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삶은 언제 충만해지는가

by 진순희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되지요


문예진흥원에서 00 요양원의 멘토링 활동 과정을 촬영하기로 했다며 복지사들에게만 안내를 했단다. 그런데 중간에 요양복지사들이 할머니들께 귀띔을 해줘서 그런지 할머니들께서 나름 화장은 물론 꽃단장을 하시고 오셨다.


활동이 진행되는 곳이 늘 하던 데가 아니란다. 좀 더 나은 곳인 식당으로 옮겨서 하게 됐는데 오히려 집중이 더 안 된다고 공예 강사분이 아쉬워했다. 참관하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워낙 진행하시는 강사분이 그 분야의 베테랑이기도 하거니와 그곳에서 3년째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미 할머니들과 라포가 형성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담당 강사의 “인생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지요. 원래는 '신랑 각시' 공예를 하려고 했는데 택배가 도착이 안 돼서 부랴부랴 '초롱 등불'로 하게 됐어요. 건강을 지키셔서 이런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요.” 하며 할머니들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감사! 너나 할 것 없이 일상에서 감사를 느끼며 사는 것은 축복이다. 여기 이곳에 와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라는 시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인생의 선배를 한 자리에서 여러 분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방문객.PNG


추억은 실타래처럼 풀어져 나오고


"초가집에 전기 없었을 때의 호롱불 켰던 것 기억나시지요" 했더니 할머니 들께서 병아리가 삐악 대듯이 일제히 “정선생은 보지 못했지”라며 자신들만이 이런 추억이 있다는 듯 의기양양해하며 대답하셨다. 작은 것에도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이들이나 노인이나 모두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등불.PNG 출처: www.coupang.com


공예 강사의 말이 이어졌다. “밤중 무서울 때 초롱불 켜 두시면 수호신처럼 지켜줄 거예요. 불 밝혀 놓고 편히 주무셔요. 여러분들은 누군가의 등불이셨고 지금도 여전히 등불이십니다.”라며 할머니들의 지나온 삶에 의미부여를 했다.


"누군가의 등불이셨고 지금도 여전히 등불이십니다" 이런 멘트를 어떻게 생각을 해냈을까 감탄하며 지켜봤다. 이분의 DNA에는 이미 헌신! 봉사! 이런 것이 내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함께한 튜터 역시 공예 전공자답게 능숙하게 지도를 했다. 조립한 청사초롱에 색깔을 칠하는 과정이 있었다. 두꺼운 색깔 펜이라서 그런지 손의 힘이 약한 할머니들이 어설프게 펜을 사용했다. 매의 눈을 가진 담당 튜터가 그 광경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다가갔다.


“옆으로 뉘어서 색을 칠해야 예쁘게 잘 칠해져요”라며 할머니들을 독려했다. 못하시는 할머니께는 손을 같이 쥐고 색을 칠했다. 초롱등불 겉면에 색칠도 못하시던 할머니들의 작품들이 저마다의 다른 색깔로 초롱등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누군가의 삶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뚝딱 나와라 칭찬!


초롱 등불은 하나하나 끼워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할머니들께서 못하실까 봐 담당 멘토가 새벽 3시까지 조립을 해서 완성품을 만들어왔단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타인을 배려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잠을 못 자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달한 것 때문인지 몰라도 요양원의 할머니들께서 부쩍 이분께 의지를 했다.


진행 사항을 설명하면서 아주 쉬운 거라고 누누이 강조를 했다. 어렵지 않고, 정말 예쁜 등불이 만들어질 거라고도 했다. 아주 간단한 것인 색칠 하는 것부터 들어갔다. 색칠하는 실력이 내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였는데도 연신 튜터와 담당 강사는 할머니들께서 너무 잘하신다고, 색에 대한 조예가 깊으시다고 뭐라도 칭찬 거리를 만들어 냈다.


사람을 면 전에 두고 오글거려서 어떻게 칭찬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이분들은 이미 준비된 칭찬 제조기였다. 이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하고 그저 시험대비 문제풀이에만 급급하고 논술대비하면서 살아온 단조로운 내 삶과 비교가 되었다. 제대로 삶을 살아내는 타인의 삶을 곁눈질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기회도 됐다. 쑥스러워서 아니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섣불리 짐작하며 살아오진 않았는지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타인을 인정해주고 배려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분들처럼 살아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 없어


음주가무에 능한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란다. 그 민족의 후예답게 평소에도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들이 노래를 잘하셨단다. 그런데 몰입해서 등불을 만들 때는 그 좋아하는 노래도 안 하셨다. 요양원의 젊은 과장이 "양순 할머니, 노래좀 해 보셔~. 오늘은 왜 노래를 안 하셔요. 우리 요양원의 카수가". 이렇게 농을 거는데도 등불 색칠하시느라고 듣지를 못하시는 것 같았다.

어휴~ 저 몰입의 힘 좀 봐! 우리 학원 개구쟁이들도 이런 공예 수업을 하면 집중하려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완성된 등불에 스위치를 켜자 은은한 불빛이 들어와 제법 예뻤다. 완성품을 본 순간 할머니들께서 술렁대며 선생아! 를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아!
선생아!
여기다 내 이름 좀 써 줘! 얼른.


호세.PNG <누가 누가 잘하나. 선생아! ~ 내 거 바뀌지 않도록 내 이름 좀 잘 써 줘>


만든 등불 바닥에 당신 이름들을 써달라고 채근을 하셨다. 당신들이 만든 것이 다름 사람 것과 바뀔까 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점심 식사 시간이어서 밥을 실은 밀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마무리가 될 즈음 갑자기 90 연세 드신 할머니께서 예뻐 죽겠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예뻐 죽겠다고 초롱등불을 움켜졌다. 설마 젊은 우리들을 보고 그러시나 해서 잠시 착각에 빠졌다. 웬걸, 딸이 오면 이 이쁜 걸 뺏어간다며 딸이 올까 봐 두려워했다. 이렇게 예쁜 걸 빼앗기면 어쩌냐며 애달아했다.


물질에는 마성이 있어서 낡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물질처럼 노욕(老慾)도 낡지도 늙지도 않고 오롯이 시간의 흐름을 비껴가는 듯했다. 등불 밑에 당신의 이름을 제대로 써놨냐고 재차 물어보며 당신들의 것에 연연해하셨다. 당신들이 보는 데서 정확히 확인을 하며 이름을 써 드렸다.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한 연후에야 자리를 뜨셨다.


삶은 언제 충만해지는가


일정이 끝나고 요양원의 원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했다. 그동안 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할 프로그램이 한정되어 있었단다. 이번 일정을 통해 어르신들께 다양한 경험을 드릴 수가 있어서 참 귀하고도 뜻깊은 기회라고 했다.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며 정말 고맙다고 했다. 이렇게 정확하게 날짜를 지켜 꾸준하게 해주시니까 할머니들께서 이 수업을 많이 기다리신다고 했다.


도심에는 좋은 프로그램이 많지만 이곳과 같은 섬 지역에는 이런 프로그램 자체가 아주 귀하다며 진심을 다해 감사의 표시를 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지금의 요양원과 같은 지역은 지속적이며 정기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이곳이 지금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돌아가는 즉시 주관처에 바로 건의를 했다.


어느 누군가가, 어떤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제법 잘 살고 있다는 아니 잘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에 펌프로 바람을 채워 넣은 듯 삶이 충만했다. 만족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사랑은 검은 봉지를 타고


일정이 끝나고 그 지역에서 꽤 유명하다는 보리밥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담당 공예 강사가 소스라치며 차를 세웠다. 요양원의 할머니께서 주신 음식을 그곳에 두고 온 것 같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 되질 않았다. 그곳에서 음식을 만들 수도 없는데, 주실 음식이나 있을까 싶어 궁금증을 참치 못하고 물어봤다.


할머니들께서 무슨 음식을 주실 수가 있지요 했더니 요양원에서 나오는 간식을 안 드시고 모아두었다가 주신다고 했다. 물론 일주일을 묵혔다가 준 과자라 열어보면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단다. 심지어 요구르트도 안 드시고 꾹 참았다가 봉투에 담아주신다고 했다.

아이쿠야! 가 절로 나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검은 봉지는 차 트렁크에 얌전히 담겨 있었다.


인문 강사인 나는 글쓰기와 생각 나누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칠을 하는 동안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할머니들께서 집중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드는 거에만 신경을 쓰시다 보니 말로 인한 사고도 없는 듯했다. 이번 손으로 하는 노작활동은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내가 하는 수업이 더 유용하고 의미 있으려면 이분들과 소통하는 것 못지않게 몸으로 하는 다양한 활동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준비해, 내가 하는 활동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선한 영양력을 퍼뜨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일 년가량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게 가치 있게 다가온 단어는 ‘성장’이다.

학교 밖 청소년들과의 만남과 생을 요양원에서 마쳐야 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내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배려하고 공감하며, 재능과 시간을 나누고자 한다. 이들과 소통을 하며 성장을 돕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타인의 삶을 벤치마킹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하며 살다 보니

현재의 나는,

간장 종지에서 국대접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새.PNG 사랑을 전하는 전령사가 될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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