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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04. 2020

클라라 슈만, 인지부조화의 끝판왕

자기 합리화로 마음을 잠재우다

브람스를 총각 귀신으로 만든 클라라   

   

브람스를 평생 총각 귀신으로 살다 가게 한 슈만의 아내 클라라. 그녀는 음악계에서 소송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과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의 혼인 소송은 세간의 이목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아직 미성년자인 클라라는 슈만과 결혼하기 위해 슈만과 함께 1839년 7월 16일 작센 왕국의 라이프치히 항소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소송의 상대는 클라라에게는 아버지이고, 슈만에게는 장차 장인이 될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였다. 잘 나가는 딸이 경제적으로 무능한 데다 사회성까지 떨어지는 슈만과의 결혼을 가만히 두고 볼 부모는 없었다. 비크 교수가 반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버지의 동의 없이 결혼하려면 스물한 살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클라라가 성인이 되려면 1년 2개월이 남은 상태였다. 결혼까지 걸린 소송은 무려 1년 2개월에 달했다.      


슈만과 클라라의 승리! 고작 성인이 되는 날 보다 하루 먼저 결혼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클라라의 재능은 묻히고 말았다. 당시의 클라라는 지금의 아이돌 스타처럼 유명했던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이런 그녀가 연습이라도 할라치면 슈만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작곡에 집중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신경질을 내는 슈만에게 클라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일곱 명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만 힘을 쏟을 수 있을 뿐이었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의 예언대로 이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우울증이 있던 슈만은 결국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강물에 뛰어들었다. 2년 여 동안 정신 병원에 있다가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비통에 젖은 그녀의 곁을 지키는 건 오직 클라라를 뮤즈로 흠모하고 있었던 브람스뿐이었다. 로맨티스트 브람스는 64세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클라라 옆에 있었다.   

    

판단 미숙으로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도 않았고, 파탄에 이르기까지 한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철없던 시절의 자신의 선택과 삶을 어떻게 하든 정당화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선택이 조롱당하지 않도록 똑똑한 클라라 슈만은 우아한 선택을 했다. 남아 있는 생 전체를 슈만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몰두했다. 슈만의 작품은 물론 그와 관련된 편지를 정리하며 지속적으로 슈만을 알리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해설함으로써 그가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되도록 했다.     


클라라 슈만의 흔적을 찾다가 ‘인지부조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인지부조화 이론은『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의 다섯 번째 <마음 잠재우는 법 -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에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심리학계의 돌풍을 몰고 온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아이오와 대학원에서 독일의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의 지도를 받다가, 그와 함께 MIT 대학으로 옮겨 연구를 한 심리학도였다. 1957년 그 유명한 인지부조화 이론을 발표하며 30대에 일약 스타 학자로서 자리를 굳혔다.


사람이 뜨려면 시대운도 있어야 하는데, 페스팅거는 시절운도 따랐다.

페스팅거가 인지부조화 이론을 연구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 종말론을 믿는 광신도를 취재하기 위해 신분을 가장하고 잠입해 관찰했다. 페스팅거를 놀라게 한 것은 종말론의 실패 이후 보여준 광신도들의 태도였다.      


사실 페스팅거가 가장 의아해했던 것은 인류 멸망의 예언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보여준 신자들의 반응이었다. 원래 구원의 계시는 우주인들이 우연을 가장하여 메시지를 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광신도들은 거실 양탄자 바닥에서 발견된 주석 조각을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려면 모든 금속 조각을 제거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여자 신자들은 미친 듯이 상의 속옷에서 고리와 걸쇠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남자 신자들은 거칠게 와이셔츠의 단추를 잡아 뜯었다. 바지에 금속 지퍼가 달린 한 신자는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그 부분을 찢어냈다. 극심한 공포 상태에 빠진 신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암스트롱 의학박사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바짓가랑이 부분을 뜯었다. 뻥 뚫린 그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쌩쌩 들어왔을 것은 분명했다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151~152쪽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종말이 오지 않았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맞닥뜨린 부조화에 100만 가지의 자기 합리화를 했다. 뻔한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못 본 척하고 둘러대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와 행동 또는 두 개의 인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 심리적 불편감을 느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자기 합리화를 선택해  자신의 인지를 변화시킨다.      

  

합리화라는 적     


광신도 사건 이후 페스팅거와 그의 동료들은 다양한 부조화의 사례를 통해 연구에 박차를 더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는 이들이 연구한 인간 정신의 합리화 메커니즘이 규명되어 있다.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 이론의 패러다임을 3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로 믿음/불일치 패러다임이다.

종교 집단의 방어기제는 믿음이 확실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종말론이 실패했을 때 자신들의 기도 덕에 구원받은 것으로 합리화한다.


두 번째로 불충분한 보상 패러다임이다.

페스팅커는 실험집단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구슬 꿰기와 같은 단순 반복 작업을 한 시간 정도 수행하게 했다. 그런 다음 주최 측 직원이 사고로 오지 못했는데 다음 실험대상자에게 보수를 줄 테니 이 작업이 재미있다는 말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1달러에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깟 1달러에 거짓말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기에 자신의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행동과 인지 사이의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거짓말을 믿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인지부조화 이론에서는 자기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로 받는 보상이 작을수록 자신의 믿음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브릿지 경제- https://m.post.naver.com/


비근한 예로 한국전쟁 일어날 당시 중국인들이 미국인 포로를 공산주의로 전향시킨 것은 쌀 조금이나 사탕 몇 개에 불과했다. 모진 고문이나 화려한 뇌물도 아니었다. 포로에게 반미적인 글을 쓰게 하고 눈깔사탕 몇 개 정도의 상을 받게 한 게 전부였다. 고작 사탕 하나에 나를 팔았단 말인가?라는 불쾌감이 인지부조화를 가져오게 했다. 미국인 포로들은 그깟 사탕 몇 개에 무릎 꿇은 자신들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더욱 굳건하게 자신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변절을 택했다. 보상에 따라 행동이 강화된다는 기존의 행동주의 학설과 반대되는 현상들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던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때다 싶어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을까?      


세 번째는 유도된 순종 패러다임이다.

신입생 신고식 때 강한 체벌을 받은 학생일수록 굳건한 충성심을 맹세했다.


출처: 비즈조선-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


페스팅거는 실험을 통해 심리학 전체를 혼란스럽게 했고 특히 스키너의 행동주의가 오류임을  증명했다. 페스팅거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임을 믿었다.      

페스팅거는 실험을 통해 인간의 행동은 단순히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의 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단히 적극적인 정신적 활동을 한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스키너가 인지부조화 이론을 발표할 당시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적절한 조건 하에서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정하는 동인을 형성한다. ”   
   

인지부조화가 일어났을 때 클라라 슈만처럼 태도 전환을 하고 자신의 선택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의 태도와 일치하는 행동만을 하려는 것을 ‘자기확증편향’이라고 하는데 클라라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명실공히 클라라 슈만은 인지부조화의 끝판왕으로 등극했다.


그나저나 브람스만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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