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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n 01. 2020

일상의 다른 이름, 해빗

하는 것, 해 내는 것만이 힘이다

공부, 사랑해 마지않는 너에게     


공부, 사랑해 마지 않는 너에게 연서를 쓴다.

사모할지언정 공부, 넌 특별하지 않지. 비범한 능력이 필요할 만큼 대단하지도 않구. 

물론 방법적인 측면에서 읽기의 기술이 갖춰진다면 공부, 너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긴 하지. 

     

가르치다 보면 느껴지고 알아지는 것이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가 딱 구분이 된다. 학교 성적이 소박한 친구들은 공부하기 전의 워밍업 시간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화증머리가 날 정도로 길다. 공부로 바로 진입하기 보다는 원대한 계획부터 세운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서 시간표를 짠다. 도자기를 빚듯 계획표 짜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장인이 따로 없다.  

   

오늘도 순둥순둥한 예지는 자기의 학습능력을 과신하고 분에 넘치는 계획을 세웠다. 도저히 예지가 지켜낼 수 있는 시간표가 아니었다.      


예지! 고정시간과 네가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보고 정했어야지. 이거 너무 빡빡하게 짠 거 같는데. 

예지야 계획을 세울 때는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네가 할 수 있는 걸 계획해야 돼.


듣고 있던 예지가 살짝 눈을 흘기며 말한다.  

    

쌤 걱정하지 마세요. 저 다 잘할 수 있거든요. 저를 뭘로 보고 그러세요. 저 할 수 있다구요. 


정색하며 날을 세운다.    

 

아이구 이 사람아, 오늘 하루만 공부하고 말 게 아닌데. 이렇게 과도하게 짜면 지속하기가 버겁지. 그래서 하는 말이야.      


잘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에 반신반의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바로 가방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더니 겸연쩍은 듯 말한다.


최고의 시간표를 짜느라 에너지를 다 쏟았나봐요. 오늘 쫌 피곤하네요, 호호호. 내일부터 계획표대로 하면 되지요. 내일부턴 할 거예요. 진짜라니까요.  


뜨악해서 쳐다보니 


쌤 인생 너무 빡빡하게 사시는 거 아녜요. 그렇게 사시면 아니 되옵니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거든요. 인생사 새옹지마라구요 하면서 가버린다.      


예지와 달리 유전공학을 전공해 교수의 꿈을 갖고 있는 혜원이의 공부 습관은 다르다. 오면 포스트 잇에 오늘 공부할 것을 두 세 개 써놓고 바로 공부에 들어간다. 누구 말마따나 찍소리도 안하고 공부만 한다. 오죽하면 엉덩이 가벼운 친구들을 혜원이 공부하는 독서실 교실에 앉혀놓았을까. 그에 비해 성적이 겸손한 친구들은 우선 오면 폰부터 만지작 거리며 연예인처럼 스케쥴관리부터 한다. 스마트폰과 한몸이 되어서 한동안 검색하고 문자 보내고 하다가 정신이 드는지 그제서야 책을 꺼낸다. 꺼내놓고도 바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이 어지럽혀져있네, 책표지가 지저분하네 하면서 책상 정리하고 물 마시러 나가고 화장실 다녀 오시고 하면서 몇 십분을 휑하니 날려보낸다. 말 그대로 예열시간이 길다.    


두 아이가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공부 습관이 안 들어서 그렇다. 공부도 공부 방법이나 지식을 이론으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빛을 발한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잘할 수 없다. 습관이 몸에 착 붙어야 한다. 

공부, 다이어트, 연애는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실제는 다르지 않던가.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해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는 것, 해내는 것만이 힘이다.      

바야흐로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는 애저녁에 지나가 버렸다. 하는 것만이 힘이 되고 그것만이 나를 살린다.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습관이 들어야 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라     


습관의 아이콘인 『해빗』의 저자 웬디 우드는 말한다. 비의식적 자아인 습관이 체화되려면 “우리가 더 이상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지 않을 때까지”해야 한다고.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호피 인디언들의 기우제 성공률은 100%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것을 목격한 호피족들은 기우제의 효험으로 비가 왔다고 믿음을 갖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습관을 일상에 뿌리내리게 하려면 자동화된 반복으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해야한다. 저자는 “마법이 시작될 때까지 반복하라”고 우리에게 주문한다. 


『해빗』의 2부에서는 습관이 어떻게 일상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지 5가지 습관 설계법칙에 대해 거론한다.

     

습관 설계 법칙 1: 나를 중심으로 상황을 재배열하라
습관 설계 법칙 2: 적절한 곳에 마찰력을 배치하라
습관 설계 법칙 3: 나만의 신호를 발견하라
습관 설계 법칙 4: 행동과 보상을 긴밀히 연결하라
습관 설계 법칙 5: 마법이 시작될 때까지 반복하라     


Near Miss “거의 딸 뻔했는데!”     


『해빗』에 따르면 놀랍게도 우리 삶의 43%가 습관으로 이뤄졌단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나를 중심으로 상황을 재배열해야 한다. 우선 환경을 바꿔 삶을 쉽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헛된 만용으로 자신의 의지력을 시험해 저항하기 보다는 방해 요소를 줄이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습관 법칙 4에 해당하는 행동과 보상을 긴밀히 연결하라에서는 실험용 쥐나 플레이어들이 불확실한 보상에 매달리는 상황을 보여준다. 카지노 수익은 슬롯머신과 비디오 포커에서 70%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거기에 ‘니어미스Near Miss’ 전략이 가동됐다. 이들 기계는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가도록 원래의 확률보다 더 높게 프로그래밍 됐다. 플레이어들의 도파민을 사망 직전까지 분출시키도록 고안됐기에 중독이 습관으로 자리잡게 됐다. ‘니어미스’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왜 아니겠는가? 플레이어들은 손에 잡힐 듯 거의 딸 뻔한 수익에 애간장을 태웠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그 승률이 맴돌지 않았을까. 돈만 쬐끔 손에 쥐어도 카지노로 쪼르르 달려갔지 싶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고 부르는 게임화 전략은 바로 이러한 보상의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비디오 게임이 불확실한 보상을 체계화해 플레이어를 붙잡는다. 중독은 습관의 다양한 얼굴 중 하나다.     

 -『해빗』, 208쪽


불확실한 보상이 오히려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습관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어쩌다 걸린 간헐성 정보 때문에 검색에 많은 시간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뇌는 언제 걸려들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법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히 시작된다. 그러니 언젠가는 마법이 일어난다는 걸 믿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신경 네트워크와 기억 시스템에 습관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한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그 반복은 습관을 낳고 우리의 제2의 천성이 되는 것이다. 

- 『해빗』, 214쪽    


이 책을 읽으면서 희망적인 것은 몰아붙이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복을 통해 좋은 습관이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새로운 행동을 꾸준히 실천해야 되는 것은 맞지만 반복만이 정답이라고 몰아붙이지 말라고 해서 안심이 됐다. (어쩌면 이래서 아직까지도 야식과 넷플릭스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식에 매여 있는 인생의 일부는 반복으로 만들어진 습관에 맡기고, 그렇게 얻은 여유는 정말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투입”하라고 다정스레 말한다. 아 ~ 웬디 우드 교수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습관은 “나무 껍질에 새겨놓은 문자 같아서 그 나무가 자라남에 따라 확대된다”고 일찍이 『자조론』의 저자 새뮤얼 스마일스가 간파한 바 있다. 

나쁜 습관은 나쁜 습관대로 좋은 습관은 좋은 습관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장될 것이다. 


일상의 일란성 쌍둥이인 해빗은 존 드라이든의 말처럼 “우리가 습관을 만들면 그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이러한 사실을 몸에, 의식에 새겨놓을 일이다.      

몰아붙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하는 해빗, 그것만이 자신에게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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