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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y 13. 2020

빡침이 근성으로 연결된 브루스
알렉산더의 “쥐 공원”

중독! 약물의 문제인가 환경의 문제인가

사람을 독하게 만드는 중독     


우리 가족의 친구 중에 그 좋아하던 담배를 끊은 사람이 있었다. 수십 년 가까이 즐겨 피던 담배를 그것도 야멸차게 딱 끊어버렸다. 부부 모임으로 등산 중이었다. 사람 좋은 석진 씨가 말했다. 

“현수 걔는 어려서부터 독하더니 한 순간에 담배를 싹 끊어 버렸어.  어휴 어떻게 그렇게 하지. 현수 걔가 독하기는 해.”  

듣고 있던 석진 씨 아내가 자기 남편을 한심한 듯 째려보더니 

“나는 담배 끊지 않는 인간이 더 독한 거 같더라. 금연 운동을 하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 설 자리가 없도록 사회에서 불이익을 주는 데도 안 끊잖아. 못 끊는 게 아니라. 사람이 독해 빠져서 안 끊는 거지.”

석진 씨 부부의 설전에 분위기가 갑자기 냉랭해졌다.     

 

사람을 독하게 만드는 '중독'


담배를 못 끊는 건지 안 끊은 건지는 몰라도 흡연하는 남성들은 담배를 끊어보려고 한 번쯤은 시도를 해본 경험이 있을 줄 안다. 개중에는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 우리 가족도 흡연 중이어요. 쯧쯧) 중독으로 끊지를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담배 못 끊은 사람들도 중독이 돼서 못 끊는다고 토로할 정도니까 말이다. 중독은 부정적이 측면이 많기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한다. 

     

‘중독’이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긴 한가보다. 세상을 놀라게 한 20세기의 심리 실험 10가지를 다룬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의 일곱 번째 실험에서도 ‘중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약물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아편은 “인생의 신성한 닻, 기쁨의 식물, 천국의 우유”라고 불려 왔다.

양귀비 씨가 그득한 가느다란 줄기에서 재배되는 물질인 아편은 19세기 영국의 유모들이 발작을 일으키는 갓난아기를 달래는 데 썼다고 한다. 안개 낀 런던 거리에서 ‘아기를 달래는 약’또는 ‘윈슬로 부인의 진정 시럽’이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갔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따르면 아기들에게 이 시럽을 먹이면 5분이면 잠들었단다. 하류층 노동자들이 맞벌이를 하던 19세기~20세기 초 미국과 유럽의 각 가정에는 꼭 있어야 하는 가정상비약으로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시럽을 구하기 위해 먼 지역의 약국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위풍당당 행진곡’, ‘사랑의 인사’ 등을 작곡한 영국의 에드워드 엘가까지 “윈슬로 부인의 진정 시럽”이란 곡을 헌정할 정도였다. 시럽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은 윈슬로 부인은 급기야는 ‘어머니의 친구’, ‘고통의 해방자’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젖니 때문에 아파하는 손자를 위해 만든 이 시럽은 아편과 모르핀으로 만들어져 있어 실제로 치사량을 넘긴 아이들은 사망하기도 했다. 미 정부에 의해 판매가 금지될 때까지 절찬리에 판매됐다. 

    

사람이 죽을 정도로 사회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중독은 이미 1950년대부터 약물 중독의 생리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들이 있어 왔다. 더 나아가 중독의 본질에 관해서는 1960년대와 70년대 과학자들의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졌다.   

    

출처: 나무 위키-윈슬로 부인의 진정 시럽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인간이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되면 헤어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심리학자와 약리학자들은 약물이 화학성을 띤 전극처럼 정중 전뇌 관속을 자극해 약을 점점 더 갈구하게 만든다고 봤다.      

『스키너의 심리 상자 열기』에는 60~70년대를 이끈 이들 심리학자와 약리학자들의 주장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이들에 의하면 뇌에는 아편과 비슷한 체내 자연 진통제 엔도르핀이 만들어지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세로토닌 또한 생성된단다. 이 두 물질은 편안함과 이성을 가져다주기에 인체 자동 장치에 맡겨놓으면 몸에서 작고 좋은 것들이 만들어져 우리 몸에 적정 수준으로 흐르게 된다. 하지만 마약이나 코카인 같은 약물이 유입되어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더 이상 체내에서 천연 약물은 생산되지 않는다. 바깥에서 제공되는 물질에만 의존하게 되어 얼마 안 있어 고갈 상태에 빠지게 된다. 


뇌는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엔도르핀이나 도파민 세로토닌의 생산을 멈추고 외부에서 공급된 합성 물질에 적응하게 된다.  ‘신경 적응 모델 neuroadaptive model'이라고 명명된 이것은 약물로 인해 더욱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우리 몸의 항상성 시스템이 붕괴되어 오히려 약에 적응이 되어, 약물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약물에 의존하게 된 뇌는 공급이 끊길 경우 금단현상을 겪게 되어 다시 약물을 찾게 되고 결국은 중독에 빠지게 된다.당시에는 이와 같은 이론이 정설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변방에 우짖는 새, 브루스 알렉산더     



당시 주류 심리학자들은 “접근 가능성은 노출을 증가시키고, 노출은 중독을 증가 시킨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바로 브루스 알렉산더(Bruce K. Alexander)이다.

      

노출이 중독을 증가시킨다면 “마약을 접한 모든 사람들이 중독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 캐나다는 마약을 구하기 쉬운 환경이었는데도 마약 경험 자수에 비해 중독자는 훨씬 적었다. 베트남 참전 용사들도 전쟁 중에 헤로인과 같은 마약을 했지만 귀국 후에는 90%가 헤로인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병으로 모르핀을 투여받았던 환자들 대부분 퇴원 후 모르핀을 하지 않았다. 약물을 하지 않아도 될 환경이면 사람들은 약물을 선택하지 않았다. 

    

주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중독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약물의 약리적 문제가 아니라 냉정한 사회의 복잡한 조직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브루스 알렉산더는 탄저병이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화학 물질이 중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약 내의 성분 때문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영향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환경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환경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데는 그의 경험도 한몫했다. 스스로 급진적인 성향이어서 미국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라 판단한 브루스 알렉산더는 캐나다의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에서 조교수로 채용됐다. 헤로인 중독에 관한 과목을 맡게 된 그는 밴쿠버의 마약 진료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약물 중독이 비단 약리적 문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담 중에 만난 헤로인 중독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불평불만을 일삼았는데, 이들은 빈민가에 거주하며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 환자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 남자는 크리스마스 때 쇼핑몰에서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헤로인을 복용하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약으로 흥분이 되어야만 빨간 산타클로스 복장과 검은 비닐 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가 여섯 시간 연속 웃을 수 있었지요. 그때부터 저는 오늘날의 약물 남용에 관한 이론이 잘못되었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약리적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힘든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 『스키너의 심리 상자 열기』, 207~208쪽      


그의 파격적인 생각은 당시의 이론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날의 이론과도 대립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캐나다라는 변방에서 주류들의 비난을 하나하나 실험을 통해 반박했다. 


“행복한 쥐 실험”이라고 명명된 “쥐 공원 실험 Rat park experiment”을 통해서 어떤 약물도 ‘본질적으로 중독성이 없다’고 천명한다. 쥐 공원은 비좁은 우리 대신 자유롭게 다닐 200 제곱피트 크기의 공간에 알맞은 온도와 맛있는 치즈와 바퀴, 양철, 캔 같은 놀잇감을 준비해 동료 쥐들과 놀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실험군의 쥐들은 모르핀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다. 그에 비해 대조군의 좁은 우리에 있는 쥐들은 16배 이상 모르핀 음료수를 마셨다. 이 실험을 통해 브루스 알렉산더 교수가 그간의 품어왔던 의문을 해소하게 된다. 중독은 약물에 의해 신체가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중독자가 처한 주변 환경에 의해 중독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멘탈 갑의 에이스, 브루스 알렉산더 교수      


브루스 알렉산더 교수는 주류 학자들의 무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회적 명성은커녕 가정적으로도 불행했다. 냉담하는 주류 학자들에게 화날만한데도 빡침을 근성으로 지켜냈다. 뿐만 아니라 묵묵히 학문적 성과로 대응해 나갔다. 2번의 결혼 실패의 경험이 있었어도 지도 교수인 할로 교수처럼 우울증이나 약물 중독에 빠지지 않았다.    

  

쥐 공원의 홍보 실패로 브루스 알렉산더 교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연구 기금을 회수해 갔을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플라톤의 작품을 읽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물 권리 운동가들과 연대해 대학이 환기 장치의 부실을 근거로 실험실 전체를 폐쇄시켜 버렸다. 몇 달 후 부실한 환기 장치 그대로 학생 상담실 명목으로 쓸 때도 그는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게다가 중독자 개인에게 문제를 돌리지 않는 따뜻함마저 보여줬다. 오히려 부정적인 환경이 중독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어 사회 복지에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그는 역사 쪽으로도 눈을 돌려 중독 현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가 많았음에 흥미를 갖고 연구를 했다. 주류 학자들의 주장처럼 마약 중독자가 증가하는 것은 구입할 문턱이 낮아져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혼란 때문으로 봤다. 경제적 필요에 따라 해고가 자유롭고, 인간을 상품으로 취급하기에 우리에 갇힌 쥐들처럼 마약이라는 대용품을 찾게 된다고 꼬집었다. 대용품 자체가 유혹적이라기보다는 환경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문화의 근간을 형성하는 유산과 믿음을 전달할 때 정신 병리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스키너의 심리 상자 열기』226쪽 중    


브루스 알렉산더 교수는 쥐 공원에 대한 사람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도 오래 실망하지 않고 더 활기차게 연구에 뛰어들었다. 중독자들에게 위엄 있는 죽음을 맞도록 한 위원회에 참석할 정도로 약물 중독자를 위해 공헌을 했다. 

변방에 있어도 스러지지 않고 자신의 연구해 몰두했다.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을 정도로 멘탈갑으로 살아냈음은 물론이다. 그는 완벽하게 조성된 쥐 공원이 인간 세상에도 있을 수 있다고 믿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자신을 올곧게 지켜내고 있는 예순 줄에 접어든 브루스 알렉산더 박사! 

주류 학자들과의 논쟁에 세 번의 실험으로 심리학계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것처럼 세 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의미 있게, 더불어 행복하게 쭈욱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http://mn.kbs.co.kr/mobil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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