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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r 03. 2020

개떡 같이 말하면 개떡 같이 알아듣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이해할 줄 알았어

목소리는 힘이 세다


초코파이 광고에 나오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그러다가 이 노래만 들으면 쓸쓸한 생각이 들게 된 일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남자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나오면 곧이어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말하지 않으면 모를 걸

아닙니다말하지 않으면 모르지

이제 말 안 하면 모른다니까     

다양한 상황의 대답들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성우 이용신 님이 부른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 

착 감기는 목소리로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오~

눈빛만 보아도 아~알아

그냥 바라보면~

음 ~ 마음속에 있다는 걸~ 우 우    

 

여기를 꾸욱 ~ 누루시면: https://www.youtube.com/watch?v=q_6njmOvEd8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 적이 한 때 있었다. 신혼을 신사동 먹자골목 뒤의 단독주택의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삐삐가 있을 때였을 때여서 퇴근 시간을 내게 말해주지 않으면 저녁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겠다고, 그때는 뭐든 같이 하려고 했다.      


사무실에 연락이 닿지 못한 날에도 신기하게 남편이 오는 소리는 바람결에도 들렸다. 쌀을 불려놨다가 항상 오는 시간에 돌솥밥을 해서 먹었다. 9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오지 않고 있었다. 평소보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나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 하다가 그만 시간이 늦어버렸다.    

    

그날도 남편이 들어올 특유의 바람 냄새를 맡고는 신사역으로 뛰어나갔다. 역 입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남편이 고개를 숙이고 올라오고 있었다. 지상으로 나오는 남편한테 쪼르르 뛰어가 팔짝 뛰며 “많이 늦었네요. 오늘은 뭐 신나는 일이 많았나 봐요. 이렇게 늦은 걸 보니.”하면서 팔짱을 꼈다. 

참 그때는 철이 없어도 한참 없었다. 돈 벌러 나간 사람에게  뭔 신나는 일이 뭐 있을 거라고 그렇게 속 없이 통통 튀는 말을 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틀면 바로 먹자골목이 나왔다. 우리 집을 가려면 이 먹자골목을 반드시 지나야 만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먹자골목 아구찜은 꽤 유명해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원정을 와서 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건 아구찜보다 가격이 싼 해물찜이었다. 아구찜을 하는 음식점들이 왼쪽 오른쪽 양옆으로 나왔다. 흘깃 들여다본 음식점 창문 너머로 먹음직스러운 아구찜 해물찜들이 보였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출처ⓒ Daily, Instagram ID @blanca_ana07


배가 고프던 차에

 “아, 아구찜 맛있겠다.” 했더니

저거 냉동으로 한 거라 맛이 없어”라는 대답이 왔다.


“나는 아구찜보다 해물찜이 더 낫더라 . 있지, 커다란 새우가 듬성듬성 들어있고 대왕 조개에다 낙지 발가락이 뒤집어진 채로 고춧가루 범벅에  아, 이 말을 하는 순간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미더덕이 자잘하니 들어가서 매콤한 게, 나는 그게 더 맛있더라구요. 아구찜보다도 더 ".  '더~어~'를 길게 말하는 동안 침이 꼴깍 넘어가면서 배는 더 고파졌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남편의 묵묵부답이 이어졌다. 못 들었나 싶어서 

“자기는~~ 아구찜이랑 해물찜 중에서 어떤 게 더 맛있어요?” 했더니     

아유그냥 집에 가서 밥먹자아아~~”   밥먹자아아~~그의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흩어져버렸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내가 이렇게 해물찜이 더 맛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아서, 아니 눈빛만 보고 알아주는 건 바라지 않아도 나 좀 사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면서 시무룩하니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의 고슬고슬한 돌솥밥은 맛이 없었다. 화려한 해물찜에서 돌솥밥으로 하락한 때늦은 저녁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노래는 내 기억 속에 살아남아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들을 때마다 쓸쓸한 해물찜이 생각났다. 

초코파이의 그 情을 나눈다는 활짝 웃는 모습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오히려 나를 더 헛헛하게 했다. 반면에 이용신 님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그래 너 외롭구나. 해물찜 남편이랑 도란도란 먹고 싶었는데 못 먹어서 속상하구나.” 이렇게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남아 나에게 각인이 됐다.    

 

나의 사례는 분명하게 말을 했어도 알아주지 않은 경우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떡 같이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원한다. 말하지 않아도 그저 내 마음같이 상대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 말에 반기를 들고 나온 책이 바로 공감통역사 김윤정 작가의 <<개떡 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알아듣습니다>>이다.    


  

그렇게 말하면 이해할 줄 알았어

그렇게 말하면 이해할 줄 알았지


우리는 보통 소통 절벽인 남편에게 하는 말이 있다. 화가 나면 기껏해야 하는 말이 “나한테 말 시키지 마요.” 쏘아붙이곤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면 곧이곧대로 듣고는 말을 안한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딴 때와 달라 내가 한말을 잘도 지킨다. 그때는 어쩜 눈치도 없이그렇게 내말을 잘 듣는지. 그것 때문에 화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다못해 시비를 걸어 다시 싸우면 "당신이  말 시키지 말라며. 그래서 그대로 했는데 이번엔 또 뭐가 문제냐"며 말을 해 듣는 나를 복장 터지게 했다. 


정말 ‘말 시키지 말라’는 뜻일까요? 여자들은 다 압니다. “빨리 미안하다고 말해. 뭔 말이라도 네가 먼저 말을 시키란 말이야!”라는 뜻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남자들은 여자가 말 시키지 말라고 하거나 말을 안 하면 자기도 말을 안 합니다. 그리고도 잘 지내죠. 말로 먼저 다가서지 않고 행동으로 다가서는 남자들의 성향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알아듣습니다>>, p.52     


이 책은 남녀의 동상이몽은 구체적으로 소통이 안 돼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1장 연애와 결혼에서 말한다. 연애, 결혼, 부부, 자녀, 친구, 직장 등 살아있는 동안은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삶의 온갖 문제를,  이 책은 인생사용설명서처럼 다양한 사례와 거기에 적절한 대안을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안다. 그러나 마음이 다칠까 봐 이렇게 저렇게 돌려 말한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잘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채로”말이다. 또 “그렇게 말해도 이해할 줄 알았어”라고 자기 방어를 한다.  

  

 

그러게 말을 똑바로 해, 아니면 제대로 하든가http://www.yes24.com/Product/Goods/78876725?Acode=101


이심전심, 불립문자, 교외별전 등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것은 종교적인 경지에서나 가능하다. 현실에선 절대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떡이 찰떡이 되는 경우는 벼락 맞아 로또 당첨될 확률이라고 보면 된다.
개떡은 절대 찰떡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노래 가사에나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나려면 상대의 말속에 담겨 있는 감정에 공감할 때에나 가능하다. 

할 말은 제대로 똑 부러지게 구체적으로 하고, 들을 때는 말하지 않은 감정까지 들여다볼 때 소통이 된다.  


진정성을 담은 대화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어 공감대를  넓힌다. 이때 친밀감은 덤으로 따라온다.   



돌려말하지 말아요. '돌리"는 것은 카드 막을 때나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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