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처칠을 견뎌내게 한 힘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 취향과 문화

by 진순희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은 가능한 한 넓은 배경을 갖고, 여러 가지 일을 소화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입니다. 생각이 유연하고, 협력을 잘 하고, 일을 즐기는 사람이죠.
타이틀에 얽매이거나 완고한 사람은 ‘노(No)’입니다. 일을 잘 할 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구글CCO 설리번이 말하는 '인재論
구글.PNG 아일랜드 구글사옥 -@지드디자인 blog


알려진 대로 구글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채용시 면접 질문이 퇴근 후에 무엇을 하느냐를 물어본단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국적 기업의 특성상 다채로운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은 창의력이나 위험을 감내하는 수준인 멘탈갑인 경우가 많아서 일거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처칠의 아내가 자기 부하와 염문을 뿌릴 때도 처칠을 견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취미 생활에 있었다. 일과가 끝난 후의 몇 시간씩 그림그리기에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려져 있는 정설이다. 처칠이라도 듣는 귀가 없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남들보다 더 빨리 알수 있지 않았을까. 아내의 부정에 개의치 않았던 것은 세간의 이목이 두려워서라기 보다는 아마도 그림그리는 동안 몰입하며 시궁창 같은 감정들이 씻겨져 내려갔을 것이다. 일 이외의 어딘가에 쏟을 돌파구가 있다는 것은 각자의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신분을 가르는 취향과 문화


취미를 거창하게 확장하면 그 사람이 누리는 문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문화의 힘을 간파한 이가 있었다. 오죽하면 김구 선생이 내가 원하는 조국의 모습은 문화적으로 강한 나라라고 했을까? 취미의 확대 개념인 문화생활은 그 사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어떤 문화 생활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향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 더나아가 사람의 품격마저 변하게 한다.


비근한 예로 같은 화장품 업계의 서경배 태평양화학 회장과 네이쳐퍼블릭의 정운호 대표만 봐도 그렇다. 서 회장은 매주 인문고전 수업을 해당 분야의 교수를 초빙해 듣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독서 경영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과학의 중요성을 인지해 과학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기여함은 물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에 비해 정 대표는 도박에 중독이 되어 마카오까지 가서 원정 도박을 해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신세이다.

가치 있고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영위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구별짓기.PNG 출처: daum 책


달라진 구별짓기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브르디외는 취향이 신분을 가른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교육 수준의 정도가 예술에 대한 고급취향과 저급 취향을 구별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다. 역으로 예술에 대한 취향이 계급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제로 발휘하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하는 실천들이 취향의 논리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지금은 문화와 취향이 신분을 나누는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취향은 단기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높은 수준의 문화를 즐기는 능력은 오랜 훈련을 통해 시간이라는 공을 들여야 길러진다. 사실 고급 취향을 기르는 데는 시간 뿐만 아니라 돈도 많이 든다.

브르디외의 그 유명한 ‘아비투스’는 습속(習俗)으로 인식할 수 있는데 라틴어로 태도, 모습, 외관, 상태 등을 의미한다. 무의식 중에 내가 습관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문화라고 해석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문화는 장기간의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에, 문화의 수준은 경제력으로도 손쉽게 커버하기가 힘이 든다.


오래 전 대학의 논술 시험에서도 상류층의 집에서는 식후 과일을 먹고,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 같은 곳을 어릴 때부터 자녀를 동반해 생활해 왔던 것을 제시문으로 나온 적이 있다. 고급의 취미나 문화 생활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오랜 세월 생활 속에서 갈고 다듬어지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간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향기는 자신이 어느 것에 시간을 많이 쓰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00중학교에서 주제선택프로그램의 하나로 영화를 활용한 인문고전 수업을 하게 됐다. 매주 청소년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뽑아서 수업을 진행했다.


영화.PNG https://movie.naver.com/


영화 <억셉티드>로 수업을 진행하며 지역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를 잠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억셉티드>는 지원했던 8개 대학에서 모조리 불합격 판정을 받은 고등학생 바틀비 게인스의 이야기이다. 일명 'B'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사우스 하몬 기술대학교(S.H.I.T)'라는 가짜 대학을 오픈한다. 바틀비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홈페이지에 클릭만 하면 합격을 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아뿔사! 자기들처럼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던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 대학 입학을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그러면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과목을 개설하도록 한다.


학습자의 수요에 맞게 학생 스스로 고안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교육과정이 개설된다. 학생 스스로가 교수가 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노닥거리기101’, ‘범퍼 스티거 전공’, ‘아무 것도 안하기’ 등 여러 과목이 개설된다.


보다 못한 진짜 ‘사우스 하몬’ 대학이 교육부에 고발해 학교는 폐교를 당할 처지에 놓인다. 교육위원희의 인정 심의회에서 S.H.I.T에서 개설한 과목에는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항목이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이런 위원장에게 “산책하며 몽상하기” 수업에서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환경 속에서 저희 인생을 계획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항변한다. 또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 202” 수업은 각각 개인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들의 숨을 소질을 발견하는 미술 수업이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스케이트보드 234”를 위해서 경사로를 지을 땐 공학과 물리는 물론 항공 역학도 동원했다고 설명한다. “미치도록 락엔롤 222”에서는 방황하는 세대의 음악과 가사 속 불안감을 감상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를 감동적으로 보고 나서는 우리도 정말로 배우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커리큘럼을 S.H.I.T의 학생들처럼 짜보자고 했다. 바로 전 주에 우리 학원에서도 똑 같은 수업을 진행했던 터라 같은 학년이어서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과목들이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쿠킹, 체스, 스트릿댄스, 권투, 십자수, 우클렐라, 승마, 축구, 영어 원서 읽기, 웹툰 그리기, 웹소설 쓰기, 유기견 보호하기, 사진.미술 전시회 다니기, 뮤지컬 .연극 관람하기 등 등’ 실로 다양한 과목을 개설했다. 반면에 00학교의 학생들이 개설한 수업 과목은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심지어 지금의 시간표를 그대로 만들어 놓은 학생도 있었다. 기껏해야 ‘요리, 독서, 글쓰기, 댄스’ 등 그 정도에 머물렀다. ‘댄스’반을 만든 학생에게 어떤 댄스냐고 물어봤더니 우물우물하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이 방송 댄스요, 힙합이요, 비보잉이요, 하우스요 이렇게 구체척으로 말하는 것에 비해 그저 일반적인 상식선에 머물러 있었다.


마그넷.PNG 여행갈 때 마다 모은 마그넷


문화예술교육이 강물처럼 흐르도록


사실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일이 없으면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삶의 질이 높아질 수도 없거니와 그냥 밋밋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본 것이 있어야, 체험한 것이 있어야 꿈도 갖고 비전도 품을 수 있다. 그런데 경험한 것이 적다보니 아이들이 생각해 낸 상상력 또한 빈곤했다. 이들의 수업 계획표를 보고 가슴 한 켠이 서늘했다. 다음 번 수업을 계획할 때는 예술과 관련된 영화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영화로 수업을 짜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문화예술의 생산과 향유의 선순환을 위해서라도 청소년기의 문화예술교육은 꼭 필요하다. 건전한 여가 활동을 위해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이다. 청소년 시기에 고급의 문화를 접해보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고급 문화를 향유하며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카우치족(族)처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감자칩이나 먹으며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이렇게 지역차가 심한데, 지방으로 가면 그 차이는 더욱 심할 것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청소년의 문화예술교육을 확산해야 한다.


문화의 격차는 곧 정신의 격차 생활의 격차를 가져온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의 여가 활동에서 사회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데, 청소년기에 다양한 문화를 섭렵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청소년기의 습득한 문화 수준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문화의 현장으로 가게 만든다.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문화예술의 생산자는 더욱더 창작 의욕을 불태울 것이다.


문화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문화생산자에게도 힘을 실어주게 된다. 시너지를 일으킴은 물론 개인 자신의 수준도 높아진다. 건전한 여가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속한 사회는 그 사회도 건강하다.


부모가, 교사가, 사회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에 힘을 보태야 한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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