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환대받기 위해 태어났다

'지상의 별처럼' 스며든 순간들

by 진순희

두근두근 학교 밖 청소년을 만나다


그동안 중고생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나 성인들 대상의 경험은 많았으나 학교 밖 청소년은 처음이었다. 걱정 반 기대감 반으로 수업 계획을 짰다.


‘스페셜 타임’의 형식으로 투입이 된 거라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다. 내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 한 사람이라도 반응이 오면 성공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들을 소개하여 이들에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의도 하에 주제를 ‘성장’으로 잡았다.


'부탁'으로 라포가 형성되다


이들이 있는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도 아늑했지만 앉아 있는 일곱 명의 소녀들도 또래 아이들처럼 순박하고 상큼했다. 미용하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화장도 예쁘게 잘하고 구김살이 없어 보였다.


준비해 간 '설레임’을 하나씩 나눠 주고 진행을 했다. 진행 순서를 설명하고 나에 대한 소개부터 했다.

눈이 유난히 크고 맑은 학생이 곧바로 질문으로 훅 들어왔다. 서울시 교육청 평생학습 강사시면 00 중학교에 감사 좀 나가 달라고, 교육청에 말해달란다. 동생이 학교에서 나쁜 일을 당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이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까 반드시 교육청에서 그 학교를 한 번 혼쭐을 내줘야 한다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동생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선에서 교육청에 상담을 해보겠노라고 하고 꿈이 뭐냐고 슬쩍 물었다. 연예인이 되고 싶단다. 말하는 내내 눈빛이 살아 있었다. 그 모습이 꿈을 갖기에 충분해 보였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커닝하다


오프라 윈프리와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의 김수영이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 알려줬다. 아모레 퍼시픽 회장과 네이쳐 리버블릭 대표의 엇갈린 행보에 대해 말하며 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했다.


여늬 아이들처럼 깊이 있고 진중한 내용이 나오면 곧 시들해했고 자기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얘기에는 집중해서 잘 들었다. 특히 세간의 이목을 끈 송-송 커플의 이혼 얘기에는 열광을 하며 질문도 했다.


『인생을 위한 12가지 법칙』을 설명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말을 하고 밀도 높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만한 일상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메이크 타임』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 해 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며 경청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중간중간 질문도 하면서 진행이 됐는데 수업 태도가 스카이 반 못지않았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깨우다

비전 선언문.PNG <자신들의 꿈을 녹여낸 '비전 선언문'>


마지막으로 비전 선언문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꿈을 쓰고, 그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쓰게 했다.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모두들 성공하고 싶어 했으며 엄마의 든든한 딸이 되고 싶어 했다. 수업 초반에는 아이들의 꿈이 포괄적이고 막연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공간을 말해보게 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받았던 인상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매우 건전하다는 거였다.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아이들이었다. 청담동 며느리는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노력해서 만든 삶이 아니니까 내 것이 아니라서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도 했다. 청담동에 건물을 사서 직원을 두고 경영을 하고 싶어 할 만큼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다.


처음부터 엎드려서 자고 있던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있었는데 두바이에서 머리 하는 데 30만 원은 줘야 한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진짜?냐고 묻기에 내 책의 출판사 편집장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게 바로 미용이라고 했더니 웅성대기 시작했다. 두바이에서 한국인이 머리에 손을 대면 필리핀 미용사보다 30% 정도 올려서 줘야 한다고 하니 모두들 두바이로 가겠단다. 이런 이런, 갑자기 끓는 냄비처럼 아이들이 즉흥적으로 달아올랐다.

필기도구.PNG <멋진 수업 진행을 위해서라도 좋은 필기도구가 필요해요 ~^^>


이처럼 수업이 잘 진행된 데에는 도구를 활용한 세밀한 준비가 한몫을 했다. 36가지 색연필이랑 24가지 색 펜과 예쁜 스티커에 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신난 나머지 자신들의 휴대폰을 스티커로 도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반 필기도구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고급진 펜을 선물로 마련했다. 게다가 비싼 파일을 준비해서 수업할 워크 시트를 넣어 새벽까지 만든 파일도 한 명 한 명 에게 나눠줬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열심히 준비한 것이 통했는지 학생들과 소통도 잘 되고 관계 맺음이 원활했다.


나는 야 족집게 강사~


쉬는 시간에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이들 몇몇이 유인물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미용 필기시험 대비를 하고 있었다.

특유의 내가 가진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사 검정대비, 한문 자격증 대비, 국어 인증 대비뿐만 아니라 컴퓨터 필기시험 대비 등을 계속해 왔던 터라 자격증 시험 대비에는 이골이 나있었다. 우리 학원에서 하듯 시험대비 요령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경제에만 파레토 법칙이 있는 게 아니고 시험에도 파레토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20%의 내용에서 80%의 문제가 나옴을 주지 시키고 그래서 기출문제 풀이를 정확하게 해야 함을 설명했다. 자신들의 필요에 맞닿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어느새 시험을 앞둔 수험생 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한 마리의 양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마음에 두고두고 남았다.

느즈막 하니 도착한 이 친구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다. 모두들 비전 선언문을 쓰느라 열중하고 있었는데도 이 학생 혼자만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웹툰 작가 하면 좋겠다고 해도 그냥 웃기만 했다. 나눠 준 선물도 건드리지도 않았다. 보다 못한 옆의 친구가 둘 중에 아무 거라도 하나 고르라 해도 미소만 지었다.


꿈이 뭐냐고 해도 없다고 했다. 지금은 없어도 어릴 적 꿈이라도 있지 않았냐고 재차 물어도 씨익 웃기만 했다. 아무 의욕이 없는 이 친구를 어떻게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겉돌기만 하고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는 이 아이를 어찌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필기시험 볼 미용 프린트는 들고 있었다. 무기력한 이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우리 모두 환대받기 위해 태어났다

여행.PNG

우리 모두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들이 학교 밖 청소년이든 미혼모이든 상관없이 우리 모두 같은 여행자임에 분명하다. “지금, 여기”의 삶도 실은 많은 이들과의 관계 속에 형성되어 있다.


지구별에서 만난 학교 밖 청소년들, 이들은 모두 지상의 별이었다.

이들과의 만남은 한지에 물 스미듯 내 삶에 느닷없이 ‘지상의 별처럼’ 스며들어왔다.



돈키호테1.png <돈키호테의 대사를 낭송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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