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발

작고 보다 더 적은 것을 향하여

by 진순희

손바닥안에 들어오는 발의 크기


삼촌 금련(三寸金蓮) 미인을 들어보셨나요? 성인 여성의 발 9cm 이하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발이 뚱뚱하면 반쪽 미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름하여 천 년간 이어진 중국 미인의 전족. 딸아이가 네다섯 살이 되면 닭을 잡아 뜨거운 뱃속으로 아이의 발을 집어넣어 부드럽게 만든다. 그다음 엄지발가락만 놔두고 네 발가락을 완전히 꺾어 발바닥에 밀착시킨다. 이 과정에서 고통으로 울부짖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온 동네를 물들이곤 한다. 서 있기도 힘든 와중에서도 잊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쁜 발 모양을 만들기 위해 자주자주 걷게 하는 일이다.


“남자는 양이요, 여자는 음!
여자라면 작고 여리고 부드러워야지요. 발까지도.”


유학자 주희까지도 거들어 '작고 여린 것'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다.

발 다이어트는 송나라 시기 춤추는 여인들의 작고 뾰족한 신발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고 하지 않던가. 새로운 유행은 어느 때고 상류층 부녀자들이 앞다투어 모방했다. 전족을 하지 않은 여자는 천민이라는 인식 또한 널리 퍼지기 시작한다.


나란히 섰던 두 발 넘어지니 애처롭네
섬세한 아름다움 어찌 말로 다하리
그저 손 안엔 즐겨 볼 뿐


-소동파
카드.PNG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963537&memberNo=41929221


우리는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문인들까지도 합세하자 상류층을 동경하던 서민들까지 따라 하게 되었다. 심지어 발 큰 여자를 집안에 들이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알았기에 여성들은 너도나도 전족을 하기 시작한다. 해마다 열리는 마을 전족 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면 뒷담화에 시달렸다. 분명 발이 엄청나게 크거나 틀림없이 이상하게 생겼을 거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피해 가기 어려웠다. 만에 하나 불참이라도 하게 되면 시집갈 곳이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전족으로 걷기도 힘들었지만 서민 여성들은 무릎으로 기어 다니면서 농사일과 집안일까지 해내었다.


돈 많은 남자 만나 편안히 사는 것이 여성 최고의 행복이라고 믿었기에 의심 없이 고통을 감수했다. 그 당시 남성의 지위와 신분은 이렇게 발 작은 여성을 소유하는 것으로써 증명되었다.

부러지는 발가락뼈, 허물어지는 피부조직의 대가로 발은 세 치 이내로 작아지고 신부의 값은 높아진다. 누구든 아름다운 발을 가진다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전족 여왕의 말과는 달리 고통으로 인해 성격은 예민해지고, 무력감과 스트레스로 우울증도 동반됐다.


“크기는 작게, 폭은 가늘게, 전체 모양은 산처럼 휘어지게 하는 동시에 발끝은 뾰족할 것” 거기에 덧붙여 “향기롭고, 부드럽고 단정할 것”까지 겸비하면 전족의 완벽한 조건은 갖춰진다. 전족 한 짝이 손바닥이 살포시 들어앉을 정도의 세 치 정도의 금련(金蓮).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연꽃 발’은 애초부터 현실에 존재하기가 어려웠다.


작은 발 하나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싶어 했던 그 시대의 많은 여성들, 자그마치 청나라 말 여성 인구의 80%가 이상적인 전족 만들기에 시간과 노력과 고통을 감수했다.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과거 청나라 때 전족 만들기로 고통을 참아냈다면 지금은 굶는 것으로 배고픔을 참아낸다. 현대 여성의 80%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단다.


풍요로운 사회의 ‘검은 꽃’인 다이어트는 지나치게 살을 빼려다 종종 죽음에 이르게까지도 한다. 지난 세월 전족이 발에만 국한되었다면 현대의 다이어트는 얼굴과 몸매 신체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작다’ 보다는 ‘적다’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과체중은 통제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과체중을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외국의 사례도 있다. 이런 형국이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마른 체형을 선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살이 찐다는 것은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고 믿는다. 이미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사회가 돼 버렸다. 그에 비해 날씬한 몸매를 아름다움과 결부시킨 시간은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짧다.


‘몸이 날개’가 된 오늘날 날씬한 몸 가꾸기는 현대사회의 이상화된 외모에 자신의 몸을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많은 부분 여성에게 도전과 성취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면서 이젠 능력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여성들이 몸을 가꾸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대중매체와 외모차별적인 사회풍토와 같은 외적 압력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성들 또한 이런 압력을 피해 갈 수 없다. 매력이 넘치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상품을 꾸준히 소비해야만 한다. 그렇게 돈을 지불하라고 유혹하는 소비사회에 살고 있다. 한술 더 떠 대중매체는 끊임없이 아름답고 건강한 몸의 이미지들을 재현한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몸은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이때 자발적인 복종은 필수다.


미디어가 몸을 감시하는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모습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건강 관련 정보나 다이어트니 성형이니 하면서 몸과 관련된 담론들까지, 상당 부분 우리의 일상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자발적인 자기 통제는 자기 착취로 이어진다


얼핏 보기에 몸을 관리하는 행위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전에 없이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자신의 몸을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신의 삶 전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아 창조니, 자기 관리니 하면서 적극적으로 몸을 가꾸는 데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들의 욕망은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오늘날 여성들이 선호하는 마른 몸만들기는 육체적 차이를 근거로 해 성 불평등을 정당화하려는 가부장제의 음험한 계략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름다워야 할 성은 여성이라고 규정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개성 연출이니 하면서 우리의 몸이 마치 자아를 대변하는 것처럼 부추기고 있는 ‘담론’ 또한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이 우세하고 있는 한, 개인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늦출 수가 없다.


TV만 켜면 보게 되는 광고 속의 모델은 컴퓨터 그래픽의 손질 과정을 통해 가공되고 조작되어 제시된다. 현실 속에서는 구현되기 어려운 대중매체에 나타난 이상화된 이미지는 아름다움을 균일화하고 표준화시킨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설정하여 평범한 개개인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또 자발적이라는 미명 하에 실천하도록 강요한다.


여성이 겉모습에 집착하고 지나치리만치 자신의 몸을 과도하게 억압하는 것의 원인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욕망에 의해 내면화된 자기 몸에 대한 통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자기 착취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까닭에 몸 가꾸기는 주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타율적인 경향이 농후하다.


마른 모델-1.png 너무 마른 모델은 런웨이에서 퇴출된단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세 치 밖에 안 되는 작은 발을 추앙했던 시절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너도 나도 마르고 여윈 몸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몸에 대한 우열은 시대에 따라 유행이 바뀌듯 변화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외부 환경에 포섭되지 않고 잘 살아낼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거창한 구호로 삶이 의미 있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으로부터 작지만 평온한 행복감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사유의 동력을 넓혀야 한다. 진부하다 싶지만 결국 내면의 힘을 키울 때 가멸찬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육체적인 매력으로 사람의 가치가 평가받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내면의 북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 만의 규칙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때 휘둘리지 않고 올곧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걸음대로 뚜벅뚜벅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니어, 어르신,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