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고 사교성 좋은 중3 혜지는 늘 해피하다.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이 시끌벅적 부산스럽기만 하다. 코로나로 ‘비대면’ 사회가 됐다고 다른 이들은 사람들을 못 만나고 있지만, 혜지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생파(생일 파티)에 자율동아리를 핑계 삼아 하는 대외활동으로 공사다망하다.
혜지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할 계획이 있어 혜지 어머니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습관이 된 친구들만 그 학교에서 버텨낼 것이기에 학원으로 과외로 돌리고 있는 혜지 어머니에게 느는 건 한숨뿐이다. 이번에 자기 주도 학습 반에 큰 맘먹고 시작을 했다.
학원에서 자기 주도 학습을 한다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이지 않을진 몰라도 스스로 학습할 수 있을 때까지만 공부법을 가르쳐 주고 계획을 짜주고 관리를 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이다. 자기 주도 학습사 자격을 갖춘 교사가 코칭을 하니 학습 면이나 다른 습관까지도 좋아져서 꽤 오랜 기간 자기 주도 학습 반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함께 세운 계획표에 따라 이틀째 하고 있는데, 혜지 답지 않게 근엄한(?) 얼굴로 열공 중이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혜지한테
“혜지, 공부해보니까 어때? 오늘 너 자신에게 몇 점 주고 싶어” 했더니 “78점”이란다.
“아니 왜? 열심히 했잖아?” 정색하며 물으니
“아니요, 쫌 일찍 와야겠어요. 오늘 낮에 유튜브 보느라 시간을 많이 썼더니 좀 아쉬워요.”한다.
“과학을 계획대로 하긴 했는데, 범위가 넓어서 좀 더 많이 나가도록 계획표를 짰어야만 했어요. 내일은 일찍 와서 더 많이 하려구요.”
“그래 그렇게 문제의식을 갖고 하면 좋지. 그런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야. 오, 혜지! 눈빛이 살아있어. 이번 시험 기대된다, 야.” 그렇게 말하고 보냈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혼자서 공부해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해보니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었다. 혜지와 같이 내적인 동기만 생겨도 반은 성공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우울증도 스스로 치료를 하려면 자립하기 전까지는 치료사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우울증을 자가 치료할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책이 바로 『필링 굿』이다. 이 책에는 우울증을 자기 주도적으로 인지 치료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매뉴얼이 장착되어 있다. 혜지처럼 자기 주도할 수 있도록 교사의 도움을 받아서 공부하듯이 우울증도 『필링 굿』을 조력자 삼아, 알려주는 대로 하다 보면 충분히 스스로 치료가 가능하다.
『필링 굿』에 대한 세 번째 글로써 기분을 다스리는 실전 기법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우울증은 분노 죄의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고통을 안겨준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에는 반드시 심각한 인지 왜곡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불쾌한 기분은 바로 부정적으로 왜곡된 생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언제 일어나는가? 책에 따르면 살아가면서 느끼는 분노의 대부분은 “개인의 소망과 일반 도덕률을 혼동”할 때 일어난단다. 분노의 원인은 상당 부분 부당하고 불공평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분노했을 때 일어나는 인지 왜곡에는 상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낙인찍기’와 멋대로 자신에 대해 상대가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독심술의 오류’와 한 번의 실수로 내 인생이 파국적으로 끝장날 거라는 ‘침소봉대’와 ‘꼭 해야 한다, 또는 하지 말아야 한다’ 식의 부적절한 사고가 있다.
펄펄 끓는 생각을 식히기 위해 활용하는 두 칸 기법은 “격앙된 생각과 이성적 생각”으로 나누어 분노를 줄이는 기술이다.
이렇게 ‘격앙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적어보고 화가 좀 진정됐으면 좀 더 객관적인 ‘이성적 생각’으로 기록한다. 기록하는 동안 기분 상했던 마음이 진정되고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된다. 기록함으로써 듫끓어올라왔던 생각에 덜 휘둘리도록 도움을 준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방식이다.
무어 리 식 투덜이 대처법
죄의식은 자기 스스로 나쁜 사람이라는 확신을 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죄의식으로 몰고 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필링 굿』에서 소개하는 ‘죄의식의 악순환’을 보자.
신경과 의학도인 한 여성은 공부를 미루는 자신의 지연행동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 자신은 나쁜 사람이기에 벌 받아 마땅하다는 확신을 강화하게 되고 그 결과 문제 해결 의지를 갉아먹게 된다.
죄책감을 없애고 자기 존중감을 키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무어리 식 투덜이 대처법”이 아주 요긴할 듯하다. 의대생인 스털링 무어리가 불평꾼 대처법을 발전시켜 내놓은 기법이다.
스털링 무어리가 담당한 쉰두 살의 조각가인 해리엇은 마음이 착한 탓에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수다와 개인사를 들어주던 해리엇은 친구들의 문제에 지나친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해리엇에게 스털링 무어리가 알려준 일은 남의 말에서 동의할 점을 찾기, 불만거리 중에서 긍정적인 점을 찾아 지적해 주기 등이었다. 이것들을 활용해 불평꾼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해리엇은 금방 숙지를 했다.
다음은 책에 나온 사례이다.
1. 투덜이: 휴, 도대체 딸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담배를 다시 피울까 봐 겁이 나요.
대답: 요즘 애들이 확실히 담배를 피우긴 하죠. 그런데 따님이 요즘도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고 있지요?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얼마 전에 대단한 상을 받았다면서요?
2. 투덜이: 사장님이 나만 월급을 안 올려줘서 1년 전이랑 같은 봉급을 받고 있어요. 20년 근 속인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답: 맞아요. 이 회사의 초기고 연장자로 정말 엄청난 공헌을 하셨지요. 20년 전 처음 입사했을 때 얘기좀 해주세요.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어요.
3. 투덜이: 남편이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밤마다 그 빌어먹을 볼링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린다니까요.
대답:요즘에는 볼링을 같이 안 하시나요? 실력이 굉장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요?
-『필링 굿』, 273쪽
투덜이 스머프처럼 불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꼭 집어서 말해준다. 이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평하는 이의 주의를 다른 데로 분산시킬 수 있다.이렇게 하지 않고 불평꾼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어 심취해서 듣다 보면 오히려 불평꾼에게 더 많은 불평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나중엔 자기가 느끼는 불평이 00 이도 지지할 만큼의 부당한 거였다며 들어준 ‘상대’를 걸고 넘어갈 수가 있다.
‘무어리 식 투덜이 대처법’은 꼭 우울증 치료만이 아니라 설화 사건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준다. 투덜이들의 문제를 듣다가 잘못하면 말로 인한 화를 입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투덜이들의 관심을 긍정적인 추억이나 다양한 관점으로 돌리게 하는 데 있다.
혜지가 자기 주도 공부법을 배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듯이 우울증 환자들도『필링 굿』을 통해 힘을 얻었으면 한다. 이들이 self care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