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말고 휴직』
한 사람의 성장기를 보는 일은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뛰는 일인가. 그것도 우리와 함께 경험을 공유하고 시간을 나눈 사람이 저자로서 떠억 하니 한 권의 책을 내놨을 때의 경이로움이라니. 물론 오랜 세월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자신을 관리해온 시간을 알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아니 어찌 보면 늦은 감이 있다.
『퇴사 말고 휴직』을 쓴 최호진 작가의 닉네임은 ‘똘똘한 온달’님이다. ‘걷기 모임’에서 아침마다 쓰는 ‘사진 일기’에서,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건자감’ 독서 모임의 리더이면서 구성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의 근황을 가까이 지켜본 사람으로서 도덕과 종교 교육의 청년기를 지나 결혼의 성년기에 이르는 『에밀』의 성년기를 보는 듯해서 한 편으로는 마음 뿌듯하다.
“남편은 10만 부 작가가 된다”를 100일 동안 100번씩 써 내려간 똘똘한 온달 님의 배우자인 평강공주님의 지지로 이렇게 멋진 책이 나왔다.
그날이 그날인 밋밋한 일상에 윤기를 더하기 위해 저자는 휴직을 택한다. ‘똘똘한’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휴직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야심 차게 휴직을 신청해놓고는 많은 시간 흘려보내기 일쑤인데 최호진 작가는 휴직기간을 어영부영 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고, 휴직하기 전에 <자기 혁명 캠프>에 참가해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한 훈련을 했다. 이 캠프에서 변화된 자신이 얼마나 좋았던 지 만일 강사가 헌금을 요청했다면 아마도 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자기 혁명 캠프>에서의 경험을 높이 샀다.
여러모로 휴직의 시작을 자기 혁명 캠프와 함께 한 것은 잘 한 결정이었다.
내 안에 있는 열정을 집중해서 쏟을 수 있었고 그 에너지가 한동안 나를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다.
『퇴사 말고 휴직』, 60쪽
휴직 기간을 혼자 버텨냈으면 지금처럼 알곡 같은 결과물이 이렇게 빨리 나오지는 못했지 싶다. 저자는 휴직 기간의 두 축을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수업과 청울림 작가의 자기 계발 강의로 올곧게 세웠다. 글쓰기 수업은 글을 써보고자 하는 생각이 도화선이 되어 출간까지 하게 됐고, 자기 계발 강의에서는 자신의 습관을 점검하며 비전을 만들 수 있었다.
휴직 기간에 할 수 있는 팁으로 to-do list를 관리하는 것과 미라클 모닝을 꼽았다. 최호진 작가는 매일 하는 것들을 정해 하루키처럼 달리기를 하고 김민식 PD처럼 블로그에 글을 썼다. 한 달 습관 프로젝트를 만들어 하정우처럼 1만 보 이상 걷기, 감사일기 쓰는 모임을 진행도 했다. 똘똘하게 벤치마킹도 잘했다.
자신만의 케렌시아를 만들기 위해 스터디 카페를 자기 오피스로 만들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참 지혜롭게 휴직 기간을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글쓰기 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작업을 하더니 『퇴사 말고 휴직』이라는 옥동자를 탄생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화만 낼 줄 아는 아빠라는 진솔한 고백에서 이미 훌륭한 아빠임을 직감했다. 아내에게 70일간의 휴가를 주기 위해 독박 육아를 선택한 사랑꾼 저자의 좌충우돌 육아기는 많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교육, Education이라는 단어 안에는 라틴어 Ducare(이끈다)라는 동사가 숨어 있다. 앞에 붙은 e는 ‘~로부터 박으로’의 의미이다. 즉, 교육이란 아이의 밖에서 무엇인가를 집어넣은 일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행위다.
-최재정, 『엄마도 학부모는 처음이야』 중
아이의 내재적 자치를 발견하기 위해 캠프도 보내고 아이의 버킷리스트인 ‘뉴욕에서 하고 싶은 것 들’을 이루게 해주는 지혜로운 아빠이기도 하다. 70일의 캐나다 여행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고, 스스로 자신들만의 가치를 잘 발현해내고 아빠 또한 하나씩 발견해 내는 작은 소망을 품기도 한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건도 생기게 되는 데 저자의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여행 간 캐나다에서 큰 아들은 맹장이 터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해외여행하다 제일 무서운 게 병원 가는 일이다. 병원비 많이 나올까 봐 치료하는 내내 불안에 떨게 된다. 저자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을 잘 해냄으로써 병원비를 반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어휴 그나저나 아이 입원도 시키고 병원비도 깎으려면 생존 영어 정도는 필수라는 마음이 든다.
1만 137달러나 되는 입원비를 6,255 달러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질문’의 힘이었다.
질문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생각해보면, 질문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작정 ‘값 좀 깎아 주시면 안 돼요’ 라거나 ‘위약금을 면제해 주시면 안 돼요’라고 묻지 마시길.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호,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중
저자는 아이의 병원비를 깎아달라고 병원 측에 부탁한 것이 아니라 적용받는 금액이 정확한 기준인지 확인했고, 예외조항이 없는지 최대한 겸손하게 물어 목적을 달성했다. 말본새가 좋아야 하는 건 외국이나 한국이나 별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퇴사 말고 휴직』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독박 육아의 감동적인 부분이나 어려움이 있었던 부분보다는 병원비 깎은 게 제일 통쾌했다. 특히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의 배경인 루이스 호수 다녀온 경험은 읽는 내내 부러웠다. 유키 구라모토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레이크 루이스’도 즐겨 듣고 있는 나로서는 엄청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난다. 루이스 호수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이 호수의 경치에 넋을 잃어 네 번째 공주의 이름인 루이스란 이름을 이 호수에 하사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유키 구라모토 역시 이 호수에 영감을 받아 지은 곳이라는 그 ‘루이스 호수’를 다녀왔다니.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본질은 자신의 재능에 어떻게 집중하는가에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그 재능이라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의 핵심임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최호진 작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겨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웠지만 그것이 무산되자 안정적인 금융권에 몸을 담는다. 사람 만나고 말하는 것에 재능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인 저자가 자신의 꿈을 그냥 묻어두진 않았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휴직하기 위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써서 자신의 뜻을, 꿈을 평강공주님께서 보도록 했다. (절대 물밑작업은 아니었음) 마침내 평강공주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공주님의 윤허를 받아내기에 이른다. 남들보다 쉽게 아내의 동의를 얻어 휴직을 거머쥔다. 왜 아니겠는가? 남편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글을 읽으면서 그의 꿈을 성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왜 안 들었겠는가.
공주님의 무한한 지지는 똘똘 온달 님이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함부로 헛되이 쓰지 못하도록 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처럼 평강공주의 응원을 받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했다. 좋은 직장, 좋은 직업에 대해 물음을 던졌고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블로그에 매일 글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 5명의 평균이 나를 정의한다.’ 드롭박스 Dropbox의 창업자 드류 하우스턴이 2013년 MIT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 246쪽
최호진 작가는 달라지기 위해서 ‘걸어 다니는 책’인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결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는 유익함을,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는 공감을 형성하며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저자가 70일 독박 육아를 선택한 것은 평강공주를 배려하기 위한 것으로 더 나아가 양육자로서 부모역할을 잘 해내기 위한 것이었다.
아내에게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는 똘똘한 온달 님의 꿈은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공유하는 사람인 Giver”이다. 잠시 쉼을 택한 저자가 곧 있으면 직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의 꿈을 응원하며 갈채를 보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무조건 퍼주며 인정받지 못하는 ‘호구’가 아닌 진정한 기버가 되기를 소망한다.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로 글을 마무리한다.
아니러니 하게도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덕분에 에너지를 유지하는 성공하는 기버가 실패한 기버보다 더 많이 베푼다. (중략) 성공한 기버는 실패한 기버보다 덜 이타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소진한 에너지를 회복하는 능력 덕분에 세상에 더 많이 공헌한다.
-애덤 그랜트, 『기브엔 테이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