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고귀하게 만들고 눈부시게 하는 것 그것이 관건이다
문체부의 “인생나눔교실의 멘토링” 활동은 타인의 삶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멘티들과 나의 경험을 공유하다 보니 나눔보다는 오히려 나 자신을 벼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학생 멘티들 뿐만 아니라 삶을 요양원에서 마쳐야 하는 멘티들, 풋풋하지만 불안한 청춘인 장교 멘티들, 학교 밖 청소년 멘티들 실로 다양한 멘티들을 만났다.
.
인생이란 참 오묘한 데가 있어서 그런지 예상 밖의 일은 언제나 일어난다.
긴장하고 갔던 학교 밖 청소년들은 의외로 순수했고 맑았다. 이들은 다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해 학교를 못 다니는 친구들일 뿐이었다. 부모님 걱정하고 호강시켜드리고 싶어 하는 여늬 아이들처럼 효성스러운 딸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해 제때 학교에 올 수 없는 이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미라클 모닝’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노인이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체념하고 살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 멘티분들은 활력이 넘쳤다. 어린아이들처럼 예쁜 거 하나라도 더 갖고 싶어 했다. 옆에 있는 다른 할머니들의 것을 계속 곁눈질하며 당신 것이 더 잘됐다고 만족해했다. 그에 비해 자존감이 낮은 할머니들은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잘 된 거냐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냐”고 끊임없이 확인을 했다. 청사초롱 예쁜 등불을 딸에게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던 할머니 멘티 분도 떠오른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은 대담하고 적어도 용감할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장교인 경우에는 더욱 그런 기대를 하기 마련이었다. 인문학과 풍선 아트로 협업할 때였다. 풍선을 부는데 건강하게 생긴 장교 하나가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는 귀를 막고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풍선이 터질까 봐 겁난다고 아니 무섭다고 했다.
보다 못해 참관하던 멘토 한 분이 “아이구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냐고. 터지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리니 그제서야 조심스레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주제선택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생나눔멘토링을 진행한 00 중학교에서의 활동은 그동안 살아왔던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했다.
영화로 인문고전에 접근해 멘토인 나의 인생을 중1 멘티들과 나누었다. 영화를 보고 감독, 배우, 명대사, 시놉시스 등을 분석해 수업 원고를 작성하고 PPT를 만들어 수업을 했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영화는 다들 좋아해서 수업 자체는 다들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특히 임장 하시는 티코칭 선생님께서 학생들보다 열성적으로 수업에 임하셨다.
인생나눔교실에서 몇 달 동안 수업한 것에 대한 멘티 소감문을 받는다고 해서 내심 좋은 평가를 기대하고 소감문 양식을 만들었다. 가능하면 글을 많이 쓰지 않도록 ‘팽수’ 그림도 넣어서 신경을 썼다.
그런데 수업이 좋다, 의미 있다 이런 평가도 있었지만 간식으로 나간 마이쮸를 줘서 좋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다. 멘토링의 질로 평가받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간식을 더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았다. 소감문을 읽으면서 빵 터졌다.
한참을 웃다가 나를 멈칫하게 만든 소감문이 있었다.
“영화도 보고 교훈도 얻어 좋은 시간이었다. 근데 모둠이 다 안 친한 애들이었는데, 걔네들이랑 토론하라고 하실 때 좀 당황스러웠다”.
그 글을 보며 새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매사 뭘 해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 강의를 하고 나면 나에 대한 평가는 늘 괜찮게 나왔다.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는 데만 익숙해 있었나 보다. 내심 이번에도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을 거라 생각했기에, “당황스러웠다”라는 표현에 오히려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사실 이런 평가가 나올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다. 물론 다른 소감문들은 흡족할 만한 응답이었다.
살면서 인덕이 많은 것이 최고라 생각을 하는데 요즘 들어 정말 인복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게 마련이다.
00 중학교의 티코칭하시는 L 선생님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질 높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모둠 칠판도 준비해주시고, 토론을 어려워하는 조들은 다가가서 아이들을 독려해 원활하게 토론할 수 도록 해주셨다. 학생 수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업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내년에도 00 중학교가 멘티 기관으로 발탁이 된다면 아마 L 선생님 같은 분의 수고로움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매번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 갔지만 과연 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를 생각하면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 부족한 것들만 떠오른다. 나름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장의 상황은 예상 밖으로 달랐다.
빔이랑 노트북의 모니터 화면이 맞지를 않아 난감했다. 게다가 노트북에 마우스가 없어 조정하는데 애를 먹었다. 나중에 USB 허브를 준비해 마우스를 사용해서 위기는 넘길 수 있었지만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다른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에 이 일을 계기로 삼아 마우스 없이 노트북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틈틈이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에 따르면 이제 실리콘 칼라들의 등장으로 블루 칼라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 계층까지 위험에 처하게 됐단다. 실제로 활동을 하다 보니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스마트 폰으로 할 수 있는 기능들을 잘못해 쩔쩔매는 경우들을 많이 봤다. 수업 자료 만드는 PPT는 고사하고 수업 일지를 관계 기관에 올리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주민센터나 구청의 정보화 교실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일을 하려면 최소한의 정보화 능력은 갖춰야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 지금의 현실은 서류 대신 밴드에 자료를 올리고 카페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다 바뀌었다. 기본적인 능력을 갖춰놔야 있는 그나마 있는 자리라도 지키고 일을 할 수 있다. 지난 역사를 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일자리의 판도를 바꿔놓는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농민과 수공업자의 일자리가 없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후 자동화 기술의 발달 또한 공장 근로자들의 실업을 불러왔다. 더 나아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전문가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 또한 있다. 물론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마이클 글래스먼 교수처럼 실제로 사라지는 직업의 수는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래 인공지능이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예전에는 남들과 경쟁을 했을 때 그들보다 반 보 정도의 차이만 나면 평타를 치며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확산된 사회에서는 다를 것이다. 그에 따른 시각의 전환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보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정재승 교수는 예견한 바 있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인간 존재 자체에 천착하는 인문학이 훨씬 중요한 가치가 됨을 짐작할 수 있다.
인문학 강의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지능 시대가 기회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존재 가치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생각을 나누고 글로 정리하는 일은 직업으로써의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축복인지 재앙인지 이제 인간 평균수명 100세 시대인 ‘호모 헌드레드' 시대에 진입을 했다. 디지털 원주민은 못 될지언정 적어도 멘토링 활동에 필요한 만큼의 디지털 기기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멘티들과 영화로 인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이라 당장 파워포인트 자격증반을 등록했다. PPT에 동영상을 잘라서 넣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내친김에 유튜브 방송반도 수강 신청을 했다. 아마 멘토링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부족한 점을 몰랐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직도 잘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멘토링 현장에서 한바탕 홍역을 겪은 지금, 멘티들과 튜터님 이하 다른 멘토님들과의 연합 소모임을 통해서 아울러 정례 모임이라는 시간을 통해 옥돌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함께 한 Y 튜터님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치밀한 관리능력을 옆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인생나눔교실을 통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벤치마킹하면서 아마 이전보다 더
결이 고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