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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n 04. 2020

Yes를 이끌어내는 일, 협상

『협상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에 대한 단상

뜻하지 않은 손님이 왔다


아기 고양이 냥이가 하룻밤 머무르려고 왔다. 한 달도 안 된 새끼 고양인데 자그마치 충청도 예산에서 서울까지 자동차에 매달려서 왔다. 고3 선우 어머니께서 토요일 친정엘 다녀왔는데, 호기심 많은 아기 냥이가 자동차 엔진의 빈 공간에 들어갔다가 딸려온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해 위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에 있는 차가 삐뚜름하게 대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단다. 선우 아버님께서 차를 똑바로 대려고 내려갔더니, 아뿔싸 사람들이 웅성 웅성 모여있더란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서 119를 부르고 그 난리통에 어찌어찌해서 냥이를 유인해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자기 딸내미 본 듯 아기 냥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주민에게 고양이 주인이라는 사진을 증명하고 냥이를 데려오기는 했다. 다른 새끼들이 엄마 옆에 꼭 붙어 있는 것과는 달리 냥이는 외톨이처럼 혼자 다니고 먹는 것에도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단다. 요리조리 빨빨거리고 다니는 호기심 많은 냥이는 결국 자동차 엔진 박스 있는 곳에 들어가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된 셈이다.      


참고로 냥이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흙바닥에서 뒹굴며 잤다. 선우네 집에 와서도 베란다에서 잤던 냥이었다. 하루만 맡기로 한 냥이는 밤이 되자 교실 한 귀퉁이에 깊이 잠이 드셨다. 집으로 데리고 갈까 하다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는 순간 어느 틈에 따라와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처연히 울기 시작했다. 매몰차게 문을 쓰윽 밀고 나오려는데 한 발로 문을 잡고 본격적으로 야옹거렸다.     

 

한숨을 내쉬고는 들려온 쇼핑백 그대로 사료랑 모래랑 다 넣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가족이 깜짝 놀라며 이제 내가 하다 하다 고양이 뒤치다꺼리까지 하게 생겼다고 지청구를 했다. 딱 오늘만이라고 내일 아침이면 선우네로 돌아갈 거라고 설득을 했다.      



'요다'의 매력에 푹 빠지다


냥이의 머리통은 내 손의 3분의 1만큼 자그마했는데 그 작은 얼굴에 눈과 코와 입이 오목조목 들어앉아 있었다. 정말로 오묘했다. 한 달도 안 된 아기 고양이라 그런지 이빨도 아주 작고 뾰족했다. 냥이는 눈도 예뻤다. 황금빛 색채를 띤 옅은 갈색 눈동자에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 냥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상냥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냥이는 사랑받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우려했던 거와는 달리 아기 냥이가 너무 귀여워 가족들이 서로 안고 들여다보며 좋아라 했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냥이에게 이름을 ‘요다(Yoda)’라고 지어줬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에 나오는 주인공 제다이의 정신적 스승처럼 세상을 강하게 헤쳐 나가라는 뜻에서 붙여줬다.  

 귀여운 냥이를 학원에 데리고 오자 난리가 났다. 서로 무릎에 앉히고 잠든 냥이를 동영상으로 촬영을 하고 교실에는 때아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함박꽃이 만발했다. 특히 수의사가 꿈인 민영이는 요다를 엄청 잘 다뤄서 민영이 무릎에서 자고 먹고 내려오지를 않았다. 시골에서 자랐다는 요다는 서울 물을 먹자마자 바로 부드러운 타월이나 침대 아니면 자려고 들지를 않았다. 순식간에 공주님 모드로 태도 전환을 해버렸다.    

  


요다에게 푹 빠진 민영이가 엄마랑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고 있다가 웬만하시면 요다를 입양하시지요 했더니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울 수가 없단다. 이때부터 민영이가 발군의 협상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엄마, 제발 하루만이요. 제 방에서 잠만 재우고 아침이 되면 바로 학원으로 다시 보낼게요.

     

민영이가 간절히 애원을 했다.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때로는 감정에 호소하며 장시간 조르고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민영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충대충 뭐든지 빨리 해치우는 그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치밀하게 때로는 은근하게 엄마를 설득하고 있었다.      


엄마가 알레르기도 있고 네 동생 민혁이도 알레르기가 심해서 안 되잖아.
거기서만 실컷 보고 와. 집으로 고양이 데려와선 안 돼!     

엄마의 단호한 태도에 민영이가 한발 물러섰다.

늦게까지 냥이 요다를 안고 있던 민영이가 냥이를 보며 정말 데려가고 싶다면서 축축한 눈길을 보냈다.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어젯밤에는 일단 백기를 들고 집으로 갔다. 민영이와 엄마와의 협상은 결렬됐다.      



『협상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에서 좋은 협상안이란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안”이라고 말한다. 협상교육 전문가인 오명호 작가는 지금이 바로 “협상의 시대”임을 천명하며 ‘일잘러를 위한 10가지 협상의 기술’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바탕으로 조곤조곤 설명하고 있다.            

              


“일잘러를 위한 10가지 협상의 기술” 네 번째인 “상대가 51대 49로 이겼다고 생각하게 하라”에는 최후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의 차이에 대해 언급한다. 이 둘의 차이는 ‘힘의 균형’에 있는데, 협상은 힘의 균형이 존재해야 가능하단다. 독재자 게임이 일방적 통로로 끝난다면 최후통첩 게임은 상대의 제안을 견제할 수 있는 거부권이 있다. 여기서의 ‘균형’이란  같은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제안에 영향을 미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라이프>로 들여다 보는 '최후통첩 게임'



힘의 균형과 관련해서 종영된 의학 드라마 <라이프>가 생각났다. 비의료인 출신의 신임 총괄 사장 구승효와 건강보험심사평가 위원회 심사위원인 정형 전문의 예선우의 협상 전략은 힘의 균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당차게 해결한 화정 그룹의 사장 구승효가 상국대 병원 사장으로 부임해 온다. 부원장 김태상의 대리 수술 제보가 들어와 심평원의 예선우가 그 내막을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구승효 사장은 예선우와 협상을 벌인다.     

 

구승효: 내가 보니까 심평원도 꽤 유통성이 있더라고요. 환자 건강 정보 보험사에 수수료 받고 넘기셨다고. 학술 연구용이 아니라도 상관없이.
예선우: 이번엔 어떤 융통성을 기대하시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구승효: 김태상 부원장 기사는 좀 자제합시다
예선우: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구승효: 조용히 처리할 수는 있지요. 엠바고를 청하는 거지 무마해 달라는 거 아니에요
예선우: 보고를 해야 하는 데요
- 의학 드라마 <라이프> , 9화 중에서


대리 수술이 근본적으로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대가가 혹독하지 않아서라고 열변하는 예선우에게 구승효는 전장의 전략가답게 협상을 한다. 예선우에게 사법처리는 대리 진료를 한 부원장 김태상이 상국대 병원에서 떨어져 나간 다음에 그때 엠바고를 하자고 청한다.


예선우 또한 구승효 사장에게 “밀고가 아니라 동료를 배신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여기에는 윗사람들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최후통첩 게임 Ultimatum Game을 이용해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협상을 이끌어낸다.

      

지난밤 냥이 문제로 뒤로 물러섰던 민영이가 엄마한테 새로운 딜을 했다.

협상의 기술 아홉 번째인 ‘요구가 아니라 진짜 이유를 찾아내라’ 편에 나타난 ‘요구’와 ‘욕구’를 정확히 구분해서 엄마랑 재협상을 했다.    



요구 position과 욕구 interest를 구분하라


갈등 해결을 위한 협상의 기술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의 요구 position과 욕구 interest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협상 용어로 포지션은 겉으로 드러내는 요구사항을 말합니다. 인터레스트는 속에 있는 진짜 이유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 『협상이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155쪽     




민영이는 엄마의 요구를 분명히 알고는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있다가 ‘요다’를 데리고 가서는  ‘요다’랑 자기 방에만 있겠노라고 했다.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갈 거니까 엄마 알레르기에는 일도 영향이 없을 거라고, 또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학원에 갖다 놓을 거니까 엄마나 민혁이한테도 전혀 아무런 해가 안 갈 거라고 나지막하지만 힘주어 말했다.    

  

민영이 어머니의 ‘요구’는 알레르기도 알레르기지만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민영이가 고양이에만 정신이 팔려 공부에는 신경을 안 쓸까 봐 하는 것이 속에 있는 진짜 ‘욕구’였다.

재빨리 엄마의 뜻을 간파한 민영이는 또다시 협상을 했다. 엄마의 진짜 이유인 ‘공부’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엄마! 8월에 논술대회하는 거 오늘 한 편 쓰고, 수학 숙제 다하고 여기서 국어 공부도 더 하고 갈 거야. 그러면 됐지!    
 

전화기 너머로 “알았어, 알았어~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민영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제고를 가려면 생기부가 알차게 준비되어야 하기에 8월의 논술대회에서의 수상은 의미가 꽤 컸다. 아마도 민영이의 논술 한 편 쓰겠다는 말이 크게 민영이 어머니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듯했다.      


민영이는  한쪽 팔에는 '요다'를 안고 얼굴에는 미소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언뜻 보기에는 민영이만 승리한 듯 보이지만 이 협상에서는 민영이와 민영이 어머니 모두 승리했다. 엄마의 속뜻인 ‘인터레스트’를 알고 대처한 민영이나 계획대로 민영이가 공부할 수 있도록 협상한 민영이 어머니나 양쪽 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상대의 요구 position과 욕구 interest를 정확히 구분하고 대비를 한 결과였다

.      

“협상이란 양측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합의하는 일”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쪽이 이기는 것이 아닌 윈윈 전략으로서 “‘상대방’에게 ‘yes’를 이끌어 내는 일”이라는 말이 유효한 까닭이다.



# 이 글은 독서모임성장판 활동으로 애드앤미디어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읽고 썼습니다.

  본 글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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