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조잡한 확산된 지 오래다. 무료한 다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왜 배워야 하는가
‘공주’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공부하는 주부를 뜻하는 이들은 함께 모여서 공부한 것을 책을 냄은 물론 커뮤니티를 결성해 정치적인 발언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동안 수험생에게만 머물러왔던 공부가 이제 취준생에서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된 지 오래다. 신중년들의 공부 릴레이도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공부를 향한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평생 동안 해야 하는 것으로 힘써서 ‘공부’하라는 덕목이 있긴 했지만 그건 일부 지식층에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공부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는 않았다. 가히 공부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다.
공부는 왜 하는가?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험생 시절이 빨리 끝나기를 소원하지 않았던가. 학생 신분이 끝났으면 이제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수험생 때보다 더 열심히, 심지어 즐기면서 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중국 문단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나는 학생이다>>의 왕멍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의 배움을 향한 실천력은 공부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왕멍은 자신이 쓴 소설 한 편으로 인해 우파로 낙인을 찍혀 고초를 겪게 된다. 사막의 땅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기나긴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16년간의 유배지에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창작은 어림도 없었고 직업을 갖는 것조차 금지됐다. 그 상황에서도 왕멍은 절망하지 않고 위구르 어를 배워 쓰기는 물론 번역이 가능할 정도로 공부에 매진을 한다.
왕멍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언제나 새로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고 100점짜리 해답은 영원히 없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생존’이요, 다른 하나는 ‘배움’이다. 삶에 대한 걱정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 말할 수 없다. 때문에 무턱대고 물욕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희생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나, 생존의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인권이다. 우리는 개개인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야만 한다. 그러나 생존이라는 것은 단순히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이 어떠한 일을 하느냐가 생존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배움이다.
- <<나는 학생이다>>, 25쪽
배움은 내가 아직 젊다는 것, 나도 여전히 진보할 수 있다는 것, 부단히 나를 채워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배움은 내 자신의 잠재력과 생명력을 느끼게 해 주고, 생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기 때문에 하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배움은 타향에서의 고독을 극복하게 해 주었다. 배움은 조잡한 취미활동과 무료한 다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고상하게 잘난 척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배움에 빠져 있으면 정말 시시콜콜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뜻이다.
- <<나는 학생이다>>, 41~42쪽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이렇듯 시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 공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공부를 왜 하는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인가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것, 나만의 판단으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공부의 최종 심급은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함’이라 할 수 있다.
<<공부의 철학>>에서도 공부의 목적은 자유로워지는 것이라 한다. 책에 의하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동조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단다. 환경의 당위(코드)에 자기 자신을 맞춰 생각 없이 공감하는 것을 지양하려면 언어의 타자성을 이용해야 한다.
공부에 관한 것을 심도 있게 논의하자면 <<공부의 철학>>에 나타난 언어와 관련된 내용을 지나칠 수 없다.
책에 의하면 언어 그 자체는 현실에서 무엇을 하는지와 상관없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단다. 때문에, 사실 언어는 그 자체로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다. ‘언어의 타자성’이라고 정의한 이것은 두 가지 원리로 구성된다.
‘환경에 의한 세뇌’와 ‘환경으로부터의 탈세뇌’, 이를테면 동조와 동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언어라는 필터를 거쳐 언어에 의해 구축된 언어적 가상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 언어적 가상현실은 인간을 지배하기도 하고 해방하기도 한다. 자유로움은 어떻게 할 때 얻어지는가.
언어의 해방적인 힘인 언어의 타자성을 주목할 때 자유로워진다고 언급한다.
언어는 타자에 의해 강제적으로 우리 몸에 새겨졌지만 공부를 통해 언어와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언어를 통해서 나다움을 찾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까닭이다.
사실 이 책은 질 들뢰즈나 자크 데리다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츳코미(아이러니)니 보케(유머) 등을 내세워 1장에서 2장까지 이론을 다루고 있어 읽는 내내 지루한 것은 사실이다. 3장부터는 공부의 실천 편으로 들어가 뜻밖에 활용할 만한 것들이 많아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
하고 싶은 공부의 주제를 찾을 때는 도출한 키워드가 어떤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지를 생각한다. 공부란 어떤 전문 분야에 대한 동조로 이사하는 것,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공부에는 츳코미와 유머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아이러니인 츳코미가 코드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유머인 보케는 그 코드에서 어긋나려고 애쓴다. 무심코 행하는 동조를 지적하여 ‘올바름’을 추구하는 아이러니는 근거를 의심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이와 달리 코드에서 엇나간 발언을 하는 유머는 시각을 바꿈으로써 오히려 코드가 확장된다.
공부를 할 때 아이러니를 추구하게 되면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게 된다. 유머를 통한 연상을 하게 되면 한눈팔기가 되어 공부가 끝이 없어진다. 절대 ‘최후의 공부’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을 진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줄 최고의 공부 따위는 없음을 인식하고 ‘공부의 유한화’를 하라고 조언한다.
“공부란 기존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나 자신만이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전문 분야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책부터 읽는 것이 공부의 기본이다. 때로는 딱딱하고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데도 쉬운 것 달콤한 것들부터 손에 잡게 된다.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공부다. 문제에서 시선을 돌린다면 공부란 불가능하다. 거듭 말하지만 공부란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일이다. 때로 그것은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공부란 ‘문제의식을 지니는 것’이다. 뭔가 석연치 않고 불쾌한 이 상태를 일부러 즐겨야 한다. 바로 이것이 향락하려는 태도다.
<<공부의 철학>>, 135 쪽
환경에 동조하지 않고 문제의식을 갖는 일은 기존의 갖고 있던 생활 태도나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일이다.
“공부란 기존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기존의 생활 속에 마련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사실 공부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베푸는” 일이다.
전문 분야에 입문하기
공부의 기본은 ‘제대로 된’ 책을 읽는 것이다. 또 전문 분야에 입문하려면 입문서부터 읽는 것이 효율적이다. 입문서는 여러 권을 읽고 비교해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교과서는 전문 분야의 명칭을 제목으로 내건 경우가 많다. 사전처럼 ‘찾는’ 것이라 생각하고 필요할 때마다 읽는다. 기본서는 그 분야의 중심 주제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했다.
여러 입문서ㅡ> 교과서ㅡ> 기본서 순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 전문지식을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공부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전문서’다. 더욱 한정해 학문적인 ‘연구서’를 공부하면 체계적으로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어디까지가 타인이 생각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자신이 생각한 것인지를 확실히 구별하여 의식해야 한다. 이것은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키울 때 매우 중요하다. 어떤 개념이나 사고방식이 ‘누구의 어떤 문헌에서 나온’ 것인지를 의식하고 곧바로 말할 수 있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독서 노트를 써야 한다. 어떤 문헌에 문자 그대로 어떻게 쓰여 있었는지, 몇 쪽인지를 명확히 적은 후 그것과 구별하여 자신이 이해한 바를 메모해둔다.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이처럼 ‘출전(문헌 제목과 쪽수, 나아가 출판 연도 등)’을 명기한 독서 노트를 계속 쓰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을 출전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 <<공부의 철학>>, 222~223쪽
전문 지식을 습득했으면 내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출전(문헌 제목과 쪽수, 출판 연도 등)’을 명기한 독서 노트를 계속 쓰면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한다. 원문 그대로 쓰고 자신이 이해한 바를 기록한다. 이렇게 나의 지식을 출전과 연결시킴으로써 나만의 전문적인 지식이 한층 더 두터워질 것이다.
변화된 자신을 원한다면 기존의 환경에 동조하며 살아온 삶과 용기 있게 이별해야 한다. 과거의 자신을 파괴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여 새롭게 변신하는 일이다. 변신이란 나를 얽어맸던 것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의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다. 나를 파괴함으로써 덤으로 새로운 것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 기쁨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에 선의를 가질 때 따라오는 선물이다.
공부란 지난날 주변에 맞추려 애쓰던 자신을 일부러 파괴하는 행위다.
달리 말하면 공부란 일부러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일이다.
<<공부의 철학>>, 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