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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01. 2020

심미審美, 그 아름다운 단어를 위하여

 알퐁스 도데의 <별>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별’하면 스티븐 호킹 박사가 떠오른다.

그가 사망했을 때 물리학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며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던 것이 생각난다. 그의 죽음을 각 신문사들은 “스티븐 호킹, 별이 되어 떠나다”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중1, 중3 국어 교과서에 단편 소설  <별>이 실려있다. 특목고 가야 된다는 어머니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작품을 갖고 내신 대비를 진행했다.



아 ~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갖고 내신 대비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이 멋진 작품을 갖고 의인법이네 직유법이네 하면서 시험에 나올 수사법을 가르칠 때면 작품 하나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문제풀이용으로 수업을 해야만 하는 현실에 애달플 때가 있다.    

 

책 읽기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문학 수업할 때가 제일 난감하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법으로 나의 경험을 말해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연애시절 이야기나 학교 다닐 때 소위 일진 애들한테 괴롭힘을 당했던 이야기를 하면 쏙 빨려 들어와 내 얘기에 집중을 한다. 그런데 이번엔 안 먹혔다. 씨알도 안 먹혔다.      


중학교 시절 내가 공부하던 교과서에도 <별>이 실려 있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마침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분은 천상 국어 선생님이셨다. 국어 선생님답게 감수성이 풍부해서 설명할 때도 오버 액션을 자주 하셨다.


<별>을 설명할 때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얘들아 봐봐! 내가 사모했던 주인댁 아가씨가 제 발로 날 찾아왔잖아. 그런데 내 어깨에 살포시 잠이 들은 거야. 아침이 될 때까지 그 아가씨를 그대로 자게 놔뒀지. 그러면서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가 가던 길을 잃고 내려와서는 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것이라고 말하잖아.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지지 않니. 그 양치기가 몇 살이냐 하면 피 끓는 청춘인 스무 살이었잖아. 그 스무 살에 이렇게 고운 마음을 갖고 있었어.

아 ~ 난 이 장면만 생각해도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아.” 하시면서  손을 가슴에 포개던 모습이 마치 지금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게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얘기해주면서 얘들아 여기 좀 보렴. 학습목표가 심미적 인식이래.

단어 자체도 멋지지 않니? ‘심미적’, ‘심미’라는 단어가 입에 살살 감기지 않아. 이 단어가 눈에 삼삼하지 않니? 하며 운을 떼는 데도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 단원의 학습 목표가 “문학은 심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소통 활동임을 알고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다”였다. 아이들한테 “나는 ‘심미’의 ‘심’ 자가 깊을 심深자 일 것 같았어. 그런데 교과서에 실려 있는 한자 좀 보렴. 살필 심審자야. 하긴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보려면 살펴서 봐야 찾을 수 있겠지.”라고 말하면서      

심미審美란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심미적 인식은 대상의 가치를 아름다움의 측면에서 깨닫는 행위를 하는 것과 그것을 통한 깨달음의 결과”라는 것을 또박또박 설명을 했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작가는 표현 방법을 통해 자신의 심미적 인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독자인 우리는 말이야, 작가의 창의적 표현을 통해서 작품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심미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거지.”


이렇게 설명하는 순간 “지금 뭐라는 거야”하는 싸한 반응이 느껴졌다.     

 

 

출처: http://sopoong.ca/


얼른 화제를 바꿔서

“이 문장은 반드시 시험에 나와. 자, 펜 들고 좀 전에 설명한 직유법, 의인법, 대구법에 해당하는 문장에 밑줄을 쳐봐. 이 표현 방법은 학습활동에도 나와. 게다가 어느 문제집이고 다 나오니까 꼭 알아둬야 해”

했더니 그제서야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른 학교는 <별>이 중1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그 학년은 수업다운 수업이 진행되겠거니 했다. 그것도 오산이었다. 워낙 JTBC나 TBN과 같은 종편 드라마에 빠져 있어서 그런지 시큰둥해했다.     

 

그래도 너무 아쉬워 좋은 문장들을 선별해 이 문장들은 시험에 꼭 나올 거라며 엄포를 놓고 필사를 시켰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면서라도 아름다운 문장을 맛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볼멘소리만 들었다.      



그게 뭐가요?


“이게 뭐가 아름다운데요? 너무 재미없어요. 별로예요. 크게 와 닿지도 않아요.”    

 

끄응 ~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짧게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자연에 관한 묘사를 이렇게 빼어나게 할 수가 없어. 게다가 인물의 섬세한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묘사할 수가 있는 거지. 이런 표현이 양치기의 순수한 사랑을 아름답게 나타내게 만드는 거야. 이게 바로 심미적 인식이라는 거지.” 하며 정리를 했다.      


<별>은 잘 알다시피 산 위에 홀로 살고 있는 양치기의 주인댁 아가씨 스테파네트를 향한 사랑한 이야기이다. 산 위의 양치기한테 한 달에 두 번 농장의 심부름꾼 꼬마 미아로나 노라드 할머니가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데 그날은 아가씨가 산에 온 것이다. 미아로는 아프고 노라드 할머니는 휴가라서 아가씨가 직접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양치기는 “누구였을까 맞춰 보세요! 바로 우리 아가씨였답니다.” 이렇게 속삭이며 독자에게 대화하듯이 말을 건넨다.  


수줍음 많고 순박한 양치기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주인댁 따님 스테파네트 아가씨일 뿐이다.

음식을 건네주고 가버린 뒤의 심정을 표현하는 문장도 빼어났다.

     

비탈진 오솔길로 아가씨가 사라지자, 노새 발굽이 땅을 차면서 이리저리 구르는 자갈돌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툭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지요. 그 소리가 귀에 오래오래 들려왔습니다. 날이 저물 때까지 나는 잠에 취한 사람처럼, 행여 내 꿈이 사라져 버릴까 봐 움직일 엄두도 못 내고 마치 잠에 취한 사람처럼 그렇게 서 있었지요.     

 

이별 장면을 어쩌면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게 표현할 수가 있는지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며 연극배우처럼 한껏 들떠서 모션을 취해 읽었다.    

  

“얘들아 이 문장 좀 봐 세상에!. 아가씨가 산을 내려가서 이별하는 상황을 이렇게 비유적 표현을 써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잖아. 자갈돌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툭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잖아.(내 가슴을 치면서~~)

아가씨랑 함께 했던 상황을 길게 누리고 싶어서 움직일 엄두도 못 냈다잖아.

 그 허전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 말이지.”( 나도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처럼 가슴에 손이 모아졌다)      

그래도 아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중에 용기 있는 한 아이가 나서서 말했다.  


“그래서요, 그게 뭐요?”     


엥~~ 나야말로 아이구 이게 무슨 일이람 하는 심정이었다.    

  

산 위에 살고 있는 양치기한테 음식 바구니를 갖다 주고 내려간 아가씨가 물에 빠져 흠뻑 젖은 몸을 덜덜 떨며 다시 산으로 올라오자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  7월의 밤은 짧아서 아침이 금방 올 거라고 위로함은 물론 아가씨를 위해 새로 깐 밀짚 위에 멋진 새 양가죽을 깔아 아가씨의 잠자리를 마련해 준다 .


하지만 불 옆으로 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아가씨는 양치기인 ‘나’의 옆으로 온다. 아가씨는 양들이 몸을 뒤척이면서 건초가 부스럭대고 양들이 잠결에 매매 소리를 내서 필시 잠이 못 들었을 거라 생각하며 나의 어깨에 두르고 있던 암사슴 가죽을 아가씨에게 건넨다.

아~ 나도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심정으로 밤풍경에 대한 묘사를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짧은 글 긴 침묵


만약 여러분이 한 번이라도 한 데서 밤을 새워 보았다면 알 겁니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 고독과 침묵 속에서 신비로운 세상이 깨어난다는 것을 말이죠. 그럴 때 샘물은 낮보다 한결 또랑또랑한 소리로 노래하듯 흐르고, 연목은 작은 불꽃들을 밝히지요. 산의 모든 정령들이 자유로이 왔다 갔다 하고요. 허공 중에는 뭔가 삭삭 스치는 듯한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마치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풀들이 쑥쑥 커 오르는 소리처럼 들려온다니까요. 낮 시간은 존재들의 삶이지만, 밤은 사물들의 삶입니다.      


별자리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던 그 사이에 아가씨는 양치기의 어깨에 살포시 잠이 든다. 배려심이 넘치는 이 양치기는 잠든 아가씨를 위해 꼼짝도 안하고 앉아있다.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세심하게 설명을 했다. 이러한 내용이 바로 주제에 담긴 심미적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양치기인 ‘나’의 “순수함”과 “정신적 사랑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몇몇은 집중하며 들었다.     

  

아가씨는 이렇게, 희부옇게 밝아 오는 새벽빛으로 하늘의 별빛이 바래어 마침내 안 보이게 될 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있었어요. 나는 아가씨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는 조금 흔들리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제껏 오직 선한 생각만을 내게 전해 주었던 이 밝은 밤의 성스러운 보호를 받으면서 말입니다.


잠든 아가씨에 대한 서술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을 하다니. 아가씨를 '별'에 비유해 고귀한 존재임을 담담하게 강조했다. 별과 같은 존재인 그 아가씨를 향해 선한 생각만을 갖도록 한 순전한 나의 마음을 담백하게 나타냈다.

읽고 나서 나도 중학교 때의 국어 선생님처럼 잔잔하게 아려왔다.  짧은 글에 긴 침묵으로 이어졌다.  


우리 우주에는 별들이 커다란 양 떼처럼 유순하게, 소리 없는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앉은 채로 이따금 난 그려 보곤 했어요. 저 별들 중에 가장 여릿여릿하고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가 가던 길을 잃고 내게 내려와서는 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것이라고요.


출처: 교보문고, 인디고(글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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