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평소 수업 때마다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AI를 잘 다루려면 결국 책을 읽어야 하고, 내 머릿속에 든 스키마(배경지식)가 탄탄해야 한다"라고요.
단순히 "프롬프트에 역할을 부여하고, 맥락을 넣으세요" 같은 기술적인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그건 '그릇'을 만드는 기술일 뿐입니다. 그 안에 어떤 '내용물'을 담아 질문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아날로그적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 생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흥미로운 글을 읽게 되어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바로 최훈 교수님의 <AI 시대의 호모 콰렌스>라는 칼럼입니다.
https://v.daum.net/v/20251224000949111
작가님, 똑같은 챗GPT인데 왜 저한테는 뻔한 소리만 하고,
작가님 질문에는 저렇게 깊이 있는 대답을 내놓나요?“
수강생분들의 이 질문에 저는 제 디카시(디지털 카메라 시) 작업 과정을 보여드리곤 합니다.
AI를 활용할 때 단순히 "사진 보고 디카시를 써줘"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 전공 분야의 지식을 총동원해 특정 미학적 용어나 이론적 배경을 질문 속에 직접 녹여 넣습니다. AI에게 명확한 '지식의 좌표'를 찍어주는 것이죠. 이렇게 질문자가 가진 스키마(배경지식)를 투입했을 때와 아닐 때, AI의 답변 퀄리티는 천지차이가 납니다.
이 지점이 바로 최훈 교수님이 칼럼 <AI 시대의 호모 콰렌스>에서 강조한 핵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교수님은 "질문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식의 재구성 과정"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우리는 질문을 흔히
“번뜩이는 재치”나 “센스 있는 한 문장”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최훈 교수님이 말하듯,
질문은 결코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다시 배열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질문 A
“AI로 감동적인 글 써줘.”
이 질문에는 재료가 없습니다.
AI는 ‘감동적인 글’의 정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무난하고 어디서 본 듯한 문장으로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 B
“이 글을 ‘체험형 에세이’가 아니라
‘관찰자 시점의 산문’으로 바꿔줘.
정서는 절제하되, 마지막 문단에서만 감정의 밀도를 높여줘.”
이 질문에는
✔ 장르 구분에 대한 이해
✔ 시점에 대한 개념
✔ 문단 호흡과 정서 조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AI는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아, 이 질문자는 글을 아는 사람’이라는 좌표를 인식하게 됩니다.
즉,
질문의 수준은 곧
질문자가 머릿속에 쌓아온
독서·사유·쓰기의 총합입니다.
질문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쌓인 지식이 재조립되며 만들어지는 결과물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잘 몰라서 질문을 못 하겠어요.”
하지만 ‘정보격차이론’이 말하는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호기심은 ‘전혀 모를 때’가 아니라, ‘어느 정도 알 때’ 폭발합니다.
� 실제 수업에서 자주 보는 두 유형
A 유형 – 스키마가 거의 없는 경우
“이 사진으로 디카시 써줘.”
“좋은 문장으로 바꿔줘.”
이 질문은
✔ 무엇이 좋은지
✔ 무엇이 부족한지
✔ 어떤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지
AI가 추론할 단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늘 비슷합니다.
그럴듯하지만, 뻔한 답.
B 유형 – 스키마가 있는 경우
“이 이미지는 ‘사물의 고립감’이 강한데
시어가 정서적으로 너무 앞서 있어요.
설명을 줄이고, 이미지의 물성을 더 살리는 방향으로 고쳐줘.”
이 질문에는
✔ 디카시의 미학
✔ 이미지-언어의 긴장 관계
✔ ‘설명’이 과잉일 수 있다는 판단
이라는 배경지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AI는
단순 생성이 아니라 함께 사고하는 모드로 들어갑니다.
결국,
AI의 답변 수준을 결정하는 건
AI의 성능이 아니라
질문자의 ‘알고 있음의 깊이’입니다.
그리고 그 깊이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스스로 사고해 본 시간에서 옵니다.
'‘호모 콰렌스(Homo Quaerens)’형 인간
AI 시대에 필요한 인간형을
최훈 교수님은 ‘호모 콰렌스’,
즉 ‘질문하는 인간’이라 부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인간은 본래 질문하는 존재다"라는 철학적 명제가 있어왔지요.
그러한 개념을 "AI 시대에 살아남는 인간은 질문할 수 있는 인간"인
'호모 콰렌스'라고 시대적 재정의를 한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질문은
검색창에 던지는 단순 요청이 아닙니다.
“이게 맞나요?”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관점 말고 다른 해석은 가능할까?”
“이 개념을 저 맥락에 옮기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런 질문은
✔ 책을 읽어본 사람
✔ 개념을 한 번 이상 자기 언어로 써본 사람
✔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해 본 사람만이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읽지 않는 사람은
질문할 재료가 없고
쓰지 않는 사람은
생각을 구조화하지 못하며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무엇을 물어야 할지조차 모릅니다.
AI 앞에서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사고의 근력의 차이입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주
“어떻게 물어야 하나(How)”에만 시선을 빼앗깁니다.
역할을 부여하라, 맥락을 넣어라, 단계적으로 지시하라—
이 모든 것은 분명 필요한 기술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계속 이야기해 왔듯,
질문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즉, 어떻게 묻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묻고 있는가(What)입니다.
그 ‘무엇’은 어디에서 올까요?
프롬프트 공식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읽어온 책들,
메모해 둔 문장들,
혼자 혹은 타인과 나누었던 사유의 시간,
그리고 몇 번이고 고쳐 써본 글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앞선 기술을 다루기 위해
우리는 가장 오래된 훈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
이 아날로그적인 반복이 쌓여
비로소 질문의 ‘0단계’,
즉 스키마를 만듭니다.
오늘도 프롬프트 명령어 하나를 더 외우기보다,
책 한 페이지를 더 읽고,
마음을 붙잡은 문장 하나를 써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작은 축적이
AI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고,
여러분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질문하는 인간’—호모 콰렌스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새로운 미래는 언제나,
그렇게 전통 위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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