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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19. 2020

여관방에 홀로 남겨졌다

감정은 습관이다

그곳에선 나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야행성 체질이 몸에 배어 고등학교 때도 아침에 일어나려면 매일 허둥댔다. 오죽하면 친정어머니께서 쟤 대학 보내는 것보다 내가 가는 게 더  쉽겠다고 했을까. 낮에는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지내다 밤이 되면 말똥말똥 총기가 샘솟았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갔을 때였다. 다음날 새벽에 토함산에 해돋이 보러 갈 일정이 들어있었다. 일찍들 자라고 선생님께서 당부를 했지만 우린 늦게까지 놀았다. 밤이 되자 이내 하나 둘 쓰러져 잠들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밤이면 더 기운이 나던 나는 그날도 지금처럼 3시 무렵 잠이 들었다. 


곤하게 자고나 눈이 부셔 눈을 떴더니! 웬걸 여관방에 혼자 남아 있았다.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나가보니 ㅁ자로 된 마당 한 귀퉁이에 여관에서 일보는 듯한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어머, 무슨 일이지요? 다들 어디 갔죠?

무슨 일이긴. 어디긴 어디야, 토함산에 다들 올라갔지. 학생이 늦잠 자서 못 따라간 거잖아.

      

황망해하고 있던 차에, 그제서야 친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만 두고 갈 수가 있냐고 했더니,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그냥 두고 갈 수밖에 없었노라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일찍 자야 한 두시고 보통 서 너시에 잠을 잔다. 습관이 되어 도대체 바꿀 수가 없다. 게다가 넷플릭스로 영어 공부하는 모임에 들어갔다가 더 늦어졌다. 퇴근 후에 편안하게 굿 플레이스 보다 보면 에피소드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내쳐 보게 된다. 넷플릭스 폐인이 돼가고 있어 영어공부는 일단 잠정적으로 보류해 놨다.      

습관은 몸이 기억을 해놔서 이렇게 안 하면 왠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밤늦도록 뭐든지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마 나의 무의식에는 “낮에 열심히 일한 당신 밤에는 당신을 위한 시간을 쓰세요” 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습관은 이처럼 몸에만 있는 게 아닌 가 보다. 감정에도 습관이 자리 잡고 있단다. 정신과 전문의 박용철이 쓴 『감정은 습관이다』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뇌의 원리: 무의식적으로 뇌는 나에게 이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소에 유지했던 익숙한 상태를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다. 

 이런 뇌의 원리는 왜 생겨난 것일까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최대 목표였던 원시인 뇌의 작동 원리가 현대인의 머릿속에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위협과 위험 속에 지내야 했던 원시 인류에게는 ‘웰빙’이라든지 ‘삶의 질’ 따위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만 고민하던 뇌는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웬만하면 바꾸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략 -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택합니다. 
이런 식으로 뇌 안에 굳어진 익숙함들이 바로 ‘습관’입니다.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다는 것만으로도 뇌 안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감정은 습관이다』, 18쪽     


습관의 힘은 강력한 한데 그 이유가 뇌가 새로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기존의 습관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려고 해 습관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단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 남성들이 담배 끊기가 어려웠나 보다.      


뇌는 유쾌하고 행복한 감정이라고 해서 더 좋아하지 않는다. 유쾌한 감정이건 불쾌한 감정이건 익숙한 감정을 선호한다.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일지라도 그것이 익숙하다면, 뇌는 그것을 느낄 때 안심한다.
-『감정은 습관이다』, 18쪽     


어쩌면 우리는 책에 소개된 사례처럼 불안을 찾아 헤매는 마음속의 하이에나를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잘 되고, 행복한 데도, 혹시 올지 모르는 불행을 소급해서 미리 걱정한다. 그런데 그 걱정도 뇌가 해결할 수 있는 건 4%에 지나지 않는단다. 나머지 96%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건데 그 걸 갖고 우리는 고민하고 갈등하며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감사 일기 보다 더 필요한 감정 수첩    

 

행복보다 불행이 편한 사람들이 되지 않으려면 ‘감정 수첩’을 마련해 좋은 감정이 들 때마다 적어놓으라고 저자는 권한다. 한 번 한 번의 긍정적인 일이나 감정을 놓치지 않고 불씨를 키워나가라고 주문한다. 뇌가 긍정적인 감정에 익숙해지도 록 하라고 독려한다.      


긍정적인 감정에 성공한 사례라면 단연 리우 올림픽의 펜싱 금메달 박상영 선수를 들 수 있다. 승부를 뒤집기에 늦었다고 생각한 그때,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할 수 있다”의 외침엔 그는 반응한다. 그 외침에  끄덕이는 박상영 선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튜브를 볼 때마다 뭉클함이 가시지 않는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되뇌더니 정말 금메달을 안겨줘 국민들을 열광케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x9eIPsSP0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은 이처럼 큰 변화를 이뤄낸다. 할 수 있겠다는 긍정의 마인드와 그 감정을 놓치지 않고 실천한 박상영 선수의 모습을 보며 마음과 감정을 잘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더 긴요한 일임을 믿게 된다.  

       

감사 일기 쓰는 모임은 많아도 이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의 감정을 써내는 ‘감정 일기’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퉁쳐서 ‘불안’으로 대표성을 만들지 말고 외로움, 헛헛함, 두려움, 쓸쓸함, 등 감정을 분리하는 것이 오히려 나의 감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감 신경계가 실제로 안정될 수 있는 방법들을 선택해야 하는 데, 교감신경계는 경쟁의 상황이거나 돌발 상황일 때 흥분한다고 한다. 

스트레스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려면 일단 경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하루하루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놔야 돌발 상황에 맞닥 뜨리지 않게 된다. 그저 밋밋한 일상이지만 환경을 일관되고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재미있게 설명이 되어 있어 이해가 잘 됐다. 신경전달물질은 감정의 맛을 내는 조미료라고 언급하며 자극적이고 짜릿한 쾌감은 도파민을 분출시켜 인공 조미료로 표현했다. 그에 비해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일상의 사는 맛, 만족감, 감사함 등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은 천연조미료로 강조했다.      

스트레스는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교감신경계를 안정시킬 때 부정적인 감정을 소환해 내는 습관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세로토닌을 분비시키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단다.

첫째, 걷기다. 걸으면 뇌에서 세로토닌이 왕성하게 분비되니 가볍게 걷자. 

둘째, 햇빛 쐬기다. 햇빛이 부족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적어져 겨울철과 장마철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 

셋째, 음식 오래 씹기다. 저작 운동을 할 때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천천히 씹어야 되는 이유다. 

넷째, 감사하기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세로토닌을 분비시킨다.

다섯째, 자연과 함께 하기다. 자연의 푸르름을 느낄 때 뇌에서 세로토닌을 만들어 낸다. 

     

걷기 모임을 시작한 지 두 달째다. 햇빛 좋은 날 일터 뒤의 오솔길을, 오늘 하루 건강하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만 보씩 걷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아니면 통화를 하며 즐거이 보내고 있는 나날의 연속이다.      


걱정은 걱정 인형에게     


<걱정은 걱정하는 시간에 몰아서 하기>- 이 부분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을 하루 종일 마음에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해 단번에 걱정하고는 그 시간 지나면 ‘걱정 끝’으로 미뤄두는 것을 했다. 그런데도 그 시간까지 못 기다릴 것 같으면 난 한 술 더 떠서 걱정 인형에다 풀어헤친다.      

 

수학여행 가서도 늦잠 자느라 해돋이를  못 봐 이상한 사람이 된 나는 현재 이곳에서도 이상한 사람이다. 쓸데없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6분 정도만 책을 읽어도 평온하다고 하는데, 종일 책과 함께 하고 있어서인지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일찍이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내 방식대로 이해했다. 소유론 적 삶은 외부 조건에 좌우되는 거라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내려놓은 지 오래다. 존재론 적인 삶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삶이라 생각하니 크게 걱정할 일도 없다는 마음이다.


감정도 습관이고 선택이다

바람이 있다면 평생 무너지지 않을 행복한 감정 습관을 만들어 

지금처럼 매일매일의 삶을 평온하게 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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