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갑 안 되면 구하라 된다”라는 수업 중 발언으로 PD 출신 주 모 교수가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아주대 여성연대 소 모임인 ‘위아’ 측에서 각종 SNS와 교내 대자보 등에 '故 구하라 죽음, 그리고 여성의 피해는 사적인 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면서부터 촉발됐다.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주 모 교수는 교양수업에서 “멘탈 갑이 안 되면 구하라 되는 거야. 진짜로. 사람들이 왜 욕을 할까요? 욕을 하는 인간들은 다 열등감 덩어리야. 그런 애들 때문에 자살하냐? 멘탈이 강해져야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멘탈갑甲이 요구되는 사회가 됐다. 멘털 붕괴는커녕 멘탈이 잘 흔들리지도 않는 사람을 흔히 멘탈갑의 소유자라고 한다. 멘탈갑은 ‘유리 멘탈’, ‘쿠크다스 멘탈’, ‘두부 멘탈’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멘탈이 강철 같이 강하다고 해서 ‘강철 멘탈’, ‘판금 멘탈’이라고도 불리기는 하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는 단연 ‘멘탈갑’이다.
멘탈갑은 사회생활하는 데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갖춰야 되는 정서적인 덕목이다. 감정을 단단하게 무장하기 위해서는 맑은 두레박으로 생각을 벼리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활기차게 살아낼 수가 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설파하는 데이비드 번스 교수는『필링 굿』에서 우울증을 자가 치료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해결방안을 안내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 스스로 ‘생각하는 치료법’인 ‘인지치료’를 통해 부정적인 사고 유형을 변화시켜 멘탈갑이 되도록 독려한다.
『필링 굿』의 4부 10장의 <우울증의 근본 원인> 편에는 우울증의 증세에 ‘암묵적 가정’이 전제되어 있음을 피력한다. ‘암묵적 가정’이란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정의하는 방정식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 체계, 개인 철학, 자존심의 근거를 이루는 것들이 암묵적 가정을 통해 드러난다.
책에 소개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누군가 나를 비난하면,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어 기분이 비참해진다.
(2) 진실로 충만한 인간이 되려면 남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홀로 남겨지면, 외롭고 비참할 수밖에 없다.
(3).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는 내가 성취한 것에 비례한다.
(4) 완벽하게 일을 해내지(또는 느끼거나 행동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다.
우리의 감정 기복의 토대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사랑, 성취 또는 완벽함에 대한 추구이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거나 도달하지 못했을 때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우울함의 기본 전제인 암묵적 가정을 밝혀내는 다른 두 가지 방식에는 수직 화살표 기법과 ‘역기능적 태도 척도’가 있다. 이 글에서는 수직 화살표 기법만 다루기로 한다.
이렇게 감정이 아니라 정서적 거리를 두고 의미를 좇음으로써, “(1)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나는 무가치한 존재다 (2) 홀로 남겨지면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라는 암묵적 가정을 찾아낼 수가 있다.
⇛수직 화살표 기법으로 자동적 사고의 연쇄를 이어나가다 보면 문제의 근본 원인에 이르게 된다.
‘내면의 등불’ 켜기
『필링 굿』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생각뿐임을 알 때 정서적 깨우침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되는 ‘돈오’와 같은 경지에 이르더라도 점진적 수행단계인 ‘점수’의 과정이 필요하리라.
그런데 인정 중독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사랑이 자신을 비출 때만 내면의 스위치를 켜는 고약한 습성이 있단다. 이 두 사건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남들의 인정을 혼동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존재는 타인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자신은 무가치한 존재이며 홀로 남겨지면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자신의 기분을 스스로 다스리고 자신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 혼자이더라도 비참해지거나 한없이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인 것이 예상하는 것만큼 나쁘지만은 않다. 혼자인 삶에서도 기본적인 만족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오솔길을 걷고 미술관을 혼자서 갈 때도 내적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의 흡족함은 소란스러운 만족감이 아니라 고요하고 넉넉한 감정 상태를 말한다. 누군가와 함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만족감을 주는 많은 것들을 혼자서도 누릴 수 있다. 무리 속에 있으면 있는 대로 혼자일 때는 그 상태대로 모자람이 없는 충분한 감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필링 굿』의 저자 데이비스 번스가 개발한 ‘즐거움 예상 목록’에 예상 만족도와 실제 만족도를 기록해서 혼자였을 때의 만족감을 측정해 보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혼자 하는 활동에 대해 적어봤을 때 뜻밖에도 실제 만족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혼자 하는 활동에는 기대하는 만족감을 상대적으로 낮게 예상하는 경향이 있어 실제 만족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게 나오게 된다.
‘즐거움 예상 목록’을 기록할 때 첫 번째 칸에는 각각의 경험을 실행한 날짜를 기록하고 두 번 째 칸에는 그날그날 해볼 활동을 적는다. 세 번째 칸에는 누구와 함께 활동했는지 기록을 하는 데 혼자 했을 때는 ‘자신’이라고 쓴다. 분명한 것은 항상 ‘자신’과 함께 있기 때문에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네 번째 칸에는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도를 0~100퍼센트까지 점수로 평가할 수 있다. 계획에 따른 활동을 하기 전에 네 번째 칸을 모두 채워야 한다. 칸을 다 채우고 나면 실제로 활동해 실제 만족도를 0~100퍼센트까지 점수로 평가한다.
혼자 하는 즐거움의 고수는 단연 조선 정조 때의 책벌레 이덕무이다. 읽는 것 못지않게 쓰는 것도 탁월했는데 말똥구리조차도 세심하게 관찰하며 기록했다.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아
이덕무
눈 오는 아침이나 비 오는 저녁에 다정한 친구가 오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직접 글을 읽어 보니 나의 귀가 들어주었고, 내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써 보니 나의 눈이 보아주었다. 내 이처럼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았으니 다시 무슨 원망이 있을 것인가.
이덕무,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161쪽
내가 지은 글을 직접 읽어 보니 친구처럼 내 귀가 들어줬고, 내가 쓴 글은 내 눈이 친구가 되어 읽어주었다. 자신을 친구로 삼았기에 아무런 원망도 없었음은 물론 실제 만족감 또한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멘탈갑이 되려면 스스로 내면의 스위치를 켜서 혼자 노는 진수를 터득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인정 욕구에 매달리지 않고 진정한 멘탈갑으로 살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