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암시하는 불가사의한 환영幻影은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가 없어. 이건 분명해!
신이 고의적으로 우리 엄마를 데려간 거야.” 하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어머니가 점점 쇠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려면 죽음이 우리 자신을 엄습해 오는 느낌을 불가피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죽음이 방에 들어와 잠시 멈춰 섰다가, 우리 곁을 지나쳐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을 뻗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때가 되면 우리들 가운데 먼저 죽는 사람이 있고 나중에 죽는 사람이 있을 뿐,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남아 있는 날들의 글쓰기』, 42쪽
시인들은
자살을 하면 안 돼요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에는
상상력이나 감정이 없는
사람들만 있거든요.
-니키 지오바니의 <시인들>
"모든 내러티브 식의 글쓰기, 아니 어쩌면 모든 글쓰기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승으로 내려가 죽은 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어 하는 욕망-에 의한 것이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죽은 이들과의 협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죽음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글을 쓸 때조차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죽음이란 결국 모든 일의 종국적인 결과이자 모든 이야기의 최종 결말이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날들의 글쓰기』, 193~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