 없겠지만 진짜 배우고 성장하면서 회사 생활을 했다. 매일 진짜 이상하다면 잘근잘근 씹어대던 회사를 나와보니 어처구니없게도 모든 부분에서 좋은 회사였다. 


 좋은 회사를 엄청 씹어댄 벌이었을까. 한 회사에서 오래 다녔어도 계약을 연장하면서 회사를 다녀서 그런지 퇴사할 때 나의 직급은 사원이었다. 그 뒤로 여러 회사를 가봤지만 모두 사원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인턴으로 시작했다. 


 모집 요건에는 사무실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고 하지만 막상 면접을 보면 "그 회사와 우리 회사는 일 하는 것도 다르고, 서로 잘 알지 못하니 인턴부터 시작하자"는 말로 작게나마 쌓았던 나의 사무직 경력이 한순간에 없어져 버린다. 말 그대로 성난 파도 앞에 쌓고 또 쌓은 소중한 모래성이었다.


 밀고 들어오는 파도를 어떻게든 막아서 내 작은 모래성 주춧돌이라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파도는 나를 크게 집어삼켜버린다. 모래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의 멀쩡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모래가 들어가고, 머리카락은 미역이 되어 얼굴이며 목이며 볼품없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이런 일이 한 번 두 번 반복이 되었다. 한 살이라도 젋었을 때는 엉망이 됐을 모습을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 머리부터 발톱 끝까지 멀끔히 씻고 다시 모래성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파도가 무서웠다. 언제까지 사무직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사무직으로 취업을 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파도 대신 원초적인 질문이 나를 삼켰다. 


 내가 늘 부러워하는 전문직 여성들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도 전 직장에서 일했던 시간들을 '경력'이라는 단어로 인정을 받는다. 여간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잠시 그 업계를 떠나도, 쉬어도, 했던 경력으로 빠른 취업과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인. 


  막연한 상상으로 '나도 서른 즈음에는 그런 멋있고 인정받는 직장인으로서 생활하지 않을까?'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릴 적 생각했던 '서른의 어른'과 막상 서른이 된 나는 괴리감이 있었다. 멋있지도 않았고 능력과 경력을 인정받지도 못했다. 나의 서른은 고생의 시작이었고 성난 파도 앞 모래성이었다. 돌아간다면 차라리 모든 공부의 시작이었던 중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게 아니라면 싫다.


 그저 나의 작고 소중한 바람은 성난 파도 앞에 쓰러질지언정 흔적조차 없어지는 모래성이 아니라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을 수 있는 형체가 있는 돌탑을 쌓고 싶었다. 바람이나 파도에 떨어지고 쓸리더라도 형체가 있어 볼 수 있고, '여기에 뭔가 있었나 보네'하는 다소 빈약한 흔적이라도 남아있다는 그 자체를 너무 갈망했다.


 이렇게 간절하고 지쳤을 때 알게 된 직장이 아파트였다. 아파트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1년이든 2년이든 그 자체로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 꾀나 나이가 들어서 도전하는 직장. 누군가는 얕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하나하나 돌탑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경력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그 자체로 말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서 도전하는 직장이라면, 내가 들어간 아파트에 나이가 있으신 상사분을 만난다면, 그 사람의 나이가 나의 정년이 되는 것이다.


 사무실에 있는 여자분이 50대면 나도 족히 50까지는 여름에는 에어컨 아래에서 겨울에는 온풍기 아래에서 몸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고 나의 정년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시작하고 나니 나만 괜찮고 만족한다면 어떤 환경이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아파트에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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