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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12. 2020

'자뻑'은 나의 힘

잠시 동안의 착각은 일시적이나마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마음은 자만을 만들어내는 기계이다     


코로나로 거리가 조용하다. 재원생 아이들도 안 오는 아이들이 더러 있어 신학기임에도 불구하고 학원이 조용하다. 그런데 고3 상담이 들어왔다. '산삼보다 더 귀하다'는 그 고3이 말이다. 보통 우리 학원은 대부분이 소개로 들어온다. 일단 수업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고3이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발등에 불 떨어져서 오는 거라서 거의가 등록을 결심하고 문의를 해온다.  

    

수업의 진행 상황에 대해 마무리를 한 후에 누구 소개로 들어왔냐고 물었다.

정영훈이 소개라고 했다. 아, 상산고 간 친구 정영훈이 말이지? 했더니

아니요?

아, 그러면 누굴까. 정영훈? 정영훈이가 도통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내일 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찾아온 고3 친구의 성적이 너무나 소박했다. 4~6 등급에 걸쳐 있었다. 혹시 마음속에 품은 지원 대학은 있냐고 물어봤더니 거침없이 “인 서울은 꼭 갈 거”란다. 최소한 K대학까지는 갈 수 있을까요? 한다

아이구 이 친구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싶었다. 그간에 만났던 성적이 겸손한 친구들은 상위권 학생들에 비해 성적뿐만 아니라 정보마저도 어두웠다.  


기죽이기 싫어서 남학생들은 체력이 좋고 개 중에는 의지력 또한 뛰어나서 성공하는 사례도 있으니 수능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 있지 않겠냐며 독려를 했다.      

EBS의 <공부의 왕도>의 성공한 사례 등을 설명하며 이제 남은 기간 동안 성적을 올리는 일만 남았으니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해보자고 했다.


온 세상이 조용한 가운데 코로나를 뚫고 등록을 하러 온 게 신통하고 기이해서 다시 물어봤다.

누가 소개했냐고 했더니 형이 소개했단다. 고3 학생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S대 대학원 다니는 자기 형이 이번엔 혼자 가서 상담하라고 했단다. 다른 때는  형이 알아봐 주고 상담할 때도 같이 가주곤 했는데 이번엔 혼자 가서 해도 된다고 했단다.

        

아니, 왜 이번엔?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그 친구를 보곤 한껏 상상의 나래를 폈다.

맞아, 우리 학원은 이미 검증이 됐다는 거지.

아무렴 그렇지. 여기서 26년째 하고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어.

동생 혼자 가서 등록해도 될 만큼 믿고 맡긴다는 거잖아.      

이렇게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생각했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소셜 애니멀』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는 경향이 짙단다.  


인간의 마음은 자만을 만들어내는 기계이다. 인간의 의식은, 본인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했다면서 허위로 공로를 인정한다. 또 실제로는 아무런 권한이나 결정을 하지 않는데도 어떤 것을 제어한다는 환상을 조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운전자의 90퍼센트는 자기 운전 솜씨가 평균보다 좋다고 믿는다. 대학교수의 94퍼센트가 자신의 강의 솜씨가 평균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기업가의 90퍼센트가 새로 시작한 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SAT 시험을 본 학생의 94퍼센트가 자신의 리더십이 평균 이상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대학생은 직업이나 해외여행, 결혼생활과 관련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한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옷을 살 때, 자기 또래 사람들은 살이 점점 더 지는 게 일반적인데도 조만간 몸무게를 줄일 것이라고 근거 없는 낙관을 하며 꽉 끼는 옷을 고른다.
PGA 투어에 참가하는 프로 골퍼들은 1.8미터 거리에서 퍼팅한 공의 80퍼센트가 홀컵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이 거리에서 퍼팅에 성공하는 확률은 평균 54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소셜 애니멀』 328쪽      



https://cafe.naver.com/shechenkorea/2832


중년의 사람들이 몸무게를 줄일 거라며 꽉 끼는 옷을 산다는 글에 웃음이 터졌다. 어머, 이건 바로 나잖아.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최소한 3킬로 정도는 뺄 수 있다며 약간 작은 듯싶어도 만용을 부려 사 갖고 온다. 결국 장롱 속에 처박아 두다가 재활용함으로 버려지긴 하지만 매번 이런 식이다. 근거 없는 낙관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     

 

때로는 까닭 없는 자신감으로 곤두박칠 치는 상황에 맞닥 뜨리기도 한다. 이번 일이 그랬다.  

쓸데없는 자부심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알기 까진 단 하루도 안 걸렸다.

상담하고 간 다음날 바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것저것 손이 갈 게 많은 친구였다. 기본적인 문법 지식도 없는 데다 문학 파트를 못 읽어냈다. 비문학 독서는 읽는 게 너무 더뎠고.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다른 팀의 반 정도로 수업의 양을 줄이고 우선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고3 학생도 자기도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해서 그 학생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했다. 호흡이 맞아서 그런지 친밀감도 쉽게 형성이 됐다. 쉬는 시간이 되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방정맞게 또 물어봤다.     


잘 가르친 다든가 세심하게 관리를 잘해줘서 성적이 잘 나온다든가 등 등의 잔뜩 기대를 걸고서

 “이번엔 왜 형이 혼자 가서 상담하라고 한 거야?” 했더니

아이구야, 맥이 빠지게도

“형이 시간이 없대요.”

무심한 듯, 그 한 마디가 전부였다.

 

시간이 없다고. 우리 학원을 신뢰해서 보내는 게 아니고?

엄마처럼 찬찬하게 신경 써줘서 보낸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는데...... 실망감을 속으로 삼켰다.      



'자뻑'은 나의 힘     


자만이 빚은 대참사였다.

인간의 자만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소셜 애니멀』에서 말한다.

사람은 무의식을 제어하는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단다. 돈을 내고 헬스클럽에 등록을 하지만 실제로 헬스장까지 가서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깨워 일으키지 못한다. 새해 일 년 치 등록해 놓고 못 간 것만도 몇 번인가.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 못지않게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는 정도에 대해서도 과대평가한단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사례도 인상 깊었다. 재학생 절반은 누군가 자기 앞에서 성 차별 발언을 하면 참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제 실험 결과는 달랐다. 참치 못한 학생의 비율은 16퍼센트에 불과했다.    

   

또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과대평가한다. 폴 슈메이커와 에드워드 루소는 기업의 이사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했다. 자기 분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자기가 한 대답이 맞는다고 얼마나 확신하는지를 물었다.

광고업계 관리자들은 90퍼센트를 맞췄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정답률은 39퍼센트에 그쳤다. 컴퓨터 업계 관리자들은 오답률이 5퍼센트일 거라 예상했지만 심지어 오답률이 80퍼센트나 됐다. 루소와 슈메이커의 실험에서 99퍼센트가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2566685


그 99퍼센트에 당연히 내가 속해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뼈아픈 사실이었다. 메타 인지의 부족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는 메타인지가 결여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어쩌면 고3 학생은 집 가까운 학원을 그냥 찾아왔을 수도 있었다. 우리 학원 바로 뒤가 자기 집이 었으니까. 코로나로 대형 학원 가기는 부담스러워 왔을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 험난한 세상에 이런 ‘자뻑’도 없으면 어찌 살아가라고.

‘자뻑’에 취해 스스로를 연마하고 고양시키다 보면 진짜 내가 꿈꾸던 위치로 가지 않을까.   

소설가 이외수도 『자뻑은 나의 힘』에서 말하지 않던가.


가장 위대한 응원군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절실하고
절실하고
절실하게
자뻑이 필요한 시대라고.      


비록 물질적 요소는 고장 나 있는 상태지만 정신적 요소와 영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독서와 기도 또한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아픔만을 생각하지 말고 타인의 아픔까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인간성도 썩 괜찮은 놈이니까요.

 ― 『자뻑은 나의 힘』, <날마다 새로 태어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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