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음대로 지내볼까
‘처음’은 언제나 어설프다. 준비 없이 맞닥뜨리는 것일 때는 우왕좌왕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처음은 언제나 어렵다. 군부대에서의 멘토링도 그랬다. 군부대도 처음인데 장교들만의 집단은 더더욱 처음이라 긴장이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설레기까지 했다.
00 사단에서의 멘토링의 주제는 “풍선 아트와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기로 했다. 이른 아침부터 Y 튜터님과 함께 협업을 하실 공예강사분을 마중 나갔다. 저 멀리 풍선 재료를 잔뜩 담은 가방을 그것도 몇 개씩이나 들고 계신 강사님이 서 계셨다. 협업할 내용들을 충분히 나눈 다음, 다시 한번 조율을 하고 Y튜터님의 안내로 아주 부드러운 콩 음식으로 이른 점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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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풍선 아트 할 준비를 했다. 밖에 있던 탁자도 옮겨 놓고, 멘티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 배치를 했다. 가운데로 다 모여 앉을 수 있도록 의자도 알맞게 놓았다.
멘토링 하기 전날 풍선 아트와 삶 이야기를 어떻게 엮어낼지 고민하면서 풍선 아트와 관련된 것을 검색을 했다. 도대체 풍선으로 어떻게 예술을 만들어낼지 협업하는 내 자신이 궁금증이 일었다.
협업을 완성도 높게 할 수 있을까를 고심을 하다가 장교들에게 도움이 될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으로 멘토링을 준비했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페리스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사람들을 거인이라는 뜻에서‘타이탄(titan)'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1만 시간의 법칙을 깬 거인들의 61가지 전략을 가진 타이탄들의 성공 요건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거인들이 갖고 있는 지속력과 자신만의 책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은 계백과의 승부를 앞두고 말한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거야”라고.
살아남은 자의 대표 주자는 바로 아널드 슈워제네거다. 근육맨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할리우드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제작자 어느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알 파치노나 더스틴 호프만처럼 자그마하면서도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배우들을 선호했다. 할리우드에서 별 쓸모가 없는 그가 선택한 것은 ‘버텨내기’였다. 금발 미남처럼 보이려 하지 않았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려 했다. 그들처럼 하지 않음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그가 한 것은 그저 버텨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제작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계속 머물면서 팝콘이나 먹으며 버텨냈다.
또한 “큰 성공과 성과를 거둔 사람들은 모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자신만의 책”을 지니고 있다. 글쓰기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왔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글을 잘 써야 한다.”“매일 허접하게라도 두 장씩”쓰라고 팀페리스는 주문한다. 엄밀히 말하면 작가를 만드는 건 문장력이 아니라 어떻게든 ‘쓰고자 하는 의지’ 일 것이다. 의지 또한 일상에서 매일매일 가꾸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이런 내용을 담아 인문 멘토링을 했다. 그런 다음 매일매일 꾸준히 글을 써서 멘토인 나 자신도 <<명문대 합격 글쓰기>>의 저자가 될 수 있었다고 내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장교 멘티들이 어찌나 집중해서 잘 듣는지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다.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역시 나는 강연의 길로 나섰어야 돼. 왜 진즉부터 이 길로 나설 생각을 못했지” 하며 한껏 자부심에 취해 있었다.
이런 나의 오판은 풍선 아트가 시작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부푼 자부심은 에고라는 적에게 쉽게 무너져버렸다.
풍선에 바람을 넣을 펌프를 받자마자 장교들이 아이들처럼 신나 했다. 펌프를 위아래로 휘두르는 사람, 펌프로 총 쏘는 시늉을 하는 사람, 좀 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인문 멘토링 할 때의 지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는 벌써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지 오래였다. 갑작스레 봄날의 소풍 가는 분위기로 확 돌변해 버렸다. 돌변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있던 나를 살린 것은 담당 멘토의 풍선 아트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번 늘어난 풍선은 이미 늘어져서 탄력이 없으니 한방에 하세요.”라는 말이 끝나자 장교 중의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이 이미 꼬였는데 풍선쯤이야” 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풍선의 크기를 재는 ‘싸이저’에 맞춰 풍선에 펌프질을 하며 꽃풍선, 하트 풍선, 벌 풍선, 개인 풍선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와이프에게 줄 거라는 둥 아들에게 갖다 줘야겠다면서 “집중 초집중 열공” 모드로 들어갔다.
이공계 출신의 장교들이라서 그런지 전체를 보는 눈과 손재주가 탁월했다. 하트 풍선을 3개 묶고, 2개 묶고 순서에 맞춰 하트를 잘도 만들어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초반에서 고급반 심화반으로 월반을 시키고 잘하는 장교에게는 사범반으로 올려도 되겠다"는 농담을 하며 화기애애하게 진행이 됐다. 얼마나 집중을 잘했던지 한 시간 10분이 넘도록 쉬는 시간도 없이 진행됐다. 보다 못해 10분의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작품에 들어갔다.
모두들 개인 풍선에 벌 풍선 두 개씩을 안고, 가족이 있는 분들은 하트 풍선들을 안고 함빡 웃음을 안고 돌아들 갔다. 자신들의 몸을 반이나 가릴 정도의 꽃풍선으로 몸을 감싸 아기자기한 꽃들이 걸어 다니는 듯했다. 멘티들의 열띤 참여와 멘토와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멘토링 내내 웃음이 끝이지를 않았다. 멘티들이 중간중간 질문도 하면서 만드는 데 열중을 했다. 함께 하는 멘토들 또한 인생 나눔 멘토링의 정수를 맛보았다.
다른 조의 C 튜터님과 5년 차 되는 다른 멘토님과의 연합 소모임도 뜻깊었다. 경험자들의 멘토링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멘토링 경력이 꽤 된 J 멘토의 자기 고백이 이어졌다. 처음 멘토로 나갔을 때는 무엇이든 가르치려했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단다. 그런데 멘토 자신이 살아온 삶을 책과, 영화로, 공예로 멘티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단다. 이번 기회를 통해 멘토링이 지식을 전달하려는 수업이 아닌 멘토들의 인생을 멘티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협업을 통해 다양한 멘토링의 모형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으로 다가왔다.
멘티들의 소감을 들어보며 깨달은 점이 많았다. 인문 멘토링도 좋지만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는 풍선 아트와 같은 활동도 만족한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깜짝 놀라서 “그럼, 아까 그 경청하던 태도는 뭐지요” 했더니 부대에서 다른 교육도 많고 공부할 것도 너무 많단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 보내는 것도 자신들한테는 필요하다고했다."공부할 게 너무 많다~"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맞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도 중요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어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매일매일의 바쁜 일상 속에서 가만히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지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멘티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사실 교육이라는 것도 멘토링 활동이라는 것도 다 피교육자나 멘티들의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그것이 상황에 맞는 교육이라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멘티들의 인원이 많을 때는 인문 멘토와 공예 멘토의 협업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뇌와 우뇌를 결합한 협업으로 적확하고 유연한 멘토링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보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